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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3호] 권두언 - 장공의 ‘신학’을 넘어 ‘심장’(心腸)에로 / 김경재 목사

작성자
changgong
작성일
2017-07-04 19:17
조회
589

[제3호] 권두언

장공의 ‘신학’을 넘어 ‘심장’(心腸)에로

김 경 재 목사
(본회 부이사장 / 한신대학교 교수)

필자는 요즘 한국학술진흥재단 연구 프로젝트인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기독교가 한국 문화․사회에 끼친 영향”이라는 연구 주제의 한 부분으로서 장공 선생께서 북미주 체류 기간(1974-1983년)에 활동하신 역사적 자료를 정리하는 일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다행히 캐나다에 거주하는 장공의 유가족이 아버님의 눈물 어린 10년간의 활동 족적을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도 보물처럼 지켜 보관해 주었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장공의 해외활동 연구자료로서만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사회사 및 교회사 연구에 1차 자료가 될 <1970-80년대 북미주 인권․민주화․평화통일 운동 사료집>이 몇 개월 안에 출판될 것이다.

위 연구작업 중 캐나다에 거주하는 장공의 유가족을 만나 대담하면서, 필자는 한 가지 크게 깨달은 점이 있다. 이제 장공의 사상과 뜻을 선양하려는 기념사업회의 방향이, 글로써 표현된 ‘장공의 신학’을 넘어 글로써 표현되지 않은 ‘장공의 심장’에로 진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心腸)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하였다. 물론 사상(思想)의 역사가 중요하고, 한 인간의 역사 참여와 언표된 글들의 총체적 밑바탕에는 그를 그렇게 살도록 추동한 신학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장공의 글에 나타나 있는 신학만을 연구하고, 그리스도의 심장을 체 받아 살고자 했던 말없는 ‘장공의 심장’을 함께 느껴보는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장공 연구는 ‘장공의 겉모습’ 소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유가족과의 대담 중 둘째 아드님 김경용 장로의 증언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장공께서 귀국하시기 3년 전, 80 고령의 장공은 고국에서 들려오는 5․18 광주민중항쟁 소식을 접했다. 그 해 겨울 어느 날 밤, 캐나다 토론토 지역은 폭설경보가 내려지고 차가운 눈보라가 북미대륙을 몰아치던 밤이었다. 토론토 중심가 민주화운동 사무실에서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신 장공께서 행방불명되었다. 평소처럼 대중교통편으로 토론토 교외지역 아드님 댁으로 귀가하실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무소식이어서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 토론토지역의 알 만한 사람들에게 행방을 수소문하였으나 허사였다. 그런데 밤 11시가 다 되어서 장공께서 눈썹과 턱수염이 꽁꽁 얼어붙은 눈사람 모습으로 현관에 들어섰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도로를 따라서 몇 시간을 걸어 귀가하신 것이다. 애를 태운 가족들이 아버님께 화를 내며 자초지종을 여쭈었다. 그러자 장공은 멋쩍은 표정과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광주에서 자식 잃은 부모들과 추운 감방에 갇혀 있는 젊은이들이 생각나서 걷고 싶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장공의 신학연구도 중요하지만 장공의 심장을 알자.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2004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