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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23호] 5ㆍ18특집 - 빛고을에서 5ㆍ18을 생각한다 / 노일경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1 13:56
조회
915

[제23호] 5ㆍ18특집

빛고을에서 5ㆍ18을 생각한다

노일경 목사
(광주한빛교회)


5ㆍ18이 서른다섯 번 지나는 동안에…

5ㆍ18 서른다섯 번이 지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폭도들의 난동과 폭동과 사태라 불리우다가 점차 민주화운동으로, 민중항쟁으로, 누군가에는 혁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 그 <열흘간의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수없이 회자되었습니다.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다치고 끌려가고, 수만 명 아니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분노와 두려움에 떨고 온 나라를 아프게 한 사건입니다. 국가권력을 빙자한 당시 신군부세력이 벌인 무고한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만행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청문회도 열리고, 책임자들도 구속되기도 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도 이루어졌습니다. 5ㆍ18이 국가기념일이 되고, 5ㆍ18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5ㆍ18은 여전히 광주만의 이야기로, 이젠 그만 했으면 하는 이야기로 폄훼되기 일쑤입니다. 올해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설왕설래했습니다.

진리의 빛, 진리가 계시된 사건

한 철학자는 최근 자신의 저서(김상봉, 『철학의 헌정 : 5ㆍ18을 생각함』, 도서출판 길, 2015)에서 5ㆍ18을 빛고을에서 진리의 빛, 진리가 계시된 사건으로 표현합니다. 그 열흘이라는 시간에 일어난 사건은 인간의 모든 계산과 예측을 뛰어넘는 사건으로 기적이며, 예외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하늘나라의 시간이며, 거기 잠시 형성된 공동체는 세속과 일상의 척도를 초월하는 공동체였다고 피력합니다. 누군가가 5ㆍ18을 끊임없이 비하하고 모독해도 5ㆍ18은 결코 죽지 않는 진리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대검으로 찌르고 총알로 뚫어도 결코 죽지 않는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광주시내 거리에서 음식을 만들에 제공하는 시민들]

[항쟁기간 전남도청앞 광장]

먼저, 5ㆍ18은 학생들, 운전기사들, 시장상인들, 헌혈하던 여인들, 치료하고 돌보던 간호사, 의사들… 역사의 한복판에서 모두 함께 ‘공동주체’, ‘서로 주체’가 되어 목숨을 걸고 불의한 악마적인 힘에 맞선 사건입니다. 5ㆍ18은 가해자들의 잔인함과 악마성에 분연히 나선 항쟁이고, 그 폭력 때문에 잦아든 것이 아니라 그 폭력 때문에 더 확산된 항쟁입니다. 노인, 여성, 어린이, 장애인, 부상자에게까지 무차별로 자행되는 악마적인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대응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삼은 숭고한 정신입니다. 자기 생명을 걸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연대하면서 나선 목숨을 건 정신들의 행동입니다. 거기서 대동세상, 절대공동체, 생명공동체의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5ㆍ18은 생명운동

5ㆍ18은 현실적인 패배, 비극적인 수난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불사하고 참된 생명가치를 위해 나선 운동입니다. 인권을 짓밟고 민주를 억 압하고 평화를 깨버리는 불의한 세력에 대하여 생명있는 모든 곳에서 참된 정의와 생명과 평화를 위하여 끊임없이 일어나는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운동의 맥을 따라 숨쉬는 운동입니다. 5ㆍ18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본의 이름으로, 권력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행사되는 폭력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끊임없이 분출하고 지속되는 생명의 운동입니다. 5ㆍ18은 흘러간 지난 한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불의한 폭력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재현될 운동이기도 합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광주여! 십자가여!

5ㆍ18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이 5ㆍ18이 담고 있는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사는 자리에서도 의미깊이 새겨집니다. 5ㆍ18은 가슴 아픈 비극이지만 그 죽음을 불사하면서 역사의 부름에 답한 그 영령과 정신들로 ‘민주화’라는 소중한 열매를 이 땅에 맺어지게 하였습니다. 불의하고 잔인한 정권이 국민들을 희생양 삼았지만 그 희생이 역사의 동력이 되어 민주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 긴 사건이고, 죽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누구나 마음으로 믿어 의롭게 되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복음입니다. 즉, 차별과 편견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고 공유할 가치가 5ㆍ18 속에 담겨 있습니다. 꾸준한 민주화운 동에 참여하시고, 5.18 이후 엄혹한 시절에도 5ㆍ18 기념 연합예배를 자신이 섬기던 광주한빛교회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드렸던 일석(一石) 윤기석 목사님은 자신의 목회철학을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로 삼으셨습니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 광주여 십자가여“ 했던 시인 김준태의 통찰 또한 의미가 깊습니다.

죽음을 이긴 부활 생명의 자리에서

지금도 비극과 재앙을 부르는 힘은 우리가 사는 현실 에서 여전히 준동합니다. 세월호는 아주 참담하게 그 죽임의 세력들의 허상과 실상을 드러냅니다. 권력자 들이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부패가 이리도 자유로운, 거짓과 기만을 제멋대로 뿌려대는 타락한 민주주의로 보여집니다. 이 세상을 주도하려는 자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불려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들은 진실을 사랑하는 ‘님’들이 반갑지 않고, 참다운 민주가 들어서는 ‘새날’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불사하고 우리들을 사랑하신 예수라는 우리들의 ‘님’,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존재로서의 나날의 삶, 오늘이 늘 새로운 하늘나라를 사는 ‘그날’이 되길 바라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이웃의 고통을 껴안고 죽음을 불사하고 나선 그날, 그 사람들이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들의 ‘님’이고 우리들의 ‘새날’이었습니다. 그래서 5ㆍ18은 어둔 역사 속에서 비치는 진리의 빛으로, 거짓을 뚫고 나타나는 진리의 계시로 기억됩니다. 5ㆍ18은 한편 가슴 아픈 비극이지만, 다른 한편 참 된 생명가치를 끊임없이 되살리는 영광스러운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죽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고 삽니다. 우리는 몸과 생활과 역사 속에서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살아갑니다. 그 자리에서 5ㆍ18의 의미를, 5ㆍ18의 정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2015.5.20. 빛고을에서

[5.18 민중항쟁 35주년 예배(광주한빛교회)]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3호] 2015년 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