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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장공 김재준 목사, 마이크 잡다

작성자
김거성
작성일
2022-09-17 00:19
조회
443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31815280268222

평화: 남과 북의 민중을 공통분모로

이 범용자(凡庸者)가 태어난 해가 1901년이니, 올해로 만 120살이 된다. 조선 말기와 일제 침략 시기, 그리고 남북 분단 시기를 살았다. 해방 후 고향인 함북 경흥 창꼴을 끝내 가보지 못한 것도 안타깝지만,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남과 북이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무기 경쟁, 전쟁 연습에 몰두하는 현실이 한스럽다. 관광객 피살사건이나 전단 살포 등 남북 당국이 구실 삼으려면 자잘하건 크건 무엇이든 다 핑곗거리가 되는 일 아닌가. 물론 나 자신도 한국전쟁 등으로 말미암은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큰 그림에서 미래를 향해 먼저 서로 마음을 열고 가슴속의 철조망부터 걷어내 통일을 찬찬히 준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 남과 북의 공통분모인가. 바로 남과 북의 민중 아닌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남한 동포나 북한 동포나 모두 인간이요, 이웃 아닌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닭싸움처럼 눈을 붉힌다면 언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이념이나 체제나 사상 이전에 서로가 상대를 인간으로 바라보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와 자유를 서로 인정하며 사랑으로 피차 존경하는 바탕 위에서 먼저 교류와 협력을 굳게 세워나가야 한다. 평화통일의 밝은 내일은 바로 오늘의 지향과 실천 속에 움트는 것이다."

정의: 혐오와 차별, 탐욕, 거짓을 벗어나야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나를 목사직에서 제명할 당시의 논거는 성서의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을 부인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 전부터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국내외 신학 교육기관에서는 성서비평학을 가르쳐왔고, 해당 교단 신학교도 얼마 되지 않아 그렇게 했다. 결국 지난 2016년 10월 해당 총회가 그 목사직 제명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사참배 참회가 7~80년 지나서 나오기도 했으니 66년이나 걸린 것도 다행히 아니겠는가.

나를 향한 공격이야 그저 뜬구름과 같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꾸했었지만, 지금도 한국 개신교계에 이와 유사한 차별과 혐오의 잘못이 여전하여 마음이 아프다. 미국 교계에서 한때 낙태 반대를 마치 천국의 열쇠인 것처럼 주장하던 목소리가 있었는데, 한국 교계에서는 지금 ‘차별금지법’ 반대, 타 종교 배척과 혐오 등으로 목청을 높이고 있다. 성차별 또한 여전하여 아직까지도 주요 교단의 총회장직은 모조리 남성이 차지해오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얼마 전 어떤 원로 신학자는 동성애 주제의 논설로 목사직을 박탈당했다고 한다. 또 어떤 신학 교수는 한 근본주의자가 불교 법당에서 벌인 훼불행위를 사과하고 그 복구 비용을 모금했다고 하여 파면당했고, 해당 신학교는 지금까지 법원의 복직판결조차도 무시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속이 쓰리다. 이러고도 세계 교회에 나가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차별을 반대하는 세계의 모든 교회와는 관계를 끊고 앞으로 영영 척지고 살고자 하는가.

아니면 성서비평학을 가르치는 해외 대부분의 신학교에 유학을 다녀와서도 자신은 아닌 체하고 가면을 썼던 사람들처럼, 회칠한 무덤과 같이 앞으로도 쭈욱 위선에 절어 있을 터인가. 독재에 기생하고 맘몬에 아부하면서도 나는 반공이니 주초(酒草)에서 자유로우니 하면서,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답습할 것인가. 이런 잘못은 또 얼마나 지나야 제자리로 돌아올까. 혐오나 차별은 그 자체만으로도 악행이거니와 거기에 온갖 거짓까지 동원되니 이중적인 잘못이다.

박정희 시절, 조작한 인혁당 사건으로 사법살인을 자행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또 “운동권이 성을 혁명의 도구로 쓴다”라거나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며 거짓을 유포했던 악한 권력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광주민중항쟁에 북한의 사주 운운하는 선전선동이 있다. 교회나 정파, 재벌, 또는 국가 등 어떤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든 간에 자기들만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짓밟는 일은 용인될 수 없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위나 권한을 남용하며, 더욱이 거짓까지 꾸며 공격하거나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언제나 어디서나 결단코 용납될 수 없는 악행이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만 해야 마땅하다."

아프간 사태의 교훈: ‘무엇이 중요한가’

최근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게 다시 넘어간 까닭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아프간 정권의 부패와 무능함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그뿐일까.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시각과 접근방법에도 매우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간 까닭이 9.11 테러범들을 체포하고 그곳이 미국에 대한 공격기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사상자 수는 너무나 크다.

쏟아부은 1조 달러도 부채로 조달했다니 그 이자까지 더하면 또 얼마나 되겠는가. “전쟁은 끝났지만, 비용은 계속된다”라는 표현처럼, 아프간과 이라크 참전군인에 대한 지원비용 등 또한 추가될 것이다. 그처럼 어마어마한 희생과 비용을 치렀지만, 미국 입장에서 테러 위협이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더욱이 아프간에서의 민주주의도 거의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으니 이런 비관적인 상황을 왜 미리 내다보지 못했을까.

