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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보 제7호] 강연회 - “장공의 교회론, 무엇이 새로운가?” / 김경재 목사

작성자
changgong
작성일
2017-07-05 12:59
조회
811

[제7호] 제10회 장공기념 강연회 - 전주강연

“장공의 교회론, 무엇이 새로운가?”
- 교회의 영광ㆍ유혹ㆍ그리고 사명”(엡 1:23)

김경재 목사
(본회 이사 /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Ⅰ. 들어가는 말 : 논제의 연구 목적과 의미

오늘 강연의 주제는 “장공의 교회론, 무엇이 새로운가?”이다. 장공 김재준 목사(1901~1987)가 타계하신지 어언 20년이 지났다. 장공의 생애 말년부터 이미, 한국교회는 한국사회로부터 비판과 의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는데, 1990년부터 한국교회는 위기상황에 돌입해 있는 형국이다. 최근 정부 통계청의『2006 한국의 사회지표』1)에 의하면, 한국(남한)의 총인구수 47,254,000명 중 종교인 총수는 25,091,000명(53.1%)이다. 그 종교인구 총 수 중 불교신도는 10,789,000명(43.0%), 개신교 신도는 8,656,000명(34.5%), 천주교 신도는 5,168,000명으로 집계되었다. 개신교인 신도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숫자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도덕적․영적 지도력이나 신뢰도에 있어서 한국사회로부터 신랄한 비판과 자성을 촉구하는 권고를 받고 있다.

1) 이 자료는 2005년에 정부가 행한『인구주택 총조사』기본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분류한 것으로서 가장 신빙성과 객관성을 담보한 자료가 된다. 통계청발행,『2006 한국의 사회지표』, 591쪽. 종교인구분포(2005) 참조.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위기의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한국 근대사 개화기에 큰 공헌을 하였고, 한국사회의 희망의 대상이었던 개신교 교회가, 지난 1970-80년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양적 급성장을 이루었다는 외국인들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왜 침체․멸시․폄훼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한국 교회의 치유와 갱신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우리는 양심적 기독교 지성인이요 선각자인 장공의 교회론을 깊이 경청하고, 그 치유와 복원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근본이 바로서면 길이 생긴다”(本立而道生)고 장공은 휘호를 남겼다.

장공에 대한 한국 개신교계의 정당한 평가와 자리매김은 아직도 요원하다. 아직도 보수적 개신교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장공신학 사상은 신신학․이단신학․자유주의 신학․인본주의 신학․성경영감부정 신학․교회선교와 부흥에 부적합한 신학이라고 매도한다. 과연 정말 그러한가? 강연자는 그렇게 장공신학을 오해하거나 폄훼하는 사람들에게 장공의 교회론의 정당성과 신선한 새로움을 보여주려고 한다.

장공은 지극히 교회를 사랑한 신학자였다. 그는 교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약하고 문제점을 그 안에 보듬고 있는 현실교회를 떠나서 추상적인 기독교를 말하는 관념주의 신학자가 아니었다. 그가‘회심’을 경험하고 복음에 접한 계기가‘승동교회’에서 있었던 부흥 사경회였으며,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된 그 감격을 가지고, 20대 유학의 길에 오르기 전 3년 동안 고향 땅 함북 경흥군 창꼴마을에 소학교를 세우고, 주일학교를 시작하여 예배를 인도하였다.

미국유학 시절 한민족을 교회를 통해 복음으로 살려내자는‘도원의 결의’를 한 믿음의 삼총사 송창근․한경직․김재준은 약속대로 각각 바울 교회(현.성남교회), 베다니 교회(현.영락교회), 야고보 교회(현.경동교회)를 개척하여 세우고, 제자 강원룡 목사가 안수 받고 유학에서 돌아 올 때까지, 10년 동안이나 경동교회 당회장직을 계속했다.2) 한국신학대학 초창기와 장로교 분열의 와중에서, 주일과 수요일 예배마다 교회강단을 지킨다는 것은 교회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군사혁명의 폭거에 의해 졸지에 신학대학 학장직을 물러난 후에도, 전경연 교수와 더불어 서울 쌍문동 거주지역에 성북교회 개척재단을 쌓았다. 장공이 국내외에서 참여한 1970-80년대 민주화투쟁․인권투쟁․평화통일 운동도 어디까지나 신앙 양심의 명령에 따라, 교회기반을 근거로, 세계교회 유기체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아 추진해 나갔다.

2) 『김재준 전집』, 제9권, 100∼101쪽, 이하『전집』으로 표기함.『전집』, 제13권, 337∼343쪽. 참조.

장공 김재준 목사는 진보적 신학자요, 역사참여의 신학자로서 공헌을 했더라도 교회론이 약하거나 문제라고 오해하는 장공의 교회사랑을 모르는 제자들이 많다. 장공신학을 가지고서는 교회부흥 시키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기장의 목사들도 많다. 과연 그런가? 그들이 말하는‘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장공의 교회론이 도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은 옳은가? 총 18권으로 편집된『장공전집』안에 들어있는 교회론에 관한 논문, 강연, 설교들 약 80편을 자료로 하여, 그 진위를 밝혀보자는 것이 강연(논문)의 목적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사회는 급성장한 한국교회 모습 속에서, 자본주의적 경쟁사회에서 성공한‘기독교 종교단체’를 볼 수 있을 뿐, 그 안에서 약동하는 ‘복음의 생동력’ 그리고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회본질의 핵심이라고 교리로서 말하는 하나의(Una)․거룩한(Sancta)․보편적(Catolica)․사도성(Apostolica)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항의하기 때문이다.3)

3) 『전집』, 제16권, 141∼144쪽.

