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의 삶

[장공의 삶] 2장 : 현실의 벽을 보다(1916~1919년) - 장분녀와 결혼하다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7-12 08:05
조회
59

[장공의 삶] 2장 : 현실의 벽을 보다(1916~1919년)


장분녀와 결혼하다


회령군청에서 근무한 지 만 3년째 되는 날, 김재준의 나이 열여덟이 되었을 때, 집에서 편지가 왔다. 창골집에서 15리 떨어진 회암동 장석연의 큰딸 장분녀와 혼약이 되어 음력 8월 29일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곧 오라는 것이다. 편지를 받은 날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김재준은 군수에게 사연을 말하고 휴가를 얻었다. 직원들의 축하를 받고 나흘 전에 창골로 떠났다. 가는 도중에 큰 비를 만나 캄캄한 밤에 도착했다. 김재준이 도착하자 모든 식구들이 환영하며 맞아주었다.


이튿날 김재준은 집안어른들의 뜻대로 유교식 전통으로 혼례를 준비했다. 먼저 아버지가 부르는 대로 장지에 잡채(납폐문)16)를 쓰고, 사모관대에 탕건과 갓을 쓰고 동네어른을 예방하는 가관식을 했다. 결혼식 날, 김재준은 청총마를 타고 처음으로 처갓집에 갔다. 장인 될 장석연은 형님뻘 나이로 아산 장(蔣)씨 가문이었다. 이 가문은 이조 중엽에 중국 산동성에서 이민 와서 충남 아산에 정착했다. 임금이 장씨 일족을 양반계열에 들이고 아산이란 본을 받았다. 결혼식을 치른다.


“첫 프로는 ‘전안’이다. 기러기를 드린다는 뜻이다. 그때 색시는 사잇방에 있고 창문은 열렸지만 주렴이 드리워 있다. 나는 색시방 문 앞에 섬돌 밑에 꿇어앉아 상 위에 놓인 나무기러기를 부채로 세 번 색시 쪽으로 민다. 그것이 ‘전안’이다. 기러기가 자기 짝을 찾아 접근하는 말하자면 워밍업일 거다.”17)


전안이 끝나면 초례를 치르는데, 초례 때 신부의 얼굴을 본 김재준은 좋다거나 나쁘거나 하는 마음보다는 ‘그런 색시였구나!’ 하며 담담해했다. 초례가 시작되면 사회 보는 이의 말에 따라 청의동자 둘이 하나는 푸른 실, 하나는 붉은 실을 어깨에서 늘이며 신부와 신랑 사이를 오가며 술잔을 세 번 나누는데, 이 예식을 통해서 김재준은 한번 맺은 ‘맹약’은 절 대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이 예식은 아주 정중하고 씸볼릭(상징적)해서 결혼상대자가 맘에 들든 안 들든 이 맹약을 깨뜨릴 수는 없다고 느끼었다. 나는 그때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도 믿지 않았지만 믿은 다음에도 이 맹약은 어쩔 수 없는 구속력을 갖고 있었다. 의리가 중하기 때문이다.”18)


김재준은 식이 끝나고 신부를 데리고 갔다.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은 청총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 얼마 후 신방에 든다. 신방이 끝나고 초야를 치른다. 첫날 밤 첫 말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김재준은 신부의 옷도 풀지 않은 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답답했다. 그러 다 얼떨결에 말했다.


“나는 이제부터 공부도 해야겠고 나돌아다니기만 할 것 같은데 당신은 집에서 어른들 모시고 식구들과 의좋게 몇 해구 기다릴 수 있겠소? 그래야 할 것 같은데!”19)


김재준은 막 시집온 아내에게 결혼했지만 당신 혼자 시집에서 지내라고 말한 것이다. 자신은 밖에 나돌아다니겠다면서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신부가 “내야 이제 이 댁 사람이고 당신 사람인데 그런 걸 왜 물으시오?”20) 하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내는 성격이 대륙적이었다. 묵중하고 남의 말을 절대 함부로 옮기는 일이 없었다.


“내가 열여덟 살, 장가간 며칠 후에 내 외사촌 누님이 자기 앞에 나를 외따로 불러놓고 당부했다. ‘네 아내는 인물이 크다. 네가 얕보고 괄시하면 죄가 될 거다. 점잖게 대접해라.’”21)


김재준은 외사촌누이의 말처럼 아내가 예사 인물이 아님을 알려주는 꿈을 꿨다.


“창골집 앞에는 버드나무 숲이 배꾹 서 있다. 그 사이로 꽤 큰 물골이 흐른다. 물골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홍수에 밀려오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사리로 맑은 시내가 부딪치고, 뛰어넘고, 얕아지고, 깊어지고, 바위들과 싸우며 흘러가는 것이다. 나는 말을 타고 그 험한 바위 물골을 길인냥 거슬러 올라간다. 갓 시집온 신부인 아내가 말머리 옆에서 고삐를 잡고 조심조심 말을 이끈다. 견마드는 것이었다. 가는 우리 집이 어딜까? 이 물골을 건너 저쪽 언덕 절벽 3분지 2쯤 높이에 옆으로 뚫린 동굴이 보인다. ‘저게 우리 살 집이오’ 그 꿈은 ‘우리 집’이라는 동굴까지 못 가고 깨었다.”22)


이후 김재준의 아내는 남편이 서울, 동경, 미국 등 공부하러 유학 간 13년 동안 묵묵히 집안일을 도우며 스스로 자활(自活)에 힘썼다.


[각주]


[16] “아내 이야기”, 『전집』, 제18권, 482.
[17] “장가가던 이야기”, 『전집』, 제13권, 36.
[18] 위의 글, 37.
[19] 위의 글, 38.
[20] “장가가던 이야기”, 『전집』, 제13권, 38.
[21] “장한 어머니”, 『전집』, 제15권, 228.
[22] 위의 글,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