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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6호] 추모예배 설교 - “사랑의 시선으로” / 정웅섭 목사

작성자
changgong
작성일
2017-07-05 10:48
조회
845

[제6호] 추모예배 설교

“사랑의 시선으로”
(시편 15:1-5, 마태복음 10:26-31)

정웅섭 목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벌써 선생님이 가신지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머릿속에는 아직도 동자동 언덕을 오르내리신 그분의 그때 모습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분과 함께 지내면서 살았던 오래면 오래고 짧으면 짧은 그 시간, 또 그분이 그토록 관심을 가졌던 결코 교회가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관심,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그 때 그분이 가졌던 관심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나라의 어떤 특성이 얼마나 변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선생님을 모시고 지내던 그 시절, 또 선생님을 보낸 다음에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삶, 이 세계와 우리나라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여러 가지 말로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저는 오늘 하나만 꺼내서 생각을 해볼까 합니다.

이 세계가 너무나 계산적이고, 타산적이며 모든 가치를 수치(數値)로 환산시키는 수치 문화 속에서 그분은 사셨고, 항거하셨고, 그리고 우리도 그것을 따라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양심적이라고 하는 선생님들까지도, 학생들을 숫자로 환산해 가지고 "너는 저기 갈 수 있는 사람" "너는 그 학교에 도저히 갈 수 없는 사람" 이런 식으로 가치 매김을 해온 그런 우리들의 사회가 아니겠습니까? 한 인간으로서의 학생의 인격보다도 몇 점, 몇 점 이상, 몇 점 이하, 몇 점에서 몇 점까지라고 규정해 버리는 그런 모습들을 선생님의 세대나 또 우리들의 시대나, 똑같이 겪고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을 서열화하는 작업을 할 때, 어느 만큼 교사들이 그것에 대해서 양심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 쓰라림을 느끼면서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저도 생각을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생각을 해왔는데, 어느 정도 내 맘속에 학생들을 어떤 식으로 구별하고, 어떤 식으로 대하고 있느냐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세계가 세속적인 세계가 가지고 있는 그런 것에서 훨씬 떠나있다고 자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학생들을 참으로 인격이 아니라, 하나의 수치(數値)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장공 선생님의 삶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반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할 때 그것은 흔히 "개인의 마음의 문제"라고들 말해집니다. 본인은 오랫동안 이런 개념규정, 정의내림에 반발해 왔습니다. 그것은 항상 이런 표현이 우리의 사회적이고 행동적인 관심을 폐쇄시키고, 신앙을 단지 내면적인 사항으로 제한하는 논리로써 기능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이런 정의내림과 개념규정을 대담하게 인정하려고 합니다. 신앙은 모든 개인의 마음의 문제라고! 왜 그런 것일까요? 그것은 넓은 의미로 나의 마음이 현대문화로부터 오는 영향을 받아 가지고 세뇌된 사고방식, 느낌의 양식, 의미부여의 양식, 가치부여의 양식으로 성립되어 있음을 문제 삼아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세계를 보는 방식, 세계를 구분 짓는 방식, 욕망을 지니는 방식까지가 모두 오늘의 언어를 매개로 하여 내 속에 주입되고 프로그램화된 사항이고, 오늘의 문화적인 상황에서 송출된 신호에 의해서 조작되어 왔으며, 그것이 또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바로 이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이런 꼴로 만들어 버리고 조각내고 마는 문화의 존재양식이 문제가 된다는 그런 의미이겠습니다.

과연 오늘의 크리스천 가운데 몇 사람이 인간을 수치(數値)로 환산하여 1등으로부터 최하등까지 일직선으로 늘어지게 세우는 그런 서열화하는 문화의 힘의 지배로부터 진정으로 자유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몇 %의 크리스천이 "월 O만 원 짜리" 라는 급료 수치(數値)로 인간의 가치를 값 매김 하는 마음의 존재양식에서 자유로워지고 해방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렇게 인간을 값 매기는 삶의 방식을 지니지 않았노라"고 말해보았자 그것은 아무 유익도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매일 매일의 일상사 속에서 자기 자신이 이런 방식으로 가치부여를 하면서, 값을 매겨가면서, 구분을 하면서, 대우받음으로써 매달매달 생계를 세워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인간들은 이렇게 살아가면서 마침내는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하는 사명감과, "내 아이들만큼은 좋은 학교, 일류 대학에 보내야만 한다"고 하는 책임감을 극히 당연한 것으로, 인간이면 의례히 해야 할 그런 것이라고 반성할 여지도 없이 지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이게 현실이니까" "모두 다 그렇게 사는 걸" "어디 나 만인가?..." 라고 합리화하며 정당화까지 하는 이런 현실의식을 어김없이 마음에 새겨가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의식이야말로 바로 "값 매김의 문화"에서의 주입되고, 조정되고, 사육된 우리의 "마음"의 존재양식이며 바로 이런 마음이 "신앙이 문제 삼아야 할 최대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른바 Q전승에 의해서 내려온 예수의 언명으로서, 오늘이라는 시대의 한 복판에서, 이 같은 값 매김의 문화, 수치(數値)화의 문화에 정면으로 강하게 도전하는 메시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새 2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하고 예수께서는 말씀했습니다. 한 앗사리온은 예수 당시에 Rome 최소의 화폐단위로서 오늘의 100원이나 500원 정도 얘기하는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참새 2마리가 한 앗사리온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값 매김일까요? 참새를 참새구이로라도 해서 먹자는 것입니까? 참새 두 마리를 먹어봤자, 간에 기별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별로 가치도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다.