Ⅱ. 교회의 본질과 그 영광

장공의 심성과 품격 형성단계인 청소년 시절, 대자연의 품속에서 성장하였기에 그의 신학적 담론은 항상 두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첫째, 신학적 담론이 매우 생명론적이며 시심(詩心)이 풍성하여 은유적(隱喩的)이다. 둘째, 대자연속에서 큰 나무가 자라나듯,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 사이에 초지일관하는 본질적 통일성이 있다. 유학에서 귀국 후, 본격적인 신학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한 1930년대 이후 소천하는 1980년대 50여 년 동안 그의 신학적 기본사상에는 심화확장이 있을 뿐 본질적 변경이 없다. 교회론에 있어서도, 교회의 본질과 그 영광이 무엇이냐고 할 때 항상 그의 관점은 다음 세 가지 명제로서 나타난다. 그런데 그 세 가지 근본명제는 평범한 듯 들리지만 매우 근본적(根本的, Radical)인 관점이기에, 그의 교회론에는 새로움과 혁명성과 비판적 신학지성의 논리적 일관성(consistent coherence)이 있다.

1) 헤브라이즘의 창조신학 전통:교회는 하늘씨앗이 역사의 땅에 심겨져 자라가는신령한 생명나무요 하늘기관이다.

장공의 교회론이 새롭고 혁명적인 것은, 2,000년 동안 서구정통신학을 지배해온 이원론적 사고를 극복하고, 교회론이나 기독교 이해를 헤브라이즘의‘창조신학 전통’에서 이해하는 데서부터 온다. 히브리적 ‘창조신학 전통’이란,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본질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보며, 하늘(초자연 영역)과 땅(자연적 영역)이라는 피조계의 두 차원을 구별하기는 하되 분리시키지 않고 통전적으로 이해하며, 그 전 영역을 하나님의 구원계약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1945년 한반도 남과 북에 아직 정부가 설립되기 전 해방정국에서, 장공은「기독교의 건국이념」이라는 중요한 강연을 했다. 장공의 연령 45세가 되던 해, 그의 창조적 사유의 절정기에서 다음과 같이 갈파한다.

기독교인의 최고사상은 하나님 나라가 인간사회에 여실(如實)히 건설되는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 라’라는 것을 초세간적(超世間的)인 소위 천당이라는 말로서 그 전부를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전생활(全生活)에 군림하여 성령의 감화가 생활의 전 부문을 지배하는 때,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며, 이것이 전 사회에 침투되며 사선(死線)을 넘어 미래세계에까지 생생발전(生生發 展)하여 대극(大極)의 대낙원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전모(全貌)일 것이다.4)

4) 『전집』, 제1권, 159쪽.

위 인용문에서 나는 장공의 ‘대승적 기독교론’5)의 대선언문 기본명제를 읽는다. 위 명제에서 핵심적 어휘는 하나님의 나라, 초세간적인 것과 현세적 전 생활,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감화, 죽음을 넘어선 미래 영생, 생생발전하는 생명세계의 완성 등이다. 왜 단순한 영의 세계, 이데아 세계,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고 창조세계 및 역사현실세계 전체구원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장공은 주장하는가? 장공은 몸 없는 구원을 히브리적 사유세계에서 반대하기 때문이다. 몸은 구체적 현실성, 창조의 세계성, 역사적 현실성을 상징하고 총괄하는 성경적 실재관에서 핵심어휘다. 장공은 1952년에 이렇게 말한다.

5) 김경재,『울타리를 넘어서:대승적 기독교론 서설』, 제1장,“대승적 기독교에서 본 신앙세계와 현실세계의 관계”(도서출판 유토피아, 2005), 15∼39쪽, 62쪽.

히브리 사상에서는 몸 없이는 생명이 구현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몸으로 하지 않고서는 생명적인 움직 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의 부활’을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삼아왔던 것입니 다.…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기 위해서는 몸으로 속죄제물을 삼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몸으로 부활하 여 신자격(神子格)을 증시(證示)하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설교하고 가르치고 합니다. 기도하고 심방합니다. 그러나 마감 한 가지 즉 몸으로 그것을 증거하는 삶 자체가 증시(證示)되지 않고는 새 역사 창건의 전선부대가 될 수 없습니다.6)

6) 『전집』, 제2권, 316쪽.

몸을 중시하는 히브리적 창조영성 전통에 선 장공에게서, 역사현실을 간과하거나 신령성을 추구하노라고 하나님 나라와 역사 현실관계를 이차적 관계로 보려는 일체의 영지주의적 기독교, 헬라철학적 기독교에 맞서 성경적이고 히브리적 기독교 신앙관의 기본 주춧돌을 놓는다. 그 중심 화두는‘천당’이 아니고‘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주기도문」중심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장공의 교회론은 하나님의 나라가 현실 역사를 소재로 하여 창조적으로, 영적으로 변형시켜 간다는 것, 그 임무를 전담한 교회는 역사 속에 있으나 역사를 넘어서고 역사에 속하지 않는‘하늘에 속한 기관’이라는 자각을 수없이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심어지는 것이요, 땅에서 나와서 하늘로 올라가는 바벨탑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자연과 역사 안에 있으나, 자연과 역사에서 난 것은 아닙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땅에 심는 것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씨는 땅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어떤 형태 속 에 감춰져, 우리 땅에 속한 인간들에게 심어집니다.…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육체화한 것이 그리스도이 십니다. 도성육신(道成肉身)이라는 것입니다.7)

7) 『전집』, 제4권, 366∼367쪽.

장공은 하나님 나라의 내재적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이해의 기본 출발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늘의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랑의 공동체입니다.8)

8) 『전집』, 제18권, 13쪽.

