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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삶

김재준 - [7] 전쟁의 와중에서 : 기독교 장로회의 탄생 / 천사무엘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4-30 16:02
조회
972

천사무엘, 『김재준 :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서울:(주)살림출판사, 2003, 157-160쪽.


[7] 전쟁의 와중에서 : 기독교 장로회의 탄생

총회의 결정에 대한 반발도 거셌다. 1952년 6월 총회의 결정이 불법임을 선언하기 위하여 ‘호헌전국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1953년 6월에는 서울 동자동의 한국신학대학 강당(=성남교회당)에서 한국 장로교 법통 총회를 선언하고 제38회 총회를 속히 했다. 이것은 총회의 분립과 장로교단의 분열을 의미했다. 김재준은 당시 교단 분립을 서로 불고 먹는 싸움에서 벗어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이라는 불가피하지만 엄청난 일에, 자신과 자신의 신학이 관련되었기 때문에 괴로웠던 심정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총회의 처사는 화해의 여백을 침략으로 메웠다. 우리가 ‘진실’ 대신에 ‘굴종’을 택한다면 몰라도 그러지 않는 한, 각지 교회는 싸움판이 될 것이고 싸우노라면 싸움이 싸움을 일으켜 ‘싸움을 위한 싸움’으로 변할 것이다. 그때에는 진리고 뭐고 없다. 옳고 그른 것도 없다. 그저 치고 패고 하는 싸움만 남는다.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한다.’(갈 5:15)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와 정직한 행위를 보존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의 본영(本營)을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실질상 ‘기장’(기독교 장로회)과 ‘예장’(예수교 장로회)은 분립된 셈이다. 나는 그것을 ‘분열’이 아니라, ‘분지(分枝)’라고 설명했다. 나무가 자라려면 줄기에서 가지가 새로 뻗어 나가야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기장은 ‘분지’ 중에서도 ‘결과지(結果枝)’다. 밋밋하게 자라는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것이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과수원 농부는 끝을 베어 내고 못 견디게 가위질 한다. 고난을 겪게 한다. 그래야 열매가 맺기 때문이다. ‘기장’은 ‘결과지’다. 소망 없는‘수난’이 아니다. 예수를 따르는 ‘십자가’다. 십자가는 부활의 서곡이다. 부활한 생명에는 숱한 열매가 맺혀질 것이다.”

기장출범직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장로교회의 분열로 이어져
1953년 기장 총회를 탄생시켰다.

1952년 총회의 결정 이후에 벌어지는 조선신학교 출신 목사들의 위임 취소와 그들이 목회하던 교회 안에서의 분쟁을 보면서 굴종을 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갈라서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는 이 총회에서 낭독된 성명서 초안을 작성했는데, 여기에는 그의 교회와 신학에 대한 사고가 담겨있다.

① 우리는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복음의 자유를 확보한다. ② 우리는 전세계 장로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건전한 교리를 수립함과 동시에 신앙 양심의 자유를 확보한다.
③ 우리는 노예적인 의존사상을 배격하고 자립 자조의 정신을 함양한다.
④ 그러나 우리는 편협한 고립주의를 경계하고, 전세계 성도들과 협력·병진하려는 세계 교회 정신에 철저하려 한다.

법통 총회는 1954년부터 ‘한국 기독교 장로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예수교 장로회’ 대신에 ‘기독교 장로회’라고 명칭을 선택한 배경에도 김재준의 신학이 반영되어 있었다.

“‘예수’라는 자연인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믿는 때부터 교회가 서고 크리스챤이 생기는 것이니 ‘기독교 장로회’라고 이름 하자.”

고려파의 분립에 이은, 기독교 장로회의 분립은 한국 장로 교단의 분열이라는 불행한 일이었다. 유동식이 지적하는 대로 이러한 분열은 “훈련 없이 시대적 사명감에 눈뜨지 못한 한국 교회”의 문제였고, 기독교가 해방과 6.25전쟁이라는 “연속되는 사회 불안과 아노미 현상을 극복하는 종교의 구실을 못하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재준을 중심으로 한 ‘기장’의 탄생은 “사상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하나의 발전이라 할 수도 있는 현상이었다.”53) 이는 근본주의 신학을 자유롭게 비판하면서 세계 신학의 흐름을 호흡할 수 잇는 신학교육과 기독교의 사회참여의 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53)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