9.11 당시 급하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 후에라도 정책을 바로잡지 못한 치명적 잘못의 결과 아닌가. 1975년 월남이 패망하는 장면을 목도하고 나는 물량과 신무기를 신주처럼 믿어온 미국의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렇지만 물리력 즉 군사력이면 금방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은 지금까지도 여전한 것 같다. 말 그대로 ‘눈먼 미국’의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기에 그런 엄청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쓴 엄청난 비용 대부분은 군사비였고 재건사업 비중은 5%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니. 그 가운데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교육 등에 사용한 비용이 과연 얼마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의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바탕을 위해 군사비의 절반이라도 투여했었더라면 하는 회한을 품는 사람들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물론 금액 규모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 종교나 문화를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을 기독교화, 서구화했어야 한다는 뜻도 결코 아니다.

물량을 쏟아붓는 방식, 단지 전투에서의 승리나 미국의 눈앞의 국익만을 좇아간 것 같아 안타깝다. 오히려 여성을 포함한 인간 존중, 생명 살림, 지속 가능한 사회 추구 등 국제사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를 추구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터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이 먼저인가에 대해서 돌이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혼’을 넣어주는 교육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일제하 조선에서 만주, 시베리아로 망명하는 애국지사들을 보며 나는 고민했다. ‘그래, 교육 밖에는 없다’라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후진들에게 뭔가 ‘혼’(魂)을 넣어줄 접촉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금융조합을 사직하고 소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쳤고 유학에도 간도 용정 은진중학교, 또 조선신학원에서 젊은이들을 키워나가고자 했다. 해방 후에도 민주화, 통일, 평화와 인권 등 실천 지성을 양성하고자 했다.

교육이 혼 없이 지식이나 기능 위주로 흘러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것은 미래 불행의 전조일 뿐이다. 개인적 차원의 좋은 ‘인성’을 넘어, 진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도록 이끌어내는 일, 이는 후세를 위한 지금 우리의 마땅한 책임이다.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 발전은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민주시민교육을 바탕으로 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입학, 채용, 승진 등에서 오로지 시험 성적만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것이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유의 시험에 익숙한 사람들만 실력자라고 평가될 뿐이다. 획일적 평가가 아닌 개인의 다양한 능력과 재능이 인정되어야 한다. 나아가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과 실천이 인정되고 그러한 자세가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미래가 속히 도래하기를 소원한다. 그 바탕으로 ‘민주시민교육지원법’도 제정하고, 무엇보다도 그런 체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힘차게 실천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이제부터

나는 민주적 기본질서가 파괴된 현실 속에서 늘 신앙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려고 했다. 이 땅에서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정부를 수립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수많은 희생과 피의 아우성에 하늘이 응답한 것이라 하겠다. 1987년 함석헌 옹과 더불어 ‘새해 머리에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 적었던 바와 같이, 정치는 주권재민의 민주화를 이룩하고, 민중 생존권을 확립하며, 자주 국가로 나아가는 길에 서야 하는 큰 사명이 있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는 기업주와 공생(共生)하여 그 이익을 만들어내고, 또 그 이익이 정의롭게 분배되도록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바르게 깨닫고 제 임무를 다해야 한다. 선전에 속아 부화뇌동하거나 횡포를 용인하는 일이 없이 자유와 정의를 향한 힘찬 행진을 계속해야 한다. 상대방을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데서 온갖 인권의 침해와 착취가 일어난다.

"성별, 연령, 피부색이나 출신, 종교, 취향, 장애 여부 등의 장벽을 넘어 서로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바탕이다. 그런데 교리만의 종교가 백골과 같은 것처럼, 절차에서만의 민주 또한 허무일 따름이다. 내 눈에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화의 종착점이 아니라 내용적 민주주의를 향한 시발점일 뿐이다."

생명살림

오늘날 기후변화와 환경, 생태계의 위기가 화두다. 나도 젊은 시절부터 열 가지를 정하여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산하(山河)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다룬다”와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배려한다”가 있었고, 늘 “생명, 정의, 평화”를 기도했다. 자연은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자연과 환경의 보전은 후세를 위한 우리 세대의 마땅한 책임이다. 그 가운데 핵발전, 핵무기 등의 극복이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전쟁으로 말미암은 인명의 대량 살상은 물론 이려니와, 평시에도 이 땅에서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자살 등으로 말미암은 안타까운 죽음들을 막아야 한다. ‘생명살림’이란 이 늙은이의 호소에 교육, 국방, 건설, 산업, 정치, 시민사회 등 각 부문이 응답하기를 바란다."

‘잊지 않도록!’

끝으로 말하련다. 이 땅의 흙은 억울한 피에 절었다. 최제우, 최시형 등 탁월한 종교 창시자를 죽이고, 동학농민혁명의 총수 전봉준을 일본군대에 청 넣어 죽였다. 이승만 시대에는 어떠했는가. 여운형, 김구, 조봉암 등등 쟁쟁한 지도자들이 암살당했다. 그뿐인가. 4·19 때 의로운 학생들의 피, 광주학살에 억울하게 희생된 수백 명의 학생과 시민들, 1987년 박종철, 그리고 이한열을 비롯한 수많은 의로운 피가 하나님께 울부짖고 있다.

‘불망비(不忘碑)’는 역시 필요하다. “그들을 잊지 않도록(Lest We Forg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