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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삶

김재준 - 맺는 말 :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 천사무엘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4-30 17:40
조회
990

천사무엘, 『김재준 :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서울:(주)살림출판사, 2003, 234-237쪽.


맺는 말 :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김재준은 변화무쌍한 20세기의 대부분을 살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충실한 행동의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20세기 한국 사회와 교회의 구원 요청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실하게 응답하고자 했으며, 그 요청에 용기 있게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여겼다. 한국 사회가 신문학을 갈구할 때에 그는 신학을 통하여 이를 접하고 가르쳤으며, 한국 교회가 근본주의 신학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에 자신이 유학하면서 공부했던 내용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군사독재자들에 의해서 짓밟힐 때에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부르짖었다. 이러한 김재준이 되기까지에는 그에게 영향을 준 주요 인물과 신학이 있었다.

전통적인 유교인이자 유교식 교육을 받았던 김재준이 기독교인이 되어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 교회에서 활동하게 되는 데는 송창근의 영향이 컸다. 그는 송창근의 권유로 서울에 와서 신학문을 배웠고, 그의 도움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했으며 한국신학대학교의 전신인 조선신학원에 발을 들여놓고 신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송창근이 성 프랜시스를 존경하여 청빈의 삶을 부르짖은 것처럼 김재준도 그러하며, 송창근이 민족주의자였던 것처럼 김재준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송창근과는 달리, 그는 보다 더 냉철하고 유가적인 자세로 현실의 문제를 대하고자 했으며, 목회보다는 신학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6.25전쟁 이후 송창근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왔던 행보를 계속하고자 노력했다.

김재준의 신학사상은 신학사적으로 신정통주의에 흥미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그 대안으로 신정통주의에 흥미를 가졌으며, 졸업논문에서도 신정통주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칼 바르트의 신학을 다루었다. 그의 성경해석도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제시하는 성경관과 맥을 같이 한다. 다른 한편, 사회에 대한 관심은 미국의 신정통주의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라인홀드 니버와 그의 동생 리처드 니버의 신학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조국의 민주주의 향상을 위하여 앞장섰던 삶의 후반기에는 사회적 불의에 항거하는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과 호흡을 같이 하기도 했다.

김재준의 삶과 사상은 한국 교회의 목회, 신학, 신학교육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 신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 기독교 장로회라는 교단의 탄생과 신정통주의 신학의 전파, 세계 신학에 근접하려는 개방적인 신학교육, 역사비평의 전파, 사회에 대한 교회의 관심의 향상, 근본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 내세 지향적인 신앙의 교정, 선교사들의 영향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독려, 신앙적인 청빈의 삶, 수많은 글 등은 그가 한국 교회에 남긴 유산이다. 또한 독재정권에 대한 사심 없는 항거, 민주주의에 대한 비전 제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소중함에 대한 계몽,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사회에 대한 올바른 방향 제시 등은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유산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와 정치 현실에 있어 자본주의의 유혹, 권력에의 집착, 도덕적인 타락, 방향감각의 상실 등이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재준의 청빈의 삶과 언행 일치의 삶은 여전히 높이 평가되어야 하며 후학들이 본받아야 할 삶의 방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한 근본주의 신학에 의해 그가 이단자로 규정되고 목사직을 제명당했던 사건은 역사적 평가가 더욱 냉철하게 이루어질 때, 한국 장로교회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도 교단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김재준을 논할 때 그의 신학과 신앙, 사상 삶 등이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앙적 열정에서 나온 것이며, 그 열정이 단순한 감정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는 부단히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독려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