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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4호] 추모예배 설교 - “하나님 나라의 실상” / 김영수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6 11:32
조회
1223

[제14호] 장공 25주기 추모예배 설교

“하나님 나라의 실상”
(고린도전서 15:51-54)

김영수 목사
(부산노회 원로목사)

저는 청순한 소년시절 20대에 서울 동자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제 내 나이 80이 돼서 수유리에 와보니 진심으로 감개무량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장교단과 한신대학교를 축복해 주시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하나님의 만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것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요, 그 다음으로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은혜와 도움이 컸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장공 김재준 목사님과 저와의 만남의 계기를 잠깐 먼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고,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이 침략을 가세하면서 굉장히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1951년 1월 4일, 1·4후퇴 때 서울시민 대부분이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왔습니다. 이때 장공 김재준 목사님도 피난을 오셨습니다. 그 당시 경남 김해군 진영읍에 한얼학교가 있었습니다. 설립자는 강성갑 목사님이었고 굉장히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학교를 맡으셨습니다. 한얼학교는 기독교 정신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흙을 사랑하자”라는 삼애정신을 교육목표로 세워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피난 온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그 중에 조향록, 강원용, 주태익, 김영규, 이상철, 김두식, 신영희 등등 내가 기억하기에 이 분들 외에도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1953년 어느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한얼학교도 여름방학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피난 온 선생님들 일행이 학교에서 낙동강 주변 탐방과 주변교회들을 탐방할 겸 낙동강 수산철교 옆 뚝방을 걸어오시고 있었습니다. 낙동강 뚝 아래에는 우리집 원두막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린학생이어서 원두막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일행들이 뚝을 거닐다가 우리 원두막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들에게 참외, 수박을 따다가 대접해드리고 맛있게 잘 드셨습니다. 연후에 주변에 있는 교회와 목사님을 찾기에 저도 교회를 다닌다고 하고, 내가 나가는 갈전교회(모교회)에 김응진 목사님 댁으로 안내해 드렸습니다. 저는 이 날 선생님들과의 만남이 나의 삶에 많은 의미와 내용을 갖게 했고 결정적인 계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이 때를 생각하면 제가 선생님들에게 정말로 반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 이 분들이 보통 분들이 아니구나” 감수성이 한창 풍부할 때니까 그 분들을 만나는 것이 좋아서 이후로 나는 9㎞정도 되는 진영 한얼교회를 주일날 가끔 찾아갔습니다.

저는 본래 마산 호주 선교부 관할인 마산시찰 소속 갈전교회가 모교회였습니다. 선교 초창기 할아버지 때부터 다니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대산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는데 그 당시 선생님들을 만나고 나서 바로 한얼고등학교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부산고등학교 정성배와 마산고등학교 문옥상, 2명의 친구와 함께 한얼고등학교로 전학해서 제2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1955년 준전시였으니까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시절을 보낼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일들을 어려운 시절로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훌륭하신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를 하고 꿈을 꿀 수 있도록 성장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할 일이구나 생각해 봅니다.

임시정부가 부산에 있다가 서울로 환도할 때 선생님들도 서울로 올라 가셨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1,2차 신체검사와 필기시험에 합격하여 3차 면접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서울로 올라가신 선생님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후에 서울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야간열차를 타고 이른 새벽 서울역에 내려 경동교회를 찾아서 김재준 목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아침 일찍 찾아뵈었는데 반갑게 맞아주셨고 온 가족이 1층 다다미방에서 아침식사를 하시는 도중에 저에게도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한 15일, 20일 여러 날을 목사님 댁 1층 다다미방에서 신세를 졌는데 장인철, 이상철 목사님도 같이 객군으로 여러 날 신세를 졌습니다. 그 때 고등학교 성경선생님이었던 이상철 목사님께서 권면을 하셔서 한신에 응시하고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1954년 9월 27일 김재준 목사님이 해운대로 오셨습니다.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연락도 없이 방문하시고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너무 반갑고 기뻐서 엎드려 큰절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이제 장로 됐어? 아직 영수야!”라고 하셔서 제가 또 웃으면서 “아직 영수입니다.” 아침 식사를 같이하고 시장에 가서 벼루, 먹, 종이를 준비해서 몇 점의 글을 받았습니다. 그 중 “愛者無敵”은 지금도 우리 집 내실에 액자로 걸어놓고 매일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그 말씀을 보고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께서 1954년 9월 27일 해운대에 오셨을 때 써 주신 글]

저는 1959년 5월 12일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1966년 3월 해운대중앙교회 담임을 해서 오늘까지 48년간 목회를 하고 지금은 은퇴했습니다. 특별히 慶南과 釜山은 보수의 아성입니다. 정말 어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기장인으로서 떳떳이 지냈습니다.

