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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1호] 추모예배 설교문 -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 박원근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6 07:56
조회
2173

[제11호] 추모예배 설교문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출 2:11~15, 호 2:14~15)

박원근 목사
(기장 증경총회장 / 이수중앙교회 담임목사)

교회에 예수가 없다지를 않습니까? 오늘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하비루’를 탄압하던 이집트 바로집단이 되어가고 있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에게 “내가 이스라엘을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말로 위로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알에 취해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의 영성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둘째는 내가 이스라엘의 포도원을 저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포도원은 바알이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포도원의 풍요도 바알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셋째는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은총과 구원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광야로 데리고 가겠다던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를 광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모세는 반 유대인의 독재자가 다스리는 이집트 땅에 유대인으로 태어나 나일강에 버려졌지만, 마침 이집트 바로의 딸이 그곳으로 목욕하려 왔다가 그를 건져 바로의 궁에서 왕자로 기릅니다. 30세가 된 모세는 군사 전략가로서의 명성이 극에 달했습니다. 하루는 공사장을 시찰하던 중, 이집트 군인이 동족인 히브리인을 내리치는 것을 보고, 분노한 모세는 그를 죽여 모래 속에 묻어버립니다. 이 일이 바로 왕에게 알려져 생명이 위태롭게 되자, 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칩니다.

미디안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로덴베르크는 ‘하나님의 광야’(God's Wilderness)라는 책에서 광야를 ‘시간이 정지된 곳’이라고 불렀습니다. 광야는 커다란 바위들이 폭탄을 맞고 신전에서 튕겨져 나온 돌덩이처럼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황량한 곳입니다. 돌에 걸려 넘어지고, 모래에 빠지고,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험악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런 곳으로 보냈습니다. 며칠 사이에 차기 바로로서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던 모세가 미디안 광야 후미지고, 한적한 곳으로 굴러 떨어져 무일푼의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심령은 심히 곤비하고,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일생을 하나님과 동행하고, 인류의 빛과 구원이 되었던 사람들은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실, 좌절과 실패, 고난을 견디어 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장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도,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서도, 심지어 죽음의 문턱에서까지도,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고 소망 가운데 복음을 증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 긴 세월 모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히브리어로 광야를 미드바르(midbaar)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말하다’의 의미를 가진 다바르(dabaar)에서 왔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광야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시는 장소”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광야의 경험이 없었다면 인간은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에 대해 듣지도, 알지도 못한 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사람들을 교육하는 학교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의 인격과 삶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겹의 두터운 장벽들을 부수고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본래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인류의 최고의 상형문자와 피라미드를 쌓아올리고 스핑크스를 조각해낼 만큼 훌륭한 과학과 뛰어난 지혜문학, 군 최고 전략가인 모세의 교만은 젊음의 폐기로 충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모세가 광야에서 첫 번째로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은 무명이라는 과목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이 그것을 잘 대변해 줍니다.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니, ……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모세를 청하여 대접하며 함께 동거하기를 청하니 그가 기뻐하였더라. 그가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그는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며 처가살이를 하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일할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무명의 신분 상태에서 평안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1970년대 후반 <나치의 그늘>이란 영화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일이 있습니다. 유대인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여사가 겪은 일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나치에 의해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가게 됩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죽고, 사랑하는 동생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나치는 그녀를 춥고 습기 찬 짐승우리 같은 수용소로 밀어 넣었습니다. 영화 장면에 부들부들 떨며 한 구석에 쓰러져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비참이었습니다. 그녀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주님을 향하여 속삭입니다. “정말이지 주님, 저 혼자 남게 된 줄은 몰랐어요.” 이것이 인생광야입니다. 이렇게 광야학교 캠퍼스는 텅 비어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자신과 무명이라는 제목의 교과서, 이 책을 읽을 수많은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야학교의 두 번째 필수과목은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흘러감을 통해서 모세의 과거에 대한 두려움, 현재에 대한 초조함,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감을 하나씩 제거해 주셨습니다. 가장 불편한 곳, 대화할 친구도 없고, 나 홀로, 두려움과 초조함, 공포감과 힘겹게 싸우면서 40년을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광야학교의 세 번째 필수과목은 고독이었습니다. 이 고독이라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분노라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온갖 고통을 주는 횡포의 쓴 뿌리를 뽑아내셨습니다. 앞으로 모세는 조급하고, 시도 때도 없이 원망과 분노를 폭발시키며, 공격해 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난과 불평, 분노와 증오, 배신을 홀로 감당하며, 견디어 내야만 했습니다. 그 때를 위해 모세는 광야학교에서 고독이라는 과목을 이수해야 했던 것입니다.