어느 정도의 정교한 정밀 기계를 사용하여 정묘한 구조로 하늘을 자유스럽게 날아가는 그런 새를 만들 수가 있을까요? 아마 그것을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비만도 몇 십억, 몇 백억은 족히 들것입니다. 참새! 그것은 무한히 값진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내 배를 채울 수 없다는 단 하나의 가치기준으로 그것을 2마리에 100원 혹은 300원이라고 값 매김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두렵고 심각한 사실은 그 같은 가치기준으로 동료 인간까지도 값 매김을 당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의 가치가 경제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서 값 매김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인재들, 인재라고 하는 말이 참 묘한 말인데 사람 '인(人)'자 자료 '재(材)'자 입니다. 인간자료의 생산, 분배 공정으로서의 학교와 사회 이런 존재가 허락이 되고, 학교마저 일직선으로 일등학교에서 꼴등학교까지 서열 매김이 됩니다. 그리고 입학을 앞둔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전전긍긍하면서 "어느 학교에다가 내 아이를 넣을 것인가"하고 서열 매김 속에 자기 자신을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두려운 사실은 교회 또한 이같은 수치화(數値化) 문화에 영향을 받아 가지고 거기서부터 세뇌를 받아서 그 수치(數値)문화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는 하나의 micro copy로서의 "개인의 마음"을 진지하게 문제 삼고 그것에 저항해 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변혁, 의식의 혁명"이라고 하는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인 것이 우리 교회의 현실입니다. 교회는 돈에 대해서 눈이 밝고, 수량에 대해서 눈이 밝고, 교인의 숫자에 대해서 그 교인의 마음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그 중의 한 마리도…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하나님께서 참새 한 마리라도 단지 죽여서 먹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은 아니라고 하는, 이 보다는 더 엄연한 묵직한 그런 사실에서 우리들을 참새와 연결시켜보는 그러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인간에게 참새를 먹고 배를 채우는 일을 허락하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연구개발 및 제작비 수십억 원의 귀중한 것을 식량으로 허락하셨다는 것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숫자"를 문제로 삼으신다면, 우리 인간의 "머리카락 수효"까지도 다 세고 계시신다고 하는 형식으로 이것을 예수는 표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숫자를 문제 삼으신다면, "나"를 정량정수(正量正數)의 나의 가치를 어떻게 계산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나를 다른 아무것, 어떤 것 하고도 환치할 수 없는, 환산할 수 없는 존엄한 것으로 무게 있는 존재로 보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값 매김, "수치화(數値化)의 눈초리"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어떤 경우도, 누구나, 진심으로 수용하시는 "사랑의 시선"으로 보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랑의 원리 아래에서 "나는" 비로소 "참 내가"되며, 사람은 비로소 "참 인간"이 됩니다. 사랑 받은 자만이 참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며, 사람을 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크리스천은 문화 도전적인, 문화 변혁적인, 윤리 창조적인 삶의 방식을 살기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곧 세상을 바르게 되돌려 세우려는 하나님의 일하심이요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무엇이라 이론을 구축해도, 역시 기독교는 "문화 존속·유지의 공동체"라기 보다는 "문화변혁·문화창조의 공동체"임이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장공 선생님의 여러 가지 업적이라던가, 혹은 사상이라던가 혹은 살아오신 삶의 모습을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가슴속에 너무나 많이 쌓여있고, 또 오늘 추모예배 순서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충분히 전해주실 것입니다. 말하자면 김재준 목사님이 저에게 어떻게 비췄느냐 할 때 이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말하자면, 세상을 위해서 오신 분이라던가, 혹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던가 이런 거창한 모든 말씀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주는 사랑의 시선으로 일생을 사신 분이 아닐까? 사랑의 시선으로 사신 분이다. 남의 이야기하지 않고, 또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이야기하지 않고, 저 개인적으로 연결된 세 토막의 말씀만, 경험만 드리겠습니다.

제가 한신대 입학을 할 때, 저는 크리스천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당당하게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나온 것이 아니고, 우리 집안의 첫 번째 크리스천으로서 집안 어른들의 의향을 어기고 그리고 후원도 없이 신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얘기하기를 "네가 신학교에 가면 학비는 없는 줄로 각오해라"라고 말씀을 했던 터입니다.