교회는 신용조합이나 주식회사처럼 사람들이 발기하여 조직한 단체와는 다릅니다. 교회가 개인과 사회를 저 변으로 하고 서 있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차원, 즉 하나님이라는 정점과의 관련과 거기서 오는 ‘영’이 교회 탄생의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 사회단체와 구별되는 점입니다. 이 ‘영’의 경험은 인간의 심리구조와 기 능 이상의 ‘능력’입니다.9)

9) 『전집』, 제16권, 173∼174쪽.

거기에 교회의 영광과 비밀과 권능이 있다. 교회의 영광과 권위는 인간적 종교단체로서의 그 크기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뜻 있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교회당을 짓고, 기독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의미 있는 단체를 구성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 종교인들이 모인 곳에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하거나 성령이 현존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화되고, 살아계신 성령이 현존하면서 인간을 불러 모으는 곳에 교회가 있다. 그 순서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장공의 주장이다. 장공의 기독교 이해․역사이해․교회이해는 서로 맞물려 있는 세 가지 핵심어휘인데, 그 삼자관계를 관련시키는 신학적 해석학의 안목은 리챠드 니버의 ‘문화변혁자로서 그리스도론’이라는 것이다.10) 그리하여 장공의 신학체계를 가장 짧게 요약한다면 아래와 같이 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신학적 실존의 역사참여와 교회개혁의 열정이 거기서부터 나온다.

10) 『전집』, 제7권, 33∼47쪽. 여기에서 장공은「H. 리챠드 니버의 신학과 윤리」라는 제목의 무게 있는 논문을 서술했는데, 장공 자신 이 번역한 니버의 작품 『그리스도와 문화』를 요약하면서, 그의 복음에 의한 문화와 사회의 가치변혁설, 변혁의 의미, 성육신의 신학적 의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탕에서 터놓은 일관된-철저한 유일신관(consistent-radical monotheism)을 소개한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역사라는 소재(가루 서말)에 하나님 나라라는 속량역사(누룩)를 심어, 결국은 그 소재인 인 간역사 전체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화 또는 그 감화아래 있게 하는 ‘하나님-사람’의 운동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11)

11) 『전집』, 제4권, 303쪽.

2) 성육신적 영성신학 전통 :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역사 속에서 그 형태를 취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장공교회론의 몸통에 해당하는 신학적 핵심은‘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라는 바울신학적 이해이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몸’ 이론은 은유이면서도 실재이다. 장공교회론은 지상에서 보이는 건물 본체에 해당하는 ‘그리스도 몸’론과, 그 건축물의 기초공사로서 땅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부분은 장공의‘성육신적 영성론’이다. 핵심을 요약한다면, 장공의 교회론은 그의 성육신 신앙의 기조 위에서 교회란 역사 속에 가시적 존재로서 현존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듣는 일반적 성경지식 같지만, 알고 보면 사실 장공교회론의 새로움과 혁명성은 거기서부터 모두 연유한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하여는 예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이라는 신적차원이 그 모퉁이 돌로 되었다고 하겠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가 객관적인 실재(Reality)로 되고, 성령의 강림이 인간성의 내적변혁을 위한 주관적 활력소(Dynamics)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의 고안과 설계에서 만들어진 메카니즘이 아니다. ‘영’으로 탄생한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자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신자가 모여서 교회를 만들었다기보다는, 교회라는 어머니 품에서 신자가 나고 자라는 것이란 말이다.12)

12) 『전집』, 제2권, 254쪽.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장공의 교회론이 지닌 새로움의 두 가지 면을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 첫째, 위 인용문의 정신에 입각하면, 한국에 소개된 정통주의 신학의 반문화적․몰역사적․타계지향적․개인영혼 구원론적 신학구조 전체가 그 기초에서부터 부정되고 비판된다. “예수 믿고 천당가시요!”라는 전도구호가 중요한 기독교 구원론의 일부를 함의하지만, 그러한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십자가 사건과, 부활 후 성령강림 사건과, 그리스도 재림신앙 전체를 부정하는 반기독교적인 신앙론이 되고 만다고 장공은 본다.13)

13) 『전집』, 제4권, 487쪽.

둘째, 위의 인용문에서 다시 한번 더 주목해야 할 장공교회론의 키워드(key word) ‘몸’이라고 하는 글자에 따옴표를 붙여서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몸’의 강조가 히브리적 실재관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앞서서 이미 언급했다. 복음이 전파되어나가는 1∼2세기 그리스-로마의 헬레니즘 문화권 속에서, 플라톤적 실재관인 ‘이데아와 현상계’라는 이원론적 사고구조가 성경표현에 자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적 ‘창조영성’을 이겨본 적은 없다. 다시 말해서 ‘몸’이란 단순한 정신․영혼․이데아․관념․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에 대립되는 총괄적 어휘이다. 몸이란 구체적․현실적․형태적․육체적․가시적인 것의 총괄상징이다. 그래서 장공은 ‘몸’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몸’이었고, 교회는 말씀이 나라를 이루어가는 ‘몸’이다. ‘몸’은 현실의 보이는 실재(實在)다. 이상주의자들이 말하는 소위‘보편적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천적(天的)인 객체다.…왜 그는(사도 바울) 완미(完美)하지 못한 현실교회를 이렇게까지 소중히 여겼을까? 그것은 그래도 그것 밖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영의 사회적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그래도 복음선포를 맡은 것이 이 교회이며 속량역사의 본류(本流)가 여기 있기 때문이었다.14)

14) 『전집』, 제3권, 342∼343쪽.

