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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2호] 좌담회 - 젊은 신학도들과 장공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6 09:26
조회
565

[제12호] 좌담회

젊은 신학도들과 장공

[좌담자]
김진경(한신대M.Div3/4), 유대은(한신대M.Div4/4),
이상철(한신대M.Div3/4), 이현아(한신대M.A1/4).
김경재 명예교수(본회부이사장/한신대학교), 박연길 목사(장공기념사업회 사무국장)


2010년 1학기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김재준과 함석헌 연구”세미나(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학교)를 종강한 뒤 세미나를 수강했던 4명(김진경, 유대은, 이상철, 이현아)의 학생들을 초청하여 좌담회를 갖게 되었다(2010년 6월 23일 오후 3시 본회 사무국). 이번 좌담회는 장공의 사상과 삶, 신학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려는 과제를 오늘의 젊은 신학도들에게서 생각해 보고자 마련한 것이다.

유대은 : “김재준과 함석헌 연구”세미나를 마치고 우리 젊은 신학도들에게 이런 좌담회를 마련회 주신 김경재 명예교수님과 長空기념사업회 사무국 박연길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세미나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사상과 삶, 신학을 오늘 우리 신학도들의 삶의 자리에서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일들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할 과제들이 있을 줄로 생각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모두가 오늘 좌담회의 사회자와 패널이 되어 진행을 했으면 합니다.


김진경 : 오늘 우리 젊은 신학도들은 장공을 직접 만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장공의 글이나 장공을 직접 만나고 경험했던 분들의 이야기들과 글로 장공을 접하는 세대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장공이 오늘 우리 신학생들의 실존적 상황 아래에서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솔직히 수업시간에 아쉬움으로 남았던 부분이거든요.


이현아 : 우리 학교 안에 장공관이라는 본관 건물이 있고 장공 김재준 목사님 사진도 있잖아요. 그러나 정작 장공 김재준 목사님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고 있어요. 저도 그렇지만. 그냥 이름 하나만 들어서 알고 있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왜 장공의 얼굴이 걸려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미나 덕분에 장공의 삶을 통해서 신학함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되었어요. 살아온 여정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거든요. 특별히 장공의 말씀 중에 10가지 생활좌우명, 그 중에‘예와 아니오를 똑똑하게 말한다. 그 다음에 생기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이 부분이 가슴에 많이 와 닿았거든요. 장공이 품고 고백했던 예수의 심장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솔직히 제가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아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냉철하게 살펴보면 얼마나 비겁한지. 예와 아니오를 구분도 못하고 침묵하며 살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수업시간과 책에서 배운 장공은 우리들에게 어떤 핍박과 환난과 억압 속에서도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도록 일깨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제 자신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아요. 신학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삶 속에서 내 모습을 반추하면서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자문을 해봅니다.


김진경 : 어떻게 보면 장공이 살았을 때의 상황과 오늘 상황은 다르다고 할 수 있잖아요. 장공이 살아왔던 시대와 상황을 우선 올바르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장공이 몸으로 경험하며 살았던 그 시대를 간접적인 방법만으로 알 수 있는 오늘 우리로서는 장공이 누구인가, 왜 장공인가라는 질문을 솔직하게 해봅니다.

이현아 : 저도 동의합니다. 정치, 경제․사회적 상황을 굳이 비교분석하지 않더라도 장공이 살았던 시대가 더 어려웠다고 볼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시대 속에서 절대 위기라는 말을 생각해 봐요. 그렇기 때문에 장공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조명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진경 : 당시에는 변혁을 해야 할 대상이 구체적이었고 분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묘하게 이뤄지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여러 현안들을 냉철하게 보면, 도둑같이 침범하여 우리의 삶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장공 사상을 어떻게 접목해야 하는 것인지.

이상철 : 저는 다르게 느꼈어요.“제3일”에 나왔던 글을 읽으면서 이것이 1970년대에 나온 글인지 오늘 2010년에 나온 글인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그만큼 생생하게 마음에 와 닿았거든요. 우리는 장공과 함께 살았던 세대의 분들을 통해 장공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지만, 그 경험을 오늘의 우리가 경험하고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가, 우리 또한 우리의 삶에서 체험한 일들이 어떻게 장공과 만나면서 공유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돼요. 우리가 완전히 장공이 살았던 방식을 살 수는 없잖아요. 다만 장공이 가슴에 품고 펼치고자 했던 예수의 마음은 장공의 글로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신학도의 삶의 과제로 물으며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장공의 글이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을 알려주는 종이에 박힌 활자가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박혀 요동치게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유대은 : 제 생각에는 지금의 상황과 그 때 상황을 같고 다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를 보는 장공의 눈, 그의 통찰에 더 집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공이 오늘에도 여전히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배운 것이고 앞으로도 장공이 요청되는 것이죠. 그것은 시대적 상황과 삶의 여건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런 눈을 가지고 시대를 바라보고 역사를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현아 :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보거든요. 솔직히 언제나 이런 자리가 끝나고 나면 ‘그래, 장공처럼 살아야 돼. 그의 세계관을 가지고 시대를 관통해야 돼.’하지만 실제 삶의 자리에 서면 서 있을수록 나와 주위를 변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치열한 신학함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에 시대를 관통하며 역사의 산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일맥상통한다고 봐요. 오늘의 시대를 철저히 살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동시에 화살촉이 되어 역사의 미명에 눈을 뜬 삶을요.

