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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2호] 추모예배 추도사 - “가슴을 뛰게 하는 신앙” / 강만원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6 08:58
조회
648

[제12호] 장공 24주기 추모예배 추도사

“가슴을 뛰게 하는 신앙”

강만원 목사
(본회 이사 / 기장 증경총회장)

장공 목사님, 김재준 목사님! 그토록 사랑하던 고국의 품에서 고이 잠드신 지 24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그리워하는 추념의 마음으로 당신을 존경하며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세월이 지나면 잊어지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더욱 생생하게 가르침을 주시는 어른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인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살아계실 때는 한 분이셨더니, 지금은 삼라만상이 다 어머니의 모습입니다’라고 고백한 것과 같은 심정으로 이 시간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사랑하신 한신과 기장의 울안에서 평생 살아 온 우리들의 모습을 오래된 거울에 비추어 보듯 목사님과 함께 했던 시간을 아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산 남부민동의 천막 교사에서 웅크리고 공부하다가, 모처럼 송도 해변으로 전교생이 원족을 나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 우리들은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 만큼 좋아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날 앞줄에 서서 덩달아 좋아하는 제게 찬송가를 달라고 하셔서 찬송을 찾으시더니 함께 부르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찾아 부른 찬송의 곡조를 여든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신학사상의 깊고 넓은 세계에서 울려 퍼진 찬송은 예수 사랑하심을 거룩한 말씀으로 새기는 찬송이었습니다. 그 찬송은 문득 문득 석양의 바닷가에 울려 퍼진 천상의 소리로 가슴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선생님은 머리로 하는 신학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가슴을 뛰게 하는 신앙을 먼저 본으로 보여주시려고 애쓰신 것 같습니다. 그 즐거운 경험 이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둡고 음습한 천막교사에서 밝게 활짝 트인 해변으로 이어지는 그 오솔길을 언제나 걷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60년 전 그 날의 소풍은 기나긴 전쟁의 그늘이 사람들의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을 때, 너희들은 전쟁의 상흔이 깊어가는 시대의 아들과 딸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녀들이 되라는 스승의 배려였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많은 제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길을 열어 주신 분입니다. 살림살이 어려운 집에서 장남으로 장가까지 들어 처자식을 두고도 대학생 노릇하며 살아가기가 심적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저는 공부도 계속하고 목회를 하며 일할 수 있는 길을 찾았고, 선생님에게 의논을 드려서 결국 대구 중부교회로 천거를 받아 내려갔습니다. 그 후 저는 경제적으로 가정이 안정된 가운데 목사가 되는 길을 걸어 갈 수 있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 선생님의 여명이 많이 남지 않았던 어느 해 세배를 드리러 갔던 저는 목사님에게서 좌우명을 구술 받아 적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학교의 예배에서 낭독하였을 때 김경재 교수님께서 놀라워하시며 적으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것이 지금 널리 알려 진 ‘나의 좌우명: 바르게 살려는 노력 열 가지’입니다. 저는 이 좌우명이 출애굽의 십계명을 장공 목사님께서 외치셨던 생활신앙의 강령으로 번안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중에 저에게 가장 와 닿은 것은 “4. 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라는 금언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살펴보시는 눈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고 “좋았더라” 하신 그 긍정의 일들이 세상을 보존하는 힘이고, 심판받고 버려질 수밖에 없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연민의 마음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부터 콤플렉스가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아주 어려서는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어 부끄러웠고, 기도하고 나았으나, 자라면서는 또래보다 키가 커서, 마른 얼굴에 눈만 커서 언제나 외모에 자신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한 못난이가 결국 목사가 되기까지 저를 지탱한 자존감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러한 부족함과 못남에도 불구하고 용납하시고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금언은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것입니다. 비록 거목이 아니더라도 회초리처럼 서있어서 묵묵히 산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그래서 장공 목사님 댁에서 좌우명을 받아 적을 때, 저의 가슴 속에 종이 울리는 것 같은 감격이 솟구쳤습니다. 저는 그 감격과 울렁이던 기쁨을 잊지 않고 비록 몸은 늙어 가도 꼿꼿하게 산을 지키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제가 오늘 추모사를 드리며 지극히 개인적인 넋두리를 하다 보니 한국 교회와 사회를 이끌어 오신 거목이신 선생님을 초라한 회초리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언제나 생생하게 역사와 저희의 가슴 속에 살아계셔서 저희를 경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야훼 신앙이 종교의 옷을 입고 위선과 독선에 빠질 때, 정의와 자유가 정치권력의 포로가 되어 전횡과 타협의 늪에 빠질 때, 진실과 사랑이 온갖 미사여구와 구두선으로 전락하여 그 고결한 빛을 잃고 장사꾼의 상품이 되어 버릴 때 회초리를 들어 저희를 치시고,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기장이 잘나서가 아니라 못생긴 나무이지만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혔기에 역사를 푸르게 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이제 끝으로 목사님께서 남겨 주신‘바로 살려는 노력 열 가지’를 다시 가슴 속에 새기기 위해 낭독하겠습니다.

나의 座右銘 : 바로 살려는 노력

1.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2. 대인관계에서 의리와 약속을 지킨다.
3. 
최저 생활비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4. 
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
5. 
그리스도의 교훈을 기준으로 "예"와 "아니오"를 똑똑하게 말한다. 그 다음에 생기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
6. 평생 학도로 산다.
7. 시작한 일은 좀처럼 중단하지 않는다.
8. 
사건 처리에는 반드시 건설적, 민주적 질서를 밟는다.
9. 
山河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다룬다.
10.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배려한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이 열 가지를 정하여 바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우리 모두가 이 좌우명대로 살아 장공 목사님, 영원한 선생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2011년 1월 27일 장공 김재준 목사 24주기 추모예배 추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