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의 삶

[장공의 삶] 2장 : 현실의 벽을 보다(1916~1919년) - 민족의식이 싹트다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7-12 08:10
조회
57

[장공의 삶] 2장 : 현실의 벽을 보다(1916~1919년)


민족의식이 싹트다


김재준은 결혼하고 곧장 회령군청에서 웅기금융조합으로 전직했다. 김 재준이 금융기관에 있다보니 저절로 상인들과 사회 청년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이들과의 교제는 자연스럽게 술집이나 요정을 드나들게 되었다. 결혼을 했지만 혼자 하숙하고 있어서 문제삼는 사람도 없었다.


김재준은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북만주 하얼빈에서 아편장사로 큰돈을 벌어 호텔을 경영하는 청풍 김모 씨로 부터 일본말을 잘하니 도와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김재준은 촌구석에 있느니 이번 기회에 대도시로 가기로 작정하고 아버지께 편지를 보냈다. 아무런 회답이 없어서 집에 내려가니 아버지가 김재준을 버드나무 숲으로 데리고 가 걸으면서 아들에게 당신의 속내를 말씀하셨다.


“할빈이란데는 험한 고장이다. 더군다나 아편장사 소굴에 너 같은 풋내기가 어쩌자고 들어가려는 거냐? 그 사람들이 돈은 벌었다마는 불의한 돈은 뜬구름 같은 거야. 아예 갈 생각 말고 웅기 있으면서 펴이는 대로 앞길을 찾아봐라! 대기는 만성이란다.”23)


김재준은 자신이 큰그릇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깊이를 느끼며 하얼빈 행을 단념했다.


김재준은 함경북도청 서기 김희영을 만났다. 김희영은 남만철도 일본인 간부가 나진(羅津) 개발 설계도를 입수하여 비밀리에 나진 땅을 사는 임무를 맡았다. 나진은 웅기에서 20리에 있어 그 일을 김재준에게 부탁했다. 나진은 1평에 20전이면 살 수 있었다. 김재준은 거간꾼을 내세워 40만 평을 이동등기까지 해서 보냈다. 거간료를 톡톡하게 받아서 거간꾼과 김희영에게 후사하고 나머지를 저금했다.


그 무렵 김기련이라는 30대 청년 무역상을 만났다. 그는 일본인 수출업자의 하청인으로 두만강을 건너 산지의 콩, 팥 등을 사서 일본인에게 건네주고 거기서 얼마의 돈을 받는 일을 했다. 당시는 일본 경찰이 만주나 시베리아에 망명하는 애국지사들을 잡으려고 두만강 경계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콩장사를 하기 위해 간다하면 쉽게 건너게 해주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이 두만강을 건널 때는 대성상회에 들러 콩장사꾼으로 변장해서 건너는 것이다. 김재준은 대성상회에서 독립투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이들이 가지고 온 《독립신문》 등을 읽으며 가냘프게나마 민족의식을 싹틔웠다.


김재준은 민족의식과 함께 ‘종교적 외경심’24)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신사를 방문할 때였다.


“하루는 웅상에서 고개를 넘어 웅기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 완경사의 길 중턱쯤에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었습니다. 신사래야 작고 작은 막사 같은 것이어서 사람이 지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는 제법 큰 문짝 없는 대문이 있었습니다. 웬일인지 그 앞에 섰을 때 나는 무슨 숭엄한 외경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경건하게 경례를 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내게 내재한 종교성의 발로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유교에서의 제사 때보다 훨씬 더 짙은 종교 감정이었다고 하겠습니다.”25)


김재준은 어려서부터 유교 윤리에 순응하였고 유교 의례에도 충실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상당히 엄숙해서 종교적인 감정을 자극받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 신사(神社)에서는 유교제사 때보다 더 ‘숭엄한 외경심’26) 을 느꼈다. 그리고 며칠 후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 며칠 후에 나는 꿈에 다시 그 고장에 가서 웅기항의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웅기항에 아주 화려하고 찬란한 목선이 한 척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지개를 싣고 오는 배인 것 같았습니다. 그 배에 사람이 하나 타고 있었는데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 백옥석 비석 하나를 그 배에 싣고 와서 항구에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석을 내가 서 있는 곳에 운반해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백석은 매끈하게 다듬은 것 이었습니다만 글자는 새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비석을 가져온 사람이 말 했습니다. ‘이제 네 스스로 이 비석에 새길 비문을 지어 새겨라’ 하는 것 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해서 망설이는 동안에 꿈에서 깨었습니다.”27)


김재준은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빈(空)28) 비석 꿈을 통해서 앞으로 그의 인생이 새롭게 전개될 것을 예감했다.


[각주]


[23] “외톨이 풋내기도”, 『전집』, 제13권, 41.
[24] 이덕주, 제23회 장공 사상 연구 목요 강좌, “장공 영성과 한국 교회”, 2010. 9. 10.
[25] “조약돌 몇 개”, 『전집』, 제18권, 399-400.
[26] 이덕주, “장공 영성과 한국 교회”, 5.
[27] “조약돌 몇 개”, 『전집』, 제18권.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