거듭 강조하거니와 장공은 교회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교회를 냉소하거나 비판만 하고 불평과 불만과 분노만 터트리면서 현실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신도는 참 신도일 수 없다고 본다. 장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에 관심이 없다. 때묻고, 인간적 혈육의 찌꺼기 잡물들의 흔적이 섞여 있고, 불완전하고, 때론 부도덕한 교회일지라도 그것을 붙들고 참교회 되도록 개혁하는‘사랑의 비판’이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교회주의자이다. 장공은 바울서신에 나타난 초대교회들이 결코 이상적인 완전한 교회들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러한 구체적 교회를‘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고, 교회를 위해서 죽음을 사양하지 않는다고 말했음을 상기시킨다.

3) 성령론적 개혁신학 전통:교회는 성령의 내주와‘인간 혁명’사건의 연속으로서, 개혁되었고(Reformed) 항상 개혁해 가는(Reforming)‘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이다.

장공의 교회론을 그 심층적 차원에까지 파고들어가 이해하려면, 그의 신학적 사고의 바탈이 되어 있는‘성령론적 개혁신앙의 전통’을 이해해야만 한다. 흔히 일반적 장공신학 평가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 장공의 신학은 비판적 지성이 동반되는 개혁적 신학이기 때문에, 성령론적이라기보다는 인간 지성적면이 강하다고 잘못 판단한다. 개인 인간 내면의 영적 갱신보다는 사회구조적 역사변혁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신학자라고 오해한다. 장공의 남긴 글들, 특히 교회론에 관한 글들을 정독해 보면 장공이 얼마나 성령의 역사와 인간심령의 거듭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교회론에서도 교회는 본질적으로 영적 공동체이기 때문에, 성령의 직접적 현존과 역사하심 없이는 교회당․조직과 직제․신학과 교리․그리스도론․선교 열심, 그리고 ‘오직 성경만!’이라는 종교개혁의 모토마저도 모두 헛것이 된다고 말하는 성령을 강조하는 신학자이다. 이러한 강조는 장공의 생애 말년으로 갈수록 더 심화된다. 1983년 장공이 캐나다에서 체류한지 10년, 83세가 된 노옹은 친구 박재훈 박사와 함께, 캐나다 북부 ‘알켄킨 국립공원’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문득 영감에 사로잡혀‘성령 찬가’와‘새벽 날개 타고’라는 종교시를 수첩에 메모하여 적어 놓았다.15) 그 중에서 ‘성령 찬가’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15) 『전집』, 제17권, 40쪽∼54쪽.

그리스도 아는 지식 그리스도 믿는 심정
그런 것은 나에게
물 없는 우물
메마른 와디(乾谷, wadi)외다.

성령님 당신의 재창조 없이
“새 사람”없나이다.
“새 역사”도 없나이다.

성령님 능력 없이 교회도 선교도 없나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그것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성령의 폭포였습니다.
인간의 범죄성
백두산 천지보다

더 깊은 심연 - 그 밑바닥까지 뒤집는
성령의 폭포였나이다.

2천년 교회사는 잔잔하게 고요하게
흘러 흘러 억억만 인간들
마음밭 축이는
성령의 수로(水路)였나이다.

오, 성령님 은혜 하늘 어머니 사랑
그 무량애(無量愛) 품속에,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로
영원히 영광스레
살으오리다.16)

16) 위와 같은 전집. 47∼48쪽.

장공의 성령이해는 자연히 그의 신학적 배경이 되는 개혁파신학의 전통이 되는 끊임없이 개혁해 가는 신학과 교회론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생명, 영으로 다시 난 생명,…이것은 오순절 성령의 강림과 교회탄생을 계기로 구체화․현실화해 가고 있습니다.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곧 천국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회개했다 하더라도 그 뿌리에는 여전히 범죄성 탐욕이 배어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우리 개혁 교회는 한번 개혁한 것으로 정지할 것이 아니라, 계속 개혁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임과 동시에 ‘개혁해 가는 교회’(Reformig Church)인 것입니다. 진행형의 개혁교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의 본성이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17)

17) 『전집』, 제17집, 222∼224쪽.

이상에서, 우리는 장공교회론의 신학적 근본원리 세 가지를 살펴보았다. 정리하면 첫째, 히브리적 창조영성을 다시 복원하면서,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전피조세계를 새롭게 창조적으로 회복하신다는 대승적 교회론이다. 둘째, 히브리적 생명관을 복원하여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신약성경의 성육신론에 입각하여 교회란 역사 속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형체를 취한‘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해이다. 셋째, 그의 개혁신앙전통에 서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빼놓고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종말의 궁극적 성취가 이를 때까지 땅 위의 교회는 끊임없는 개혁의 대상이자 진행형 격인 실재이므로, 교회우상론을 경계한다는 점이다.

Ⅲ. 교회의 본래적 기능(사명)과 한국교회의 개혁 과제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와 행위’, ‘본질과 기능’, 다른 말로하여 신앙의 고백과 그 삶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야 한다는 점이다. 제2장에서 살핀 장공교회론상의 교회 본질론은 교회의 기능 혹은 사명과 불가분리적 관계 속에 있다. 여기 제3장에서 우리는 이제 장공은 교회의 본래적 기능(사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의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개혁과제를 아울러 성찰하고자 한다.

1) 교회는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혁명시키는‘새 인간 조성’의 탯집이라야 한다.

장공은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감화에 힘입어 이기적이고 혈육적인 옛 인간성을 변화시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원형적으로 나타나 보인 참 사람․새 사람․자유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켜내는 근원적 ‘인간혁명 사업’에 있다고 갈파한다. 장공은 교회의 일차적 사명으로서 인간혁명사업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교회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정상관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그 첫째 목 적을 삼는 것이다. 교회가 무엇이든지 선한 일이면 모조리 다 하고 싶고 또 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죄인과 화목하시는 복음을 전달하며 이 길을 명시하여야 한다.…교회는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케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성령의 내주(內住)로 말미암아 죄성(罪性)과 죄권(罪權)에서 해방되어, 영의 자유를 얻어 고통과 사망의 공포에서 벗어나 영생의 희열과 평화를 얻게 하는 곳이다.18)

18) 『전집』, 제1권, 305쪽.

