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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삶

김재준 - 김재준에 대한 시각 / 천사무엘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4-30 09:30
조회
1469
천사무엘, 『김재준 :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서울:(주)살림출판사, 2003, 11-23쪽.

김재준에 대한 시각

한국에 있는 개신교 신학대학이나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의 기초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한국 교회사’라는 과목이 있다. 여기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한반도 전래 과정과 한국 교회의 성장 및 변천사를 공부한다. 이 과목이 진행되는 동안 가르치는 교수나 배우는 학생들 모두 가장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역사가 있다.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장로교파의 분열이 그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교회가 발전적으로 나뉘는 것은 박수와 칭찬을 받을 일이지만, 신학적인 이해 부족, 비본질적인 문제, 신앙의 다른 형태에 대한 몰이해 등으로 인하여 분열한 것이기에 이 사건은 아픈 역사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교단이나 학교 혹은 신학노선이 이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평가는 매우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사실이 왜곡되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평가되기도 하며 자신들만의 정당성이 주장되기도 한다. 학문적인 토론이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상황에서 그리고 아직도 이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와 같은 경향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편견 없는 객관적인 역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와 같은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김재준은 20세기 장로교 분열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나 그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해외 민주화 운동을 할 때인 1981년 일본을 방문. 이곳을 여행하면서.해외민주화 운동을 할 때인 1981년 일본을 방문. 이곳을 여행하면서.

먼저, 김재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견해이다. 이들은 그가 시대착오적인 근본주의 신학1)에 맞서 싸운 신학자요, 선교사들을 추종하는 교권주의자들에 의한 희생자이며,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한 정치개혁운동가, 대승적 기독교를 연 선구자 그리고 깊이 있는 영성을 소유하고 청빈하게 살았던 목회자, 한국의 종교개혁자로 일컬으며 극찬한다. 김재준의 제자이자 한신대학교 구약학 교수였던 김정준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이러한 시각을 대변한다. “김재준 목사는 한국 교회 100년사 중 가장 탁월한 문장력과 해박한 신학 지식, 정확한 판단력과 정연한 논리성으로 한국 ‘출애굽 신학운동’에, 이스라엘 신앙사에 비하면 모세와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근본주의 신학의 아성 속에서 온갖 핍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학문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라는 세 가지 무기로써 기어코 근본주의 신학이라고 하는 바로의 권력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신학의 길을 개척한 역사적 인물이 바로 그분이다.”2)

1) 근본주의 신학이란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을 강화하면서 이를 고수하고자 했던 보수 신학인데, 성경 문자의 절대무오를 보장하는 축자영감설을 믿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2) 김정준, 『만수 김정준 전집 1: 역사와 신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418쪽.

김정준의 평가에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김재준이 받은 오해와 그가 겪었던 억울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제자의 울분이 반영되어 있다.

한신대학교 교수 김경재의 최근 책에도 제자로서 스승 김재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존경심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지 200여 년이 지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를 낳았고, 조선왕조와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아 건국한지 200년쯤 되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낳았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교는 한국 땅에 전래된 지 200여 년 만에 김재준과 함석헌을 낳았다. ‥… 필자는 감히 그 두 분을 ‥… 소승적인 전통 기독교에 대하여 한국 ‘대승적 기독교’의 창시자들이락 부르고자 한다.”3)

3) 김경재, 『김재준 평전: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서울: 삼인, 2001, 3-4쪽.

김경재는 교회에서 축출당했지만 교회를 떠나지 않았던 김재준을 무교회주의자였던 함석헌과 사상적으로 같은 선상에 놓으면서 200년 한국 기독교 사상의 최고봉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이 한국 불교의 원효나 의상대사, 한국 유교의 이황이나 이이 등과 비견될 만크 한국 기독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한신대학교의 졸업생이자 성공회대학교 교수인 손규태 역시 김재준을 한국의 종교개혁자로 부르며 극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 장공은 성서적 진리를 교리적 족쇄에서 구해내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교권의 전횡에서 구해낸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의 종교개혁자였다. 만일 한국 교회 안에 장공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국 교회는 무지와 몽매, 왜곡된 교회주의자와 교권주의자들의 농성장이 되었을 것이다.”4)

4) 손규태, 『장공 김재준의 정치신학과 윤리사상』,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101쪽.