그래서 신학교 와서 시험을 치르는데, 구두시험 마지막 구술시험에 여러 선생님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질문이 나에게는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고, 크리스천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구술시험에 앉은 그 자리에서 대답드릴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김재준 학장님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여기 보니까, 네가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말이 없구나, 이게 무슨 말이냐? 신학교는 목사를 만드는 학교인데" 그래서 제가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목사가 될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은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재준 목사님이 뭐라고 하시나면, "괜찮아, 너도 변할 거야!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시면 너 가려고 안 해도 가게 되고, 목사 안 하려고 해도 결국은 될꺼야!"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눈초리에서 나는 나를 위해서 말씀하시는 깊은 사랑의 시선을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2학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떻게 됐는지 하여간 친구들을 잘못 만나 가지고 우리 학년에서 네 사람이 똘똘 뭉쳐서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도 잘 안 듣고, 공부도 잘 안하고 그랬습니다. 어느 날, 우리 학생과장을 하시던 최 목사님이 나를 부르더니 "야, 너 오늘 끝났어!" "왜 그러십니까?" "오늘 너희 네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교수회의가 열린다. 너 죽을 각오해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아니, 속이 참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가지 말라고 하는 신학교를 왔는데, 이제 퇴학을 당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세 친구들은 전부다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갔는데, 저는 밤이 늦도록 그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교수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교수회의가 끝나고 그리고, 선생님들이 다 나오셨습니다. 맨 뒤에 최 과장님이 나오셨습니다. 저는 얼른 달려가서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랬더니, 이분의 말씀이 "야, 오늘 얘기 복잡하니까 못하겠다. 내일 다시 만나자" 그래서 하룻밤 동안 참 고생을 하면서 마음을 쓰다가 그 다음날 만나니까 최 목사님의 말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모든 교수님들이 '이제 이놈들은 끝났다. 신학교에 두어봤자 아무것도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이 가려고 하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키는 것이 어떠냐?' 하는 그런 의견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교수님들이 한마디씩 다 거들면서 모두 다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학장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앉아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때 교수님들이 "자, 우리들의 생각은 이런데, 김 목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최종결정을 내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재준 목사님은 가만히 아무 말씀 안 하고 계시다가 그 독특한 그 스타일 있죠? 안경을 이렇게 내려 가지고 이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요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허허, 그 네 사람을 2학년에서 빼면 학생이 남을까?" 그런 말이었습니다. 그 네 사람을 2학년에서 빼면 학생이 남을까? 그러니까 머리 좋은 교수님들이 다 얼른 알아들으셔서, "네 좋습니다. 학장님의 의견이 그러하시다면 한 학기 더 두고 보죠" 라고 끝났던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을 때 참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내가 뭔데? 가족도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고 나를 버리는 이 마당에...' 선생님이 나를 굉장히 가치 있는 것으로 쳐주시는 그 사랑의 마음을 그 시간 느껴서 저는 하루종일 울면서 지냈습니다. 저는 열심히 그 다음에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여기 이렇게 서 있습니다. 아마도 그분이 다른 분 같으면 아무리 훌륭한 교수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 이놈아 너희 정신차려! 왜 도대체" 이렇게 하시겠지만, 한 마디도 그런 말씀을 안 하신, 그런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졸업하는 날, 사은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에 아마 김은희 장로님도 같이 계셨을 텐데요. 제가 준비위원으로 사은회 식장을 준비했는데, 이제 사은회가 시작되려고 하는 조금 전에 김재준 목사님께서 오셔서 사방을 둘러보시더니, 가만히 저에게 오셨습니다. "네가 여기 준비했지? 너 사은회라고 쓴 것 좀 봐라" 그때 저는 사은회를 스승 '師(사)' 자와 은혜 '恩(은)' 자로 해서 한문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김재준 목사님께서 "그것도 뜻이 맞지만,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는 스승이건 뭐 건 다 이렇게 뭉쳐서 감사하다는 '사'(謝)를 써야하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는데, 옆의 사람이 들을까봐 나만 이렇게 옆에 비키게 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당황을 했습니다. "지금 고치겠습니다. 그러나, 붓이 없습니다. 종이가 없습니다." 식장이 시내에 있었기 때문에 "괜찮아 여기서 아는 녀석 별로 없어. 다음부터 고치면 될 꺼야." 저는 그 말씀 속에서 무한히 나를 하나의 인격으로 취급해 주시는 물건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 같으면 아마 김 교수님 박 교수님 다른 교수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 누가 이거 썼어? 이렇게 못된 놈들, 4년이나 공부하고 이것도 몰라?' 이렇게 나오셨을 텐데, 김재준 목사님은 나만 살짝 불러서 그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김재준 목사님의 일생은 사랑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그렇기 때문에 투쟁할 수 있었고, 사랑의 시선으로 한국을 보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위해서 일하실 수 있었고, 사랑의 시선으로 교회를 봤기 때문에 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용감히 싸우신 분이라고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는 김재준 목사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 그 깊은 사랑의 시선을 가지고 이 세계를 다시 한 번보고 나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2007년 1월 25일 장공 김재준 목사 20주기 추모예배 설교)

(2007년 1월 25일 장공 김재준 목사 20주기 추모예배에서 설교하는 정웅섭 목사)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7호] 2007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