장공은 교회의 사회참여나, 역사변혁의 임무도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에로의 변화받는 인간혁명의 근원적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강조하였다. 선한 나무에서 선한 열매가 맺는 법이기 때문이다. 장공은 80여 평생 그의 주위에 사회운동한다는 사람들, 교회정통 신학자들, 교회부흥과 선교 사역한다는 유명한 목사들, 교회정치 행정가들을 많이 겪었다. 그리고, 설혹 한번 성령은혜로 개종하고 목회자가 되고 직분받은 사람이 되었을지라도, 인간성 저 깊은 마음 바닥에 남아있는 죄성과 죄권을 보고‘인간혁명’이 제 일차적 사명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서 일차적 복종대상 혹은 일차적 순명대상을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에게 하도록 강조하지 않고 교묘하게 ‘성경말씀’에 복종하거나 교회에게 일차적으로 충성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있다는 것을 고발하고 비판한다. 성경절대영감설에 근거한 성경강조는 ‘영의 자유로운 복음신앙’을 ‘책종교’로 변질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로 하여금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은 몸을 몸 되게 하는 두뇌(머리)․심장․그리스도의 영적 현존 자체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게 일차적 순명을 하기보다는 성경․교회운영․교권․정통신학에 일차적 순종을 명하는 형국이다. “예수를 통하여 교회와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보지 않고, 교회를 통하여 예수를 보고 국가와 사회와 세계를 통하여 예수를 보았기 때문에”19) 거기에서부터 기독교의 잘못이 연유한다고 강조한다. ‘성경 중심’을 강조하기보다는 ‘예수 맘’ 중심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에 던지는 장공교회론의 일차적 권고사항이다.

19) 『전집』, 제16권, 161쪽.

카톨릭교회에서는 법황을 교회의 최고 권위로 내세운 대신에 개신교에서는 성서를 교회의 최고 권위로 주제 (推載)한 것이다.…이제는 성서가 요지부동, 영원불변의 객관적 물상적인 ‘성물’(聖物)로 지성소에 안치되고 교회는 사실상 그것을 예배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이제는 이 ‘책의 종교’에서 탈출하여 예수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하겠다. 경전과 조직과 규칙과 의식 등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 계신 예수를 그 속에 유폐하거나 사실상 예수 없는 그런 것들을 지키고 있거나 하는 교회여서는 안 되겠단 말이다.20)

20) 『전집』, 제9권, 60∼61쪽.

갈릴리 예수의 일차적 복음운동은 철두철미 ‘인간성 재건’의 종교였다고 장공은 강조한다.21) 2,000년 신학사상사와 교회사를 뒤돌아 볼 때, 지나치게 교리옹호, 교회당 건축 등에 열성을 쏟음으로써 인격적․영적․자유로운 복음신앙을 관념적․율법적․노예적 종교로 전락시키지 않았는가 반성하자고 촉구한다. 교회는 “산 인간들의 아름다운 삶의 건축, 인간성의 ‘그리스도적인 재창조’”에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장공은 역설한다.

21) 『전집』, 제4권, 3쪽.

2) 교회는 본래적 창조질서에서 이탈하고 변질되어 버린 역사적 현실을, 예수 그리스도로서 조형원리(造形原理)로 삼아, 창조적으로 변혁해 가는 역사변혁의 사명을 지닌다.

장공의 교회론에서 역사참여, 역사변혁론은 한국의 신학사 및 교회사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공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유동식은 그의 한국신학사 개관에서, 한국신학의 초석을 놓은 세 사람으로 박형룡, 김재준, 정경옥을 열거했다.22) 박형룡을 성서와 복음을 ‘근본주의적 교리적 시각에서 이해’한 분으로 보았고, 정경옥을 ‘자유주의적 실존적 시각에서 이해’한 분으로 평가했으나, 김재준을 ‘진보주의적 역사적 시각에서 이해’한 분으로 파악했다.

22) 유동식,『한국신학의 광맥:한국신학사 서설』(전망사, 1982), 133∼142쪽 참조.

그런데, 장공의 교회론에서 역사참여적 변혁론은 결코 낙관주의적 역사발전이론이나, 상황윤리적이거나, 세상의 시대정신과의 적절한 타협이나 동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 현실 사이의 긴장․대립․갈등․영적 투쟁을 전제한다.

교회와 시대와의 접촉은 부단의 투쟁을 의미한다. 먹느냐 먹히느냐하는 격렬한 싸움이다. 교회가 시대를 정 화(淨化)하느냐 시대가 교회를 삼키느냐 하는 투쟁이 계속된다. 그리고 자칫하면 교회는 그 섭취한 ‘시대’ 때문에 발병(發病)하여 약체화(弱體化)한다.23)

23) 『전집』, 제1권, 307쪽.

