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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8호] 추모예배 추모사 - “장공의 유산 제대로 물려받기” / 이기영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7 13:48
조회
656

[제18호] 장공 27주기 추모예배 추모사

“장공의 유산 제대로 물려받기”

이기영 목사
(전남노회 원로목사)


1. 50여 년 전 장공 선생님을 만나서 그 후로 그분의 저서들과 <십자군>과 <제3일>을 통하여 바른 신앙과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가르침 받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장공 선생님은 이 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위한 대표적인 지도자이셨고, 기독교계의 거성이셨습니다. 장공 선생님 27주기에 즈음하여 그의 진리추구의 순례적 삶과 교회개혁적인 삶, 그리고 그의 역사관, 역사참여적인 삶을 회상하며 추모하고자 합니다.

2. 장공 선생님은 20세 무렵에 13세기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의 전기를 읽고 많은 영향을 받았고 실천하면서 보냈습니다. 그의 무소유의 순례적 삶이 청년 장공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고 흠모케 하였습니다. 장공은 읽은 프란시스 전기를 만우에게 보냈고, 두 분이 아시시의 성자와 친하게 된 것은 그 때를 계기로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 후 만우는 장공의 원고 뭉치를 받고 ‘장공’이라는 호를 지어 보냈는데 그 속에는 ‘무일푼의 방랑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아시시 프란시스와 나”, 『김재준 전집 18』, 213-217) 젊은 시절 장공의 그 청빈사상은 80세가 된 후에도 변함 없는 것이었습니다. 성 프란시스의 청빈사상과 진리추구의 순례적 삶이 만우와 장공 신앙 여정의 뿌리였습니다.

새역사 6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만우․장공의 비전, 기장의 비전’이란 주제의 기조 발제 (발제자 : 김경재 교수)에서 “만우의 복음주의적 경건신학과 장공의 개혁주의적 역사참여신학은 기장교단과 신학교육의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동시에 살아 있도록 해야 생명의 빛의 원무를 출 수 있다”고 한 점에 전적인 공감을 가집니다.

만우는 ‘정통은 밥통’이라는 글귀를 쓰신 적이 있었고, 독립운동과 복음전도, 교회와 사회, 진보와 보수신학 사이의 경계선에 서서 서로를 배척하려는 양측을 아우르며 ‘조화와 일치’를 이루려 애쓰다가 결국 남북분단과 전쟁의 경계선(38선)을 넘는 것으로 생을 마치셨습니다. (이덕주, 『한국영성 새로보기』, 2010, 231)

그런데 ‘만약의 경우’에 대하여 한번 추론하여 봅니다. 만우가 1950년에 북한에 납치되지 않고 60~70년대까지 살았더라면 그분 역시 장공과 함께 역사참여신학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거슬러 추리해 보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개혁적 사명과 역사참여의 신앙과 신학을 함께 수행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두 위대한 선생님의 신앙과 신학은 필시 한국교회와 역사참여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 왔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후학들은 딜렘마 같은 긴장갈등, 그 어떤 차이라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우․장공의 신앙여정에서 끈질기게 엮어지고 상호존중의 넓고 깊은 코이노니아적 우정과 신뢰로 보아서, 복음주의적 경건신학과 개혁주의적 역사참여신학은 반드시 동일전선을 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함께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우리 기장 후학들은 13세기 성 프란시스의 신앙과 신학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조명하고, 새로운 목회적 삶의 원동력이 될 경건신앙과 신학 수립을 해 보았으면 합니다.

3. 장공 선생님은 “한국 역사와 그 원점” (『김재준 전집 18』, 228-247)에서 한민족의 뿌리 환단 시대의 웅좌와 주도적 역할, 그리고 윤리는 신률에 속한다고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자주성’이라는 척도에 따라서 고구려의 자주정신, 나라의 자주를 위해서 중국과 일대일로 대결한 을지문덕, 연개소문, 양만춘 등을 민족정신의 효시로 잡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은 한국인의 자주성과 한국역사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우리 민족과 우리 역사는 외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위축일로를 걸었다는 역사 관찰입니다.

따라서 백제의 문화와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남기긴 했지만, 신라가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것을 장공은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 뒤로 고려와 조선조 그리고 일제강점과 그 이후 미국지배 등 일련의 역사는 민족의 자주성과 민족정기의 위축의 일로였다는 것이 장공 선생님의 역사 관찰입니다.

