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북구 인수봉로 159
02-2125-0162
changgong@hs.ac.kr

長空 회보

[회보 제7호] 추모예배 설교 - “길, 진리, 생명” / 박종화 목사

작성자
changgong
작성일
2017-07-05 11:43
조회
1952
[제7호] 추모예배 설교

“길, 진리, 생명”
(요한복음 14:6)

박종화 목사
(본회 이사 / 경동교회 담임목사)

우리 사랑하는 후학들이 모여서 우리 선생님, 장공 김재준 목사님 21주기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데,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과 함께 목사님도 거기 계셔서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뭐라고 말씀하실지, 우리가 상상해보면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좀 한 번 읽어봐라.”

“예수께서 주신 생명의 나라에서 내가 지금 생명을 즐기고 있다.”우리 목사님이 믿으셨던 예수께서 생명의 나라에서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그 생명의 나라에 예수께서 가셨는데 예수께서 가신 길 고스란히 내가 생명의 나라에 부름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21년 전 우리 곁을 떠났던 목사님을 추모하는게 아니라, 지금 살아 계신 생명의 나라에서 저희들이 김재준 목사님의 얘기를 듣고 싶고, 그분과 함께 오늘 추모예식을 갖고 싶습니다.

제가 지난 12월이라고 기억됩니다. 기장 총회 프로그램 하나로 충남 태안 지역에 가서 교인들과 함께 방제작업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방제작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와서 돌에 묻은 기름때를 다 벗겼는데, 아주 깔끔하고 미끈미끈하고 잘 생긴 돌은 많이 벗겨졌습니다. 기름때를 벗긴 돌을 옆에 놓고 한번 훑어보았습니다. 우연히 돌 하나를 집었는데 돌의 생김새도 못생기고 삐쭉삐쭉한 것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 돌 사이에 뭐가 있느냐하면, 구멍들이 많이 나서 그 속에 기름때가 꽉 끼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벗기느라고 손가락을 넣었다가 헝겊을 집어넣었다가 그것도 안 되어 옆에 있는 나뭇가지로 쑤시면서 겨우 벗겼는데 벗겨내도 잘 안 벗겨졌습니다. 제가 바로 느꼈던 것이‘하나님이 보시기에 빤하고 좋은 돌은 내가 아니고 바로 구멍이 많이 나고 못생기고 삐쭉삐쭉한 돌이구나’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못생긴 돌을 들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고 그 돌을 씻으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래서 김재준 목사님은 평소에‘작은 자, 또 힘든 자, 못생긴 자, 이 분들에게 사랑이 더 가느니라.’하는 얘기를 제가 신학교 1학년 들어와서 첫 번 강의를 하실 때, 목사님께서 안경을 매만지시면서 “신학이라는게 그런거야!”라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중요한 것은 잘생긴 돌이 아니고, 또한 돌이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작고 볼품 없는 못생긴 돌과 같은 곳에 하나님의 관심이 더욱더 크다는 것입니다. 목적은 잘 생긴 돌이나 못생긴 돌이나 똑같이 기름때를 벗고 나서, 해안도 살리고 우리도 살리고 함께 생명의 나라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김재준 목사님께서 기름때가 번진 서해안은 가보지 못하셨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옛날 생각에 김재준 목사님께서 이런 자들을 위해 내가 교회도 세워야겠고, 신학도 해야겠고, 후학들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든 학교가 우리 한신대학교이고, 그래서 만든 교회가 기장교회가 됐고, 성북교회도 그런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웠던 시절, 암흑했던 시절, 이런 시절을 살아오면서 우리들이 오늘 목사님과 함께 고백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는 진실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준 목사님 감사합니다. 지금 그 목사님이 처음 예수께서 오셨던 그 나라, 출발지점의 나라 그곳에 예수님과 함께 계십니다. 계시면서 우리가 육을 떠나서 세상 사람들과 다 등져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가는 나라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 나라에 온 기쁨을 알긴 하느냐? 우리 한번 이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추모식 때마다 저희들의 생각은‘목사님께서 지난날에 참 훌륭하셨습니다.’,‘지난날에 참 좋았습니다.’라고 과거에 대한 회상이 하나 있습니다. 동시에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가 진실로 생명의 나라이며, 영원한 생명의 나라이고, 그 나라에서 목사님이 우리를 보시며‘나와 함께 살아있는 생명의 신학을 하자, 살아있는 생명의 교회를 만들자, 살아있는 생명의 삶을 살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추모의 본뜻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목사님의 원조이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네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생명의 나라에는 엄청나게 거할 곳이 많다.”이 사실을 오늘 추모예배 때 저희들이 보고 다시 한번 상기하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가르치신 말씀 중에 ‘道’(길도)자를 많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동양사상에 ‘도’가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그냥 편이하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떤 길이냐 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 미래의 나라에서 오는 길, 와서 살다가 다시 생명의 나라로 돌아가는 길, 출발지가 영원한 생명이고, 귀착점도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길이며, 계속해서 목사님께서 한평생 닦고 수고하신 길이고, 오늘 우리도 그 길을 살고 있으며, 이 모두가 다시 오신 길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신학할 때 중요한 것은 신학적 진실이 제일 중요합니다. 무엇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으로 신앙 고백적으로 진실한 길, 진실이 뭐냐하면 출발점이 생명입니다. 그곳이 종착점입니다. 그리고 왔다가는 길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저는 ‘신학적 진실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요한복음을 같이 읽자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나는 길이다. 예수가 길이다. 예수가 진리다. 예수가 있는 곳이 생명이다.”