위의 인용문장은 오늘의 교회를 성찰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장공은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라는 본질적 특성이 근대사회의 국가주의, 자본주의, 중산계층을 태반으로 하여 자라났기 때문에, 갈릴리 예수의 복음을 중산계층 중심의 자본주의적 기독교로 변질시킬 태생적 한계와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국가지상주의나 제국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날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적 가치질서에 편승하고 야합하여 덩달아 춤을 추면서 교회의 성공과 실패의 척도로 삼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다시 말하자면, 리챠드 니버가 분류한 ‘그리스도와 문화’ 관계의 다섯 가지 유형 중에서 현대 한국교회는 ‘문화의 그리스도’(Christ of Culture)를 주선(主線)으로 삼고 ‘문화 위에 군림하는 그리스도’(Christ above Culture)를 첨가하는 종합형인 셈인데, 가장 경계해야 할 교회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한국교회 안에서, 교회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강변하지만, 갈릴리 예수의 몸을 보지 못하고 힘의 지배․성공지향과 보장․다산과 축복종교․전쟁을 불사하는 제국주의적 정복종교․섬김은커녕 지배종교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2007. 7∼8) 아프칸 선교봉사단체의 피랍사건의 숨겨진 근본원인이 거기에 있다.

그리하여, 장공은 성속이원론적 타계주의와 몰역사적 개인구원관에 기초한 소승적 교회관을 극복하고,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형성을 위임받았다는 대승적 교회관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교회는 노아방주나 여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문화의 장점인 자유로운 기업정신, 합리적 경영정신, 개인의 자유와 인격의 존엄성, 창의성과 모험정신을 장려하되 물신숭배적 경제제일주의 가치관을 교회는 정화시켜야 한다. ‘수량적 힘 숭배와 업적지상주의적인 공로신앙의 유혹’에서 벗어나 ‘비움과 섬김의 영성’을 근본으로 삼는 하늘 기관이 되도록 교회의 체질을 개선해 가야 한다. 이제는 ‘십자군적 마인드’(the crusading mind)가 아니라 ‘십자가를 짊어지는 마음’(the crusified mind)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교인들이 ‘목적을 이끄는 삶’을 살도록 권고하되, 실적주의적이거나 공로주의적이거나 행여 행동주의적 강박관념에 다시 포로가 되지 않도록,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인 ‘복음의 자유인으로서 자발적인 사랑과 봉사의 삶’이라는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한마디 부연할 점은, 교회의 존재 이유로서의 세상 나라를 하나님 나라에로 변혁시켜가는 사명에 대하여 낙관주의는 금물이려니와 패배주의나 비관주의도 금물이다. 특히 요즘 세상에서, 세계와 한국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거대한 ‘타이탄니즘’ 곧 정치․군사․경제․과학․매스컴 등 거대한 현실적 힘들에 압도당하여, 교회가 세상을 변혁시켜간다는 것은 ‘소박한 공상’이 아닌가 의기소침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공은 이 하나님의 변혁사업은 전우주적 스케일과 긴 시간을 가지고, 나무가 자라듯 서서히 그러나 끈질기게 이루어져 가고야 말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3) 개교회주의․교파주의․제도적 교권주의를 탈피하고 에큐메니칼 정신으로 ‘교회의 하나됨’과 ‘범우주적 공동체로서’의넓고 높은 마음을 회복할 것.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장공의 교회론은 철저하게 교회를 ‘하늘기관’, ‘영적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내주(內住)를 경험한 산돌들의 집합체’ 등이 강조되는 초대교회의 원형을 지켜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순절교회의 원형적 교회 모습대로 교회란“ 영의 충만한 자유․사랑의 교류․인격의 개방성”을 담보하는 근본모습을 항상 지켜가야 한다는 것이다.24)

24) 『전집』, 제2권, 362쪽.

교회가 공동체로서 존재하고 증언하려면, 일정한 조직․제도․규범․질서가 필요함을 장공은 인정한다. 장공은 조직교회로서 땅 위의 교회가 겪는 유혹은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개별교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현존에 충성하는 것과 제도적 조직교회에 충성하는 것과를 곧바로 동일시하여 ‘교회주의’에 빠져버리는 유혹이다. 그렇게 되는 경우, 흔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고, 희생하면서 작은 소자들을 섬기신 예수의 모습은 살아지고, 교회의 위용이 커지고 강해지고 교인숫자와 예산규모가 증대하는 것에 비례하여 자동적으로‘그리스도의 현존’이 담보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교회가 유혹 받는 둘째 경우는, 교회가 기관들로서 당회․노회․총회 등 치리기관을 구성하여 ‘객관적 권위’를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행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소위 말하는 ‘교권주의’의 유혹이 고개를 들고 만연한다. 동방정교회의 교리중심의 교권주의, 로마 카톨릭교회의 교황중심의 교권주의, 개신교의 성경중심의 교권주의가 모두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신하려는 유혹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장공의 말을 들어보자.

교회의 지도원리의 중점은 어떤데 둘 것인가? 교리도 교권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 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의 주인이시고, 교회의 주인이신 살아 계신 그리스도 자신을 최고의 권위로 뫼셔 야 한다. 그는 죽은 이가 아니다. 살아 계신 ‘인격’이시다. 그의 심정은 똑똑히 알려져 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가득한 분”이시다.25)

25) 『전집』, 제2권, 41쪽.

장공 자신이 경동교회의 당회장을 지내셨고, 기장교단의 총회장을 지내셨기에 조직교회와 기관들의 필요성과 그 탈선유혹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요즘, 한국 개신교 교파들의 총회현장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행태에 대하여 장공은 반성을 촉구하는 신학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당회․노회․총회는 그리스도의 신적 권위를 도맡은 권위기관이라기보다는 사무처리의 행정기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를 더 효과적으로 소통시키고 그리스도인들의 친교와 연대를 강화하게 하는 도움이로서 기능이 본 임무라는 것이다.

장로교의 총회와 노회는 교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모이는 것이 아니다. 사무처리와 친교를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리쟁론과 교리재판을 위한 모임이란 것은 역사적으로 보아 진정한 의미에서 ‘은혜’를 희생시킨데 불과하였으며 따라서 ‘진리’자체까지도 상실하였던 것이다.26)

26) 『전집』, 제2권, 42쪽.