이상철 : 우선, 오늘 나를 둘러쌓고 있는 역사를 미시적 관점으로 이해하면서, 이것과 함께 거시적인 안목으로 장공의 역사관, 역사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논의에 대하여 이 자리에서 세세하게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시대의 아들과 딸로 태어나기 때문에 현실 세계를 보지 않고 장공을 그저 초역사적인, 초시간적인 존재의 학문, 체계, 사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장공의 사상 이것은 시대의 변화에 관계없이 불변하는 우리가 지켜야 할 신념, 사상이야’라고 한다면 그것은 장공주의로 호도되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진정한 장공 사상의 가치는 1960년과 1970년대 혼란의 격동기, 근본주의 신학의 한계, 정치․경제적인 고투의 현장에서도 변함없이 올곧게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몸으로 체화하면서 살아가려는 데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진경 : 제가 장공을 알면 알수록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앞섭니다. 장공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촉구를 하고 있는데, 제 말과 행동은 일반적인 교회의 폐단을 닮아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제 스스로 세상과 타협하고 싶고, 그런 마음들이 자꾸만 제 안에 쌓이고, 나도 모르게 교회 교육부서의 어린이들 숫자에만 관심을 두고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이 많이 모일까에만 교육목표를 세우고 있더라구요. 물론 교회가 성장해야지만, 본질을 뒤로하고 나의 욕심만 채우는 것 같아 너무 두려운 거예요.

이현아 : 제가 신학교 입학할 때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어느 목사님이 그러셨대요. 목사가 되려면 절대 삯꾼 목사가 되지 말라고. 그 한마디가 제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데 기장 안에서조차 그런 병폐를 들을 때마다 나도 좌절하게 돼요. 수업에서 열띤 논의를 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고 하지만, 교회로 가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중적인 모습으로 서 있더라구요. 물론 이런 모순을 인식하면서 좀 더 깊고 넓은 마음으로 보다 높은 뜻을 지향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의식이 앞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견책하면서 초심을 잃지 말자. 장공이 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나도 품어보자. 이렇게 다짐을 해보곤 해요.

유대은 : 저는 장공의 말 중 두 가지가 생각납니다. 버려진 물건, 버려진 사람에게서 쓸모를 찾는다는 말인데 저에게는 정말 크게 다가 왔어요. 매주일 교회에서 봉사할 때마다 우리의 아이들과 오늘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말씀을 전달하고, 돌보며,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그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또 한 가지는 학문과 경건입니다. 두 가지를 함께 말했던 것은 학문으로써 정말 열심히 하고 때로는 깨어지기도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생활신앙으로서 실천하는 경건! 이렇게 두 가지가 신학함에 있는 저의 삶의 자리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화두로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진경 : 그동안 장공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기독교를 통해 드러내려는 복음이 무엇인지 고민을 했어요. 특별히 21세기 다원화된 오늘의 사회 속에서 생명과 평화, 그리고 정의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과 연관시켜 볼 때 더욱 그렇구요. 오늘 우리가 당면한 여러 가지 현안들이 있지만, 장공이 말했던 범우주적인 사랑의 공동체는 모든 피조세계가 생명의 고귀함과 평화를 누리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이루어야하는 당위적인 과제로 인식되었습니다.“제3일”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리스도가 죽고 묻히고 부활하고 하는 모든 일들이 비단 예수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다른 말로 하면, 생활신앙이죠. 그런 희망을 말하는 것이 신학이고, 교회이다. 결론은 그렇게 가야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이현아 : 장공은 늘 열심히 사신 것 같아요. 충실하게. 회피하지 않고. 사회가 그렇다고 해서 도망가지 않고요. 저도 인생을 살아 나가면서 장공처럼 성실하게 살고 싶어요. 스승으로서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신학자의 삶에서도 한 번도 회피하거나 도망치지 않으신 그 모습이 제 인생의 지표로 자리를 잡았어요. 그래서 저도 회피하지 말자. 부닥치고 맞서서 나아가야지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평생 학도로서 지내며,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며, 검소하게 생활하신 장공 선생님의 모습을 제 가슴으로 품을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품고 사셨던 모습으로 제 마음에 와 닿았어요.

이상철 : 장공이 살아온 1901년부터 1987년은 한 인간의 삶을 넘어서 장공 스스로가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위치가 서 있다고 생각됩니다. 장공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함경북도 산골에서부터 말년에 캐나다의 자연과 귀국한 후 한국의 산천을 돌아보시기까지 생의 여정 가운데에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꽃피우는 일을 감당하셨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꽃피우며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자기향유’(self-enjoyment)를 하며 창조주의 섭리를 꽃피우는 신학도의 모습을 장공을 통해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영성의 체험을 뭐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장공이 체험했던 깊이와 넓이가 신학함에 있는 제 자신에게 공명이 되어 이전보다 나은 탐구와 사색을 하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한 평생 사신 장공의 숨결을 함께 호흡하도록 세미나를 열어주신 김경재 명예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장공의 사상과 정신, 신학과 삶이 한국 사회와 교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사표(師表)가 되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2호] 2011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