김재준에 대한 이러한 우러름의 평가와는 달리, 그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근본주의 신학의 거두 박형룡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근본주의 신앙노선을 따른다고 자임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김재준은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 ‘신(新) 신학자’, ‘성경 파괴자’, ‘교회를 문란케 하는 자’, ‘예수의 기적, 부활, 승천을 믿지 않는자’, 심지어 ‘마귀’라고 불릴 정도의 이단자였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평가는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총신대학교의 김길성 교수의 글에서 그 실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박형룡 박사의 귀경에는 김재준 교수를 염두하고 있었을 것이 당연지사이나 김 교수에 대한 개인적인 도전장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박형룡 박사는 정통주의 신학의 진수를 자유주의 신학과 비교하여 그 정(正)과 사(邪)를 가릴만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성경관과 관련된 진리의 문제를 학문적인 우열로서 서열 지으려는 인간적인 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형룡 박사가 서울로 올라온 사실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갈 조국 교회의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자유주의 신학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선신학교로부터 해마다 배출되는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목사들의 양산에 몹시 우려를 나타내던 보수진영에서는 당시 세차게 불기 시작한 자유주의 바람에 긴장하고 있던 터라, 장로회신학교의 개교를 그야말로 대 환영하였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자에 대한 양 신학교의 입장은 서로 다른 것이어서 양 신학교가 하나로 합동하기에는 요원한 것이었다.
처음 조선신학교의 개혁안이 여의치 않아 장로회신학교를 세워 직영 신학교를 만든 총회가 이미 보수주의 세력에 주도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조선신학교 측에서 이 합동 안에 찬동할 리가 만무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양 신학교 합동이 정치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들의 기성지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될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 합동 안을 강력하게 반대하기에 이르렀다.”5)

5) 『총신대보』 244호, 2001.

이 글에는 김재준을 직접 거명하는 비판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와 조선신학교의 관계를 감안한다면 조선신학교에 대한 언급은 곧 김재준과 연결된다. 즉, 김재준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그의 신학사상이 깊이 연관되어 있는 조선신학교는 ‘자유주의’에 물들어 있고, 거기에서 배출되는 목사들은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잘못된 사상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에 이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김재준의 신학은 정(正)과 사(邪)를 가릴 만큼 가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미 ‘사(邪)’라는 것이다.

김재준 계열과 박형룡 계열의 학자들이 말하는 김재준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와는 달리, 감리교 신학자 유동식은 그의 양면성을 다음과 같이 짧게 지적했다.

“(김재준의) 진보주의적, 역사적 성서 이해는 급변하는 현대 역사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주는 일에 공헌했다. 그러나 한편 사회‧정치적 연구에 치우친 나머지 초월적인 하나님의 종교적 차원이 가려질 위험성 또한 개재되어 있다. 여기에 공헌과 위험성을 함께 가진 한국 진보주의 신학의 초석이 있다.”6)

6)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서울: 전망사, 1982, 140쪽.

김재준은 성경을 역사비평방법에 근거하여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선포되었는지를 밝히는 데는 공헌했지만, 이러한 방법은 하나님의 초월성이 가려질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본 책은 김재준의 생애와 사상을 신학생이나 신학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이 평이하게 이해할 수 있게 씌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본 책은 첫째로, 김재준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를 피했다. 따라서 그의 적대자들이 그를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자유주의자’나 ‘신 신학자’등의 용어를 그에게 적용시키지 않았다. 특히 그의 적대자들의 대표격인 박형룡은 에큐메니칼 운동 자체를 ‘자유주의’라며 비판하고, 미국 장로교회(P.C.U.S.A.)의 전신인 미국 연합장로교회까지도 ‘자유주의’에 물들었다고 비난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각으로 김재준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에큐메니칼 운동이나 1967년에 발표된 미국 연합장로교회의 신앙고백의 관점, 그리고 세계 신학사조의 흐름 속에서 본다면, 도리어 박형룡의 신학이 정도를 벗어나 있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거부하고 있으며 세계 교회신학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본 책은 이럴한 점을 고려하면서, 필요한 경우 김재준의 적대자들이 남긴 자료도 검토, 평가하여 참조했다.

한국 신학사를 논할 때 ‘자유주의’니 ‘보수주의’니 하는 용어의 사용에는 늘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현대 신학에서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헤겔, 슐라이어마허, 리츨 등이 주도한 19세기 독일의 신학사조를 가리키는데, 김재준은 이러한 신학이 “악마에게 절하고 천하를 얻으려는 식이어서 애초부터(인본주의적인 현대주의와 현대문명에)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라고 비판했다.7) ‘신정통주의’란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바르트, 불트만, 브루너 등의 신학을 의미하는데, 김재준은 이들 신정통주의 신학에 매우 동정적이었다. 즉, 김재준이 제시한 신학은 ‘자유주의’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신정통주의’에 가깝다.

7) 괄호 안은 필자의 것임.