한국교회는 교파주의를 극복하여 진정한 교회의‘하나임’을 회복해야 하겠다. 장공은 10년 동안 해외 캐나다에서 민주평화운동을 지도하시고, 1984년 귀국하셨다. 귀국길에 오르기 위해 토론토 공항으로 나아가시는 길에서, 장공의 차남 김경용 장로는 아버지께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제 한국에 들어가시면 무슨 일을 제일 하고 싶으세요?” 장공은 즉답을 하셨다. “교회가 하나 되게 하는 일에 봉사하고 싶다.” 생애 후반기 근 20년 가까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및 평화통일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오신 부친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아드님으로서는 다소 뜻밖의 말씀이었다고 술회하는 것을 나는 들은바 있다. 그만큼, 장공은 교회일치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강조하였다. 장공은 평생 기독교란 ‘범우주적(汎宇宙的) 사랑의 공동체’라고 강조하였다. ‘범우주적’이란 말은 ‘전우주적’이라는 말과 같으며 역사만이 아니라 자연까지 포함하고, 땅만이 아니라 하늘까지도 포함하고, 개인구원만이 아니라 전사회가 구원받는 종말론적 은총의 승리를 의미한다.

기독교는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교회당 수, 교인 수 등의 증가도 축복이겠습니다만, 그리스도 성격의 신도, 그리스도의 씨가 알맹이로 영근 하나 하나의 신도가 더욱 중요합니다. 결국 역사는 소수의 창조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 합니다.27)

27) 『전집』, 제17권, 280쪽.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합니다만, 그것이 우리의 죄를 심판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속량사업 의 완성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결론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건설이 그래도 하늘나라가 땅에 임하는 광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범우주적이란 말은 모든 자연계까지 기념하는 것입니다.… 생명존중, 인간존중, 세계평화가 모두 한 보자기에 싸여 있습니다.28)

28) 『전집』, 제17권, 379쪽.

교회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여 열린세계 속에 새로움을 창조해 가면서, 그리고 역사와 자연을 소재로 하여 옛 것을 변혁해 가면서 현실 한 복판에 있는 초월의 능력으로서 현존한다. 그런데, 세계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와 가치들로 가득차 있다. 특히 다양한 종교들을 교회는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4)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념들․제도들․문화전통들을 화해시키고 더 높은 차원에서 온전하게 하는‘하나님 어머니’의 품인즉, 토착화된 한국교회 형성에 노력할 것.

장공은 칼빈의 말을 자주 인용하면서 교회의 모성적 성격, 양육적 성격, 그리고 포용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못한 자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칼빈)는 말을 인용하면서 신도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기능을 강조한다.

장공은 한국에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된 기독교가 공헌도 많지만 신학적 방향성에 있어서는 “반문화적이고 타계적인 정통주의 신학”이었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전통적인 한국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선교현장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본다. 특히 제사문제의 전적 폐기나 타종교 일체를 미신적 종교로서 이해하고 철저한 박멸태도를 보인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요컨대 우리 한국인은 원시종교인 무교는 논외로 하고 유교 불교 등 기독교 아닌 타종교를 받아들인 이후만 하더라도 약 천 오백 년의 긴 역사를 이룩해 온 것이다. 좋든 궂든 이것이 한국인의 체질을 형성하고 있으 며 한국 사회생활의 전형(典型)을 조성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우리나라에 온 초대 선교사들은 이 점 에서 너무 고자세였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하나의 공백(空白)과 같이 다루고 있었다. 무엇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악의의 소산이라 하여 일망타진을 기도했던 것이다. 불당의 불상이나 유교의 제사를 단순한 우상숭배로 치부하여 그 박멸을 기도(企圖)했다.29)

29) 『전집』, 제7권, 341쪽.

장공은 유가의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유교적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이며 집안 어른들의 올곧고 지조 있는 선비적 삶의 모습도 보아왔다. 그리고, 장손 집안으로서 조상제사도 모시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 결과 장공은 유교의 가치관이나 제사제도가 미신이거나 악마의 소산이라고 도저히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장공은 성령의 감동감화를 받아 복음을 받아드리고 기독교 신앙의 영적차원의 깊이와 높이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편적 계시와 무한사랑을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교가 전파해 오기 전에 종교는 모두 악마적 미신종교라고 가르치는 ‘배타주의적 선교신학’을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장공은 세계천주교의 20세기 최대 사건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가 타종교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여 배타주의에서 포용주의로 일대전환을 하던 같은 시기에(1965)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기독교 사상지’에 실었는데, 당시로서나 지금으로서나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헌이 된다.

동양고전에도“天生萬民 作之君 作之師”라 하여 어진 임금, 고명한 스승들이 다 하늘의 명을 받들어 만민을 교도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우리는 타종교가 악마의 소산이라는 것보다는 자유하시는 성령의 역사(役事)에 의한 하나님의 단편적인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받는 인간의 정황(情 況)이 어스름 달빛처럼 희미한데서 그 나타남이 흐리고 또 단편적인 것으로 된 것이라 하겠다. 이것이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함을 이루었다.30)

30) 『전집』, 제7권, 342쪽.