목사님의 21년 전 얘기를 제가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목사님은 우리보다 먼저 미래에 약속된 나라에 가셔서 ‘우리에게 나와 함께 이 길을 같이 가자!’고 제안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추모는 미래지향적 추모입니다. 과거 지향적 추모가 아닙니다. 약속된 미래를 넘겨받아 살고 미리 살아가는 추모입니다.

가끔 들어본 얘기입니다만, 얘기 하나 공개합니다. 조용기 목사와 한 달 전 회의 때문에 모였는데 여러 장로님, 목사님들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기장, 한신대학교, 나는 그 교회를 제일 좋아합니다.” 왜냐고 물으니, “기장을 가만히 보면 자기 눈에 보기에 순복음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제 고향에 가보면 순복음 저리가라 할 정도로 뜨겁고, 은혜를 갈구하고 순수 복음적입니다. 그런가하면 한 쪽을 보면 이것은 정치인지 액션인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극단적인 좌여서 감히 따라가지 못하겠더라는 것입니다. “당신네 교회는 어떻게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 공존하냐?”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것이 장공 신학입니다.” 맞죠? 장공이 누구냐 물으면 제일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마음대로 자유스러운 은혜 가운데서 수영하고, 헤엄치고, 놀고, 길을 찾아라, 생명을 추구해라, 그리고 진실을 밝혀내라는 분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자신의 용어로 기장이 갖고 있는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커서 자기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다시 택하라고 하면 기장을 택한다. 말이라도 괜찮았습니다.

저는 오늘 와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목사님은 말씀을 크게 안하셨는데, 거대한 생명에서 나와서 생명을 이끄는 거대한 스펙트럼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신학을 자유롭게 하라. 신앙고백은 진실하게 하자. 그리고 맘껏 은혜 받아 뛰놀자. 이 이야기를 가르쳐 주셨고, 그렇게 사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추모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함께 계신 그 나라에 있는 목사님의 생명의 삶을 우리가 앞당겨서 추모했으면 좋겠습니다.

추모를 할 때 저는 교회에서 성만찬을 집례하면서 이런 신앙고백과 확신을 갖습니다. 추모의 원형은 성만찬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다시 재림하시는 그 분이 우리의 주님이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억하라. 그 말씀에 따라서 우리는 성만찬 예식을 거행합니다.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그 분이 죽으셨음을, 부활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과거의 구원 얘기도 중요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먹는 떡과 포도주 속에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주가 되시며 하늘나라 주인이신 그분을 미리 우리가 맛보는 것이 성만찬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성만찬은 과거 십자가에 흘리신 눈물을 먹는 것이 아니고, 눈물 속에 담긴 하늘나라의 영원한 축복을 미리 앞당겨서 맛보는 겁니다. 성만찬의 떡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십자가 모습 속에 담긴 하나님의 나라, 십자가 보혈 속에 담긴 하늘의 영원한 생명, 그것을 우리가 먹습니다. 성만찬 예식이 예수 그리스도 추모예배입니다.

저는 장공 21주년, 내년 22주년 추모예배가 성만찬적 추모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그런 심정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사셨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하는 추모, 동시에 그분의 말씀과 삶과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었던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앞당겨서 맛보는 추모, 지금 우리는 미래를 추모합니다. 약속을 추모합니다.

그래서 추모예배는 성만찬적 예배가 진실된 추모예배입니다. 서글픔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기쁨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로 장공 김재준 목사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그렇게 사셨던, 메시지의 요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예수의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그런 길이요, 내가 곧 그런 진실에 합산품이요, 내가 곧 생명의 교인이다. 나와 함께 이 생명을 즐기자.” 추모를 통해서든, 신학연구를 통해서든, 교회 삶을 통해서든, 우리의 스펙트럼이 영생에서 영생으로 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높아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미래를 끌어 앞당겨서 맛보는 아름다운 현실이어야 됩니다.

저는 이 현실이 바로 우리가 함께, 장공 김재준 목사님과 함께 나누고 싶은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부디, 장공 김재준 목사님! 생명의 나라에서 귀한 복음을 여러 방식으로 가르쳐 주십시오.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고, 후학된 우리, 가족된 우리는 그런 똑같은 기쁨의 나라를 우리에게 약속으로 받습니다.

오늘 추모로 슬퍼하지 마십시다. 마음속으로 기뻐하십시다. 우리의 슬픔 속에 생명의 씨앗이 움터 나는 기쁨을 한번 더 확인합시다. 작은 성만찬, 이런 정신으로 우리가 오늘 추모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길, 진리,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합시다. 이 길을 가면 생명이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 추모를 통해서 장공의 신학, 장공의 삶, 장공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의 말씀인줄 알고, 우리 장공 목사님께서는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함께 이렇게 추모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의 추모를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2008년 1월 24일 장공 김재준 목사 21주기 추모예배 설교)

*(2008년 1월 24일 장공 김재준 목사 21주기 추모예배에서 설교하는 박종화 목사)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7호] 2008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