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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2호] 권두언 - ‘만인의 장공’(長空)으로 / 한승헌(본회 부이사장/변호사)

작성자
changgong
작성일
2017-07-04 19:02
조회
797

[제2호] 권두언

만인의 장공’(長空)으로

한 승 헌
(본회 부이사장 / 변호사)

김경재 교수님이 쓰신『김재준 평전』가운데 나와 연고가 있는 대목이 한 군데 있으니, “그는 ‘국제엠네스티 한국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기도 했다”(136쪽)라는 한 줄이다. 김재준 목사님은 1972년 3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한국위원회 창립 당시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되어 범세계적인 양심수 석방운동의 대열에 한국이 합류하는 데 지도적 역할을 하셨다. 나는 그때 이사 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목사님을 모시고 일했다.

그 무렵 한국은 온통 박정희 군사독재 판이었다. 철권 탄압이 극에 달하여 구속자가 늘어나고 박해가 확산되었다. 바로 그런 때 양심수 석방, 사형폐지, 고문철폐, 공정한 재판 보장, 수감자 처우개선 등을 표방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깃발은 민주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기에 족했다. 창립대회에는 함석헌, 이병린, 문동환, 이항녕, 이영희 선생 등 각계 민주인사가 참석하였다.

목사님께서 주간(主幹)을 맡아 내시던 <제3일>과 자전적인 <범용기(凡庸記)>를 내 빈 머리의 충전용으로 애독하던 것도 어제 일 같다. 1983년 9월 캐나다에서 귀국하신 후 어느 자리에선가,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하기에 미국 사람들은 God을 숭배하는 줄 알았더니 거기에 l자 하나를 넣어서 gold를 숭배하더라고 하셨다. 이만큼 유머나 조크도 대단하셨다.

나는 목사님의 진보적인 신학과 실천적 신앙, 그리고 그에 합치되는 올바른 삶에 큰 감명을 받고, 글이나 강연에서 이를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신선하고 간결한 문장에 매료되어 어설프게 흉내를 내보기도 하였다.

내가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1975년) ‘삼민사’라는 출판사를 꾸리면서 살아갈 때, 목사님의 귀한 글을 묶어 <속 장공전집> 3권을 낸 적도 있다. 그 출판 관계로 목사님 댁을 자주 드나들면서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문하생도 아닌 나에게는 망외(望外)의 큰 축복이었다.

혹시라도 목사님을 기독교의 울타리, 교회의 담장 안에 모셔놓고 어떤 연고자들만이 ‘독과점’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공기념사업회는 목사님의 삶과 사상을 ‘깊이’ 연구하는 일과 아울러 이를 기독교 밖에까지 ‘널리’ 알리는 일에도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목사님을 기독교의 울타리 밖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만인의 장공 김재준’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이 또 하나의 소중한 과제가 아닐까.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2003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