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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5호] 추모사 - 장공 김재준 목사 19주기 추모사 / 김수배 목사

작성자
changgong
작성일
2017-07-05 10:18
조회
735
[제5호] 추모사

장공 김재준 목사 19주기 추모사

김수배 목사
(본회 고문, 기장 증경총회장)

장공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어언 19주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신앙과 생애가 고결하고 근엄하여 만인의 사표가 되시기 때문에 세월이 가고 연륜이 더 하여도 우리 모두가 숭모하는 마음은 날로 더하고 세상이 혼탁할수록 아쉬운 마음이 그지 없습니다.

선생님은 간악한 일제의 탄압, 조국의 해방, 6.25 동족 상잔의 참극, 그리고 군벌 정치의 터널을 지나는 암흑기에도 요지부동 흔들리지 않으시고 예와 아니요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교회를 섬기고 제자를 양육하는 일에 힘쓰셨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생애는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와 같이 청빈한 생활로 사셨습니다. 호화주택에서 금의옥식을 즐기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면서 경향각지를 누비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시고 평생토록 주옥같은 글을 남기셔서 신앙을 선도하고 애국심을 고양하는데 진력하셨습니다.

이제 저의 기억에 되살아는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번은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고 자유토론하는 시간에 ‘고재호’라는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이 학생은 예장 측 목사님의 자제로 기장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목사님 우리가 죽었다가 세상 끝 날에 정말 몸으로 부활할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오늘도 채플 시간에 신앙고백을 했는데 마지막 부분이 무엇이지?” 하니까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입니다. “그러면 같이 고백을 하고서 못 믿겠다는 거야” 하니까, 무릎을 딱 치면서 “그러면 그렇지 모략들이구먼”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한 바탕 폭소가 터진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우문현답의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질문하기를 “여호수아서에 보면 여리고 기생 라합이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군을 자기 집 지붕에 숨길때 여리고 왕이 보낸 사람들이 수색하려고 집에 들렀으나 기생 라합은 두 정탐군이 이미 달아나 요단강 쪽으로 도망갔으니 바로 쫓아가면 해지기 전에 잡힐 것이라고 한 것은 분명 거짓 증거가 아닙니까?” 했더니, “그러면 6.25 난리 때에 내가 임자의 집에 숨어 있었다면 수색하러 온 사람에게 여기 벽장에 숨어 있습니다 하고 알려 주었겠는가?” 하시는데 저는 유구무언이고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으며 좌중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인지 킥킥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질문을 잘 하지 않는 것은 가만히 있으면 본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1967년 11월 23일에 서울노회 동원교회에 부임하여 1968년 3월 10일 주일 오후 2시에 담임목사 취임식을 갖었는데, 은사이신 김재준 목사님께서 설교를 해 주셨습니다. 그날 성경본문은 마태복음 28장 16-20절을 중심으로 “주님의 마감 부탁”이란 제목으로 저의 일생 좌우명이 되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이는 주님의 최후의 명령인 동시에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주시는 최후의 분부로 명심불망의 교훈이 되었습니다. 불효자식이라도 부모의 최후유언은 지키게 되듯이 주님의 마감 부탁 스승의 교훈은 평생토록 반추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도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성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읽고 명상하면 감란산에서 승천하실 때 마감으로 부탁하시는 주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힘주어 말씀하시는 모습이 떠오른 것입니다.

(2006년 1월 24일 장공 김재준 목사 19주기 추모예배 추모사)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5호] 2006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