특히 일본은 침략 근성이 깊이 박힌 민족이라며, 그러니 배일하자는 말이나, 동지로 여기기 보다는 엄히 경계해야 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아울러 우수한 우리민족의 문화는 민족의 생명이고, 민족정기, 자주정신은 영존할 것이라는 장공의 뜨거운 민족애와 혜지가 들어나고 있습니다. (『김재준 전집 18』, 380-383 참조)

장공 선생님은 인권, 민주화, 반독재운동의 뿌리는 진리운동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진리 운동은 사회와 역사참여에 필수적이며, 남북통일을 앞당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지는 장공의 남북통일 전망에 대해서도 미국과 중국이 민주적으로 합작하는 날에는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미국의 자유, 평등, 민권과 인권의 나라로 메시아 왕국의 비전을 역사 안에 실현하려는 기독교정신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장공의 서거 반년 전(1986.7.19)에 전한 유언 같은 예언적 말씀을 했습니다(『김재준 전집 18』, 458-466 참조).

4. 장공 선생님은 교회개혁의 당위성과 그 결과를 꿰뚫어 보고 계속적인 교회개혁을 강조하신 개혁의 선구자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교회개혁을 이루어 놓았지만 자유무역, 상공계급의 종교, 중산층․상공인의 종교로 정립되었듯이, 한국 개신교 일백 년 역사도 비슷한 기록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기구조직보다 인간 존엄을, 폭력보다 사랑을, 처벌보다 평등을, 전쟁보다 평화를, 정죄보다 용서를, 지배보다 봉사를 택했습니다. 그는 진정 약속의 참 메시아로 고난 받는 종의 길을 자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이 땅 위에 심었습니다. 그것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2천 년을 내려 자라고 있습니다 (『김재준 전집 18』, 367-379 참조). 장공 선생님은 이렇게 교회의 존재 이유와 개혁적 사명을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장공 선생님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민족혼에 불어 넣는 것을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의 누룩화’라고 묘사합니다. 적은 누룩이 많은 양의 밀가루에 들어가 그 전체를 변화시켜 부풀게 하듯이, 예수의 자유정신이 한민족 속에서 새로운 자유혼으로 갱생시킨다는 신념입니다.

장공 선생님은 해방 이후 분단된 조국과 이어지는 군사독재 속에서 정치적 억압의 상황 속에서 민족의 자주와 특히 교회갱신을 그리스도의 자유, 자주정신을 통해서 실현해야 한다고 예언자적 사명감으로 역사의 현장에 뛰어드셨습니다. 장공 선생님의 그 용기와 혜지에 뜻있는 허다한 군중들과 우리 기장 교회들이 그 뒤를 따라 나섰던 것을 기억합니다. 장공 선생님은 교회와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요 지도자였습니다. 장공 선생님은 인간 구원의 역사는 개인부터 가정과 사회구원, 역사구원, 종교로부터의 구원, 자연과 환경의 구원으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장공 선생님은 “분단의 한과 한풀이”에서 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두 진영으로 갈라져 38선에서 딱 부딪쳤는데 그 운명에서 새로운 사명을 발견함이 38선이 창조할 소명이라 했습니다. 장공은 제 3의 나라를, 그리스도적 복지사회건설을 주창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생애와 사상, 공관복음서의 원형적 예수상이 똑똑히 부각될 것을 주창합니다. 제3의 종교개혁이랄 수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정신의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완성도 한반도에서 일어날 것을 꿈꾸셨습니다 (『김재준 전집 18』 332-340 참조).

5. 오늘날 장공 선생님의 신학을 배척한 보수적 근본주의적인 장로교단을 비롯한 한국교회는 어떤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까? 지난 60년 동안 바리새적 율법주의와 사두개적 교권주의에다 헤롯당의 정치지원에 안주하고 농성하면서 맘몬왕 노릇하는 자본주의 경제성장 원리에 기초한 ‘교회성장신화’를 내세우면서 자기 몸 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교회 팽창주의에 따르는 대교회주의, 개교회 이기주의, 사회관심의 둔화, 시대 감각의 마비 등을 보이고 있고, 한국기독교 2세기에 민족주체성과 역사의식이 없습니다. 반면에 영세적인 자리에서 안간힘으로 버티며 기다리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사회문제와 역사참여문제에는 포기해 버린 채 예언자적 증인된 삶은 사그라지고 교회 바벨론 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범종교적으로 뜻있고 양심적인 종교인들의 사회와 역사참여적인 증언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매우 희망적입니다. 장공 선생님이 유산으로 주신 예수의 역사적인 삶을 통해 보여주신 새로운 복음 이해와 개혁적인 진리와 정의, 사랑과 심판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장공 선생님의 《십자군》과 《제3일》을 통해 들려주시던 메시지가 또 다시 그리워지고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어두운 불통과 역사 왜곡의 현실에서 우리는 장공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복음의 새 이해와 민족에 대한 자주정신과 사랑, 진리운동 그리고 그의 청빈한 삶의 자세를 새롭게 되새기며 배우고 실천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의 참 스승님, 장공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존경하면서 추모합니다.

[2014년 1월 27일, 장공 김재준 목사 27주기 추모예배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는 이기영 목사]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8호] 2014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