광야학교의 네 번째 필수과목은 불편함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내면의 무의식의 세계까지 도전해 오셨습니다. 그 심층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안일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이기적 편의주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불편함과 곤고함의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는 편안함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곳은 살기 힘들고 가혹하리만큼 뜨겁고, 마실 물조차 얻기 힘든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모세의 중심을 개혁하셨습니다. 이제 비로소 모세는 어떤 어려운 극한 상황도 견디어 낼 수가 있고, 극복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격 속에 불순물은 제거되었고, 정금같이 단련되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종 모세야, 나는 네가 광야에서 불 연단을 통과해야 할 때, 화염으로 너를 상치 않도록 지켜주었다. 나의 계획은 너의 찌꺼기가 불타고, 정금이 되어 나오게 하는 것이었단다.” 하나님은 우리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광야의 타오르는 용광로를 통과하게 하시는 분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우리를 정련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맹수들이 울부짖는 광야의 한복판에서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해 따가운 모래바람이 녹슬고 부식된 불순물을 녹여갈 때, 우리 하나님의 손아래서 우리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광야의 불 용광로 속에서 연단하십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광야생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독을 겪으셨습니다. 최후의 순간에는 제자들로부터 배신당하셨고, 결국 하나님으로 부터까지 버림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무명으로 초라하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이나 지옥을 통 털어 사람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목마르다’하셨습니다. 광야의 밤이 가장 깊었을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이것은 광야의 스승이 되기 위한 산고였습니다. 이것은 광야의 정복자가 되시기 위한 절규였습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 23주기 추모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가겠다’고 말씀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교회는 이미 해산할 날이 되었건만 해산할 힘을 잃은 여인과 같이 가련하게 되었습니다. 기복신앙, 보수주의, 성공주의를 부추겨 성장한 한국교회는 예수의 정신과 혼이 이미 떠나버린, 예수 없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사탄의 시험을 받고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사탄의 시험에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나에게 절만 하면 천하만국을 너에게 주겠다”는 사탄의 시험에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단호하게 물리치셨건만, 오늘의 한국교회는 교회부흥과 선교를 위한답시고 물질, 기적, 세상권력과 야합해왔습니다. 그 결과 사탄은 한국교회를 손에 움켜쥐고 겨 까부르듯 까부르고 있습니다.

기독교 본질에서 떠나 철저하게 세속화되어 버린 한국교회는 더 이상 자체정화능력마저 상실한 채, 맛 잃은 소금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오호! 통재라, 이 일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지금처럼 장공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일생을 광야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다는 진리를 올곧게 증언하셨습니다. 저는 장공 선생님과 두 가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1968년 선생님이 해직교수가 되고, 이여진 교수가 학장일 때, 학교 분규가 생겨 교수님들 모두가 사직서를 내고 교정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학생들은 목자 잃은 양과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학생 몇이 장공 선생님 자택을 방문했습니다. “교수님들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말씀드리자, “교수들한테 무엇을 배우나, 교수들이 학생들에게서 배워야지, 미국에 가보라지 교수들이 학생들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녀!”하시면서 위로와 격려를 주시던 선생님이 그리워집니다.

또 하나는 정대위 학장 때, 한신대 교수들이 ‘베들레헴 떡집’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수유리 캠퍼스를 매각하게 해달라고 총회 교육부에서 제안 설명을 하게 되자 86세의 선생님은 노구를 이끌고 홀연히 나타나셨습니다. 선생님의 고견을 청하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주교에 돈을 많이 줄 테니 명동성당을 팔라고 하면 팔겠는가?” 수유리 캠퍼스는 기장의 성지라는 말씀이셨습니다. 항상 선생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시면서도 늘 하늘을 열어놓고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사신 분입니다. 모세와 장공 선생님을 거친 들로 데리고 가신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친 들로 데리고 가시길 원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거친 들로 나가라’말씀하십니다. 거기에서 말씀의 영성을 회복하게 하고, 아골 골짜기와 같은 이 세상에 소망의 문이 열리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광야를 정복하고 나오는 그 날, 이 땅에는 구원의 나팔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2010년 1월 25일 장공 김재준 목사 23주기 추모예배 설교문)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1호] 2010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