김재준이 신학적으로 신정통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해서 그에게 소위 ‘한국적 보수 신앙인들’의 신학이나 신앙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김익두 목사 부흥회에서 그가 경험한 성령체험의 감격, 길선주 목사가 강조했다던 새벽기도를 지키기 위해 새벽마다 산에 올랐던 그의 열심, 주기철 목사처럼 십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사표를 내던졌던 그의 결단, 한경직 못사처럼 성 프랜시스를 존경하여 청빈하게 지낸 그의 삶, 신비주의자들처럼 꿈이나 환상 등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하려는 그의 태도 등은 그가 ‘한국적 보수 신앙인들’보다 더 철저하게 ‘한국적’이고 ‘보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유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그의 신앙은 성경의 문자적 내용을 중요시하면서 이를 삶으로 실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유교적 기독교’라는 20세기 한국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보수 신앙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김재준을 ‘자유주의자’나 ‘신 신학자’로 낙인찍으며 판단하는 것은 그의 신앙이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며,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를 혼동한 결과이다.

다른 한편, 김재준에 대한 극찬적인 평가 역시 본 책은 피하고자 했다. 그가 한국 신학의 교육과 발전,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것을 무시한다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그가 한국 신학의 교육과 발전,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것을 무시한다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그가 남긴 글 역시 20세기 한국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이 없다. 탁월하고 호소력 있는 문장, 깔끔한 내용, 흐트러짐 없는 흐름, 정확한 분석과 소개 등은 현재까지도 지성인들에게 호소력이 있고, 역사를 파악하는 데 유익하다.

그러나 그를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교권주의자는 아니며, 그의 신학에 동조했다고 해서 모두 기독교장로회를 지지하고 분리되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또한, 미국 장로교 선교사라 했어 모두 교권주의자들이나 근본주의 신학의 옹호자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한국에 처음 도입한 사람도 아니고 그러한 신학을 그 자신만이 가르친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유주의 신학’ 때문에 그 자신만이 근본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이나 박해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독창적인 신학사조를 이끌어 낸 신학자도 아니며, 오히려 서구 신학을 한국에 소개하면서 한구의 상황에 그 메시지를 적용하려 했다. 그에게도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지역주의적인 편견이나 정치적인 편향이 있었고, 특별히 편애하는 제자들도 있었다. 그는 유교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의 일반 가장(家長)들처럼 자신의 혈율 공동체를 자신의 삶에 있어 핵심으로 생각했으며, 가족들과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한국을 떠나 10년 동안 캐나다에서 살면서 시민권을 취득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나 수식어를 붙일 때 보다 더 신중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던 중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캐나다에 머물렀던 그는 자주 이곳에 와서 마음을 달랬다.

그를 높이기 위하여 그의 적대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그의 업적이나 사고를 과대 포장하는 것은 그의 훌륭한 인격과 인품을 고려할 때 그가 바라는 바도 아닐 뿐 아니라 그를 이해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찬양 일변도가 아닌, 보다 더 냉철하고 엄격한 학문적 평가가 이루어질 때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신학도와 일반인으로부터 바르게 이해되고 존중받는 신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책도 그러한 점을 고려했다.

둘째로, 본 책은 기록된 자료들을 중심으로 씌어졌다. 김재준이 남긴 글, 그에 대한 증언기록, 그에 대한 평가나 연구 등을 한국 교회사와 한국 역사, 그리고 세계 신학사조의 흐름 속에서 평가하고 파악하면서 참조했다. 그리하여 어느 특정 개인이나 집단 혹은 사건의 정당성을 위해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되는 표현이나 수사학(rhetoric) 등은 배제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그의 자서전 『범용기』가 매우 유익했으며, 그의 사상을 다룰 때에는 그에 관한 연구논문이나 책보다는 가능한 그가 직접 남긴 글을 참조하고 인용하고자 했다.

셋째로, 본 책은 장공 김재준 목사님을 지칭할 때, ‘김재준’이라는 본래의 이름, 즉 그가 태어날 때 부여받았던 이름을 사용했다. ‘장공(長空)’이란 아호는 1920년대에 김재준이 보낸 그의 글을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송창근이 읽고 지어준 것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이 반영되어 있는데, ‘역사적 김재준을 이해하는 데는 도리어 방해가 될 수 있다. 본 책에서 ‘장공’이나 그에 대한 다른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를 처음 대하는 독자들이 가능한 편견 없이 그를 대하고 평가하기 위함이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넷째로, 김재준의 생애를 기술할 때에는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행했던 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자 노력했다. 스승 김재준이나 목사 김재준이 아닌 인간 김재준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의 성격이나 생각 등이 나타났던 에피소드, 독백 등을 실었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되어 가는 그의 모습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자료들이 그 자신의 자서전이나 그의 제자들의 회상문 혹은 그의 적대자들의 일방적인 평가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의 진면목들을 많이 찾아내지는 못했다. 또한, 지면의 한계로 인하여 그나마 다 소개하지도 못했다.

다섯째로, 본 책은 구약학 교수인 필자가 젊은 시절 구약학자의 모델이 되었던 김재준의 생애와 사상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집필되었기에, 조직신학자나 윤리학자 혹은 목회자나 민주투사로서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어졌을 수도 있다. 이 점 양해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