위와 같은 장공의 타종교(이웃종교)에 대한 신학적 태도를 현대 종교신학자들은 ‘포용주의적 태도’(Inclusive attitude)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보편적 계시’를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다 온전한 계시가 드러났다고 보는 ‘성취설’이라고 부른다.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보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은 한국 기독교(개신교)가 기존 전통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취하거나, 심지어 우상종교로 매도하는 것을 기독교의 독단, 독선, 무지의 결과라고 비판적으로 본다. 적어도 장공이 가르친 ‘포용주의적 태도’로 전환하면서 이웃종교들과 ‘대화와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최소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신앙인으로서 최소한 갖추어야 할 윤리적 자세만을 놓고 보더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생명을 낳고 길러준 조상들을 모두 ‘우상숭배자’로서 매도하고 ‘지옥에 갈 사람들’이라고 결론에 도달하는 패륜적 선교신학을 용납할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의 우주적 사랑과 보편적 계시를 믿는 기독신자는, 성서의 하나님이 1885년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입국하기 이전에 한민족 역사와 삶이 부재(不在)하였다는 문화제국주의적 기독교 신학을 더 이상 받아드릴 수 없다. 셋째, 오늘날 세계현실은 다양한 세계종교들이 대화․협력함으로서만 지구촌이 당면한 생존을 위한 대책을 감당할 수 있다. 절대빈곤의 극복, 전쟁종식과 평화증진, 전염병의 방지와 구제, 특히 생태자연환경의 보존과 회복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다.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과정에서 배타주의적 태도는 금물이다. 동시에 종교혼합주의적 태도도 또한 금물이다. 장공은 기독교 신앙이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형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우주적 보편종교로서의 더 넓은 포용력과 전통문화를 대하되 겸손․존경․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생활신앙으로 복음증언 할 것을 강조하였다.

Ⅳ. 맺는 말

에필로그에서 다시 장공의 교회론을 요약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본 강연(논문) 서두에서 제기했던 장공의 교회론에 대한 일부교계나 교단에서의 비판적 견해가 옳은지의 여부를 정리해 봄으로써 결론을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

첫째 질문은, 장공의 신학은 그가 한국 신학사에서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비판적 기능 때문에, 교회론이 약하거나 현실교회에 관하여 관심이 약하지 않느냐는 의구심이었다.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장공은 교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진정으로 현실교회를 사랑하고 바로 세우고자 노력했던 신학자요 복음적 교회론을 제시한 신학자였다는 점이다. 도리어,‘보이지 않는 교회론’을 내세우면서 이상적 교회이론 명분으로 현실교회를 냉소적으로 비판만 하는 설익은 지성인들에게‘교회는 신도의 어머니’라는 칼빈의 교회관을 제시하면서 현실교회에 성실하게 대하며, 개혁할 것은 개혁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어디까지나 교회를 사랑하는 맘으로 그리할 것을 촉구하였다.

둘째 질문은, 장공은 역사참여와 현실참여를 하면서 사회구조적 변혁에 일차적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영성문제 곧 인간 개인의 근본적 구원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의 비판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의 역사변혁 이론은 그보다 더 앞선 ‘성령 안에서의 철저한 인간변혁’을 전제하고 강조한 것임을 살폈다.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교세확장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근본적인 ‘인간 혁명’”에 있음을 강조했다.

셋째 질문은, 장공은 자유주의적 신학자이기 때문에, 역사낙관주의에 빠진 인본주의자요, 성경이 말하는 역사심판과 종말과 사후영생을 부정하는 신학자가 아닌가의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의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비젼은, 하나님의 심판이나 죄에 대한 정죄보다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더 강조한 복음적 신앙이요, 역사 낙관주의적 인본주의가 아니라, 종말의 날까지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긴장․갈등․투쟁을 강조하는 신율적 신학자임을 살폈다.

넷째 질문은, 장공은 성경연구에서 비판적 성경연구방법을 도입하자고 강조한 신학자였기에, 성경의 영감성과 계시성을 무시한 자유주의 신학자이며, 성경권위를 지키는 교권을 무시한 학자가 아닌가라고 비판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성경을 성경되게 하는 것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므로 복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요, 성경은 그 ‘증언적 경전’이기 때문에, 성경문자적 영감설에 기초하여 기독교를‘책 종교’로 만들지 말라는 것과, 교회행정적 집합체인 노회나 총회의 권위를 그리스도 예수 자신처럼 내세우는 것은 탈선이며, 교회의 유혹임을 살폈다.

마지막 결론적으로 강조하자면, 장공은 철저한 삼위일체적 유일신 신앙에 입각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하고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라!”는 20세기 한국 교회의 예언자 정신의 폭발이었다. 그의 교회론의 핵심은 성육신적 영성신학에 철저히 기초한‘그리스도 몸으로서의 교회’를 강조하면서, 교회의 자기절대화와 우상화와 세속화를 경고하였다. 교회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실현을 도모하면서 끊임없는 개혁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로서 변혁해 가야 한다는 ‘생활신앙’ 강조자였다. 그는 교회가 씨앗이 싹터 거목이 되어가듯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강건해지기를 원하는 것이며, 조급한 급성장론이나 물량적 거대교회주의를 경계한 것이다. 교회의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은 분리할 수 없이 함께 가는 것이지만, 특정 상황에서 ‘질과 양’ 어느 한 쪽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에는 단호하게 질을 선택하라고 강조하신 신학자였다. 다만 현재 한국교회지도자들의 ‘영적 탐욕’ ・ ‘명예욕’ ・‘권력욕’이 장공의 교회론의 본 의도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것 일뿐이다. 장공의 교회론은 성경에 없는 교회론을 말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고, 철저히 성경이 증언하는 본래적 교회모습, 그리스도의 마음자리, 복음의 본질에서 교회를 이해하기 때문에 ‘새롭고도 혁명적’ 촉매기능을 하여 한국교회를 정화시키고, 치유하고, 갱신시킬 수 있는 교회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2007년 10월 30일 전주 금암교회에서 열린 “제10회 장공기념강연회”- 전주강연 원고이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7호] 2008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