그 후 몇 차례의 서신을 교환했었는데 선생님 편지 내용을 그대로 보면

〔편지 1.〕 김영수 목사님 해운대에 들렀을 때 각별한 친절과 환대를 감사합니다. 교회에 은혜 많기를 바랍니다.
“역사의 소망, 세계의 생명은 원천인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보좌에서 솟아납니다.”
“세상의 가핀 물은 말라도 이 샘터는 영원히 솟구칩니다.”長空.

〔편지 2.〕 창설기에 해운대중앙교회는 그만큼 더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더욱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두 번 입원 수술을 받고 지금은 집에서 병원지시대로 안정하며 복약하고 있습니다. 간 관계여서 고통은 느끼지 않습니다. 1984년 12월 長空.

장공 선생님의 말씀처럼 저는 보수의 아성인 부산과 경남에서 목회하면서 여기서도 뭔가 기장의 교회를 하나 반듯하게 짓는 것이 나의 꿈이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기장교회를 세워놓고 은퇴해야지. 거의 매일같이 교회 짓는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2009년 해운대에 아름다운 기장교회를 지었습니다. 약 37억 소요되는 예산으로 교회를 아름답게 잘 지었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편지에“지금은 어렵겠지만 천천히 좋아질거야”, 그런 말씀을 늘 생각하면서“참 그 꿈이 이루어졌다.”

〔편지 3.〕 장공은 여전합니다. 날씨가 추워서 집안에 앉아 있습니다만 그런대로 하는 일이 늘 있어서 심심치 않고 또한 내객이 많아서 즐겁습니다. 長空 김재준(돌아가시기 전).

[장공 김재준 목사님께서 1984년 9월 27일에 써 주신 글]

저는 선생님을 만난 것을 생애에 큰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격적 품격과 품성이 나의 전 존재를 휘감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을 보면 말씀도 없으시고 조용하시면서도 아주 진실하신 분이었다는 것이 제 마음에 각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서 항상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한신 재학시절 동자동에서 공부할 때에 김재준 목사님은 기독교윤리를 강의하셨고, 시험감독도 없이 마지막에 다 쓰면 가져오라고 하시고는 그냥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때 시험지를 받아들고 이것이 정말 신학이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는 것만 쓰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래도 컨닝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 교권주의자들이 장공의 문제로 새문안교회에서 총회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그날도 선생님은 태연히 수업을 계속했습니다. 저는 수업을 마치고 새문안교회에 가봐야 된다고 했는데 그때도 계속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태연히 조용하게 강의를 하셨습니다. 이 때 선생님에 대한 삶의 모습과 가르침을 보면서 저도 목회생활하면서 장공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진실하게 살아야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과 친구, 교우 관계 속에서 서로 서로를 진실하게 대하는 그런 인정을 주고받을 수 있고 주고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 우리 모두는 무한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체험적인 깨달음과 안식을 누리고 또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어요, 그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고 홀가분한 가슴으로 자신의 삶을 고요하고 심오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평범한 것이야말로 이는 막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작년 2011년 연말 중국인들이 뽑은 올해의 한자는 ‘작다’는 뜻의 ‘웨이’(微), 평범한 사람, 평범한 국민들의 목소리가 중국 정치·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글을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부산에서 열린다고 하고, 그 주제를 보니까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쓰신 生命·平和·正義와 뜻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 추모예배에서 이 말씀을 다룰 수는 없지만,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평범하고 자유로운 가슴은 생명과 평화와 정의의 가치를 몸소 알려주시고 일깨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서 44절까지의 사도 바울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실상을 알려주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1-54)

우리는 하나님의 거대한 우주에서 영원한 운명을 지닌 사멸하지 않는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어느 날 신문에서 누구(아무개)가 죽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지금까지 나의 일부가 되어왔던 육체는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영혼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멸하지 않는 영적인 존재로서 내가 우리가 맞이할 엄연한 현실입니다. 일 만 년 후에도 우리는 살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가 사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 문제로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향후 1년 계획, 5년 계획, 10년 계획을 넘어 1만 년 계획도 수립에 착수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절대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주 속에서 그보다 더 현실적이며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미래를 가리켜주는 하나의 이정표입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을 빌릴 경우“이는 우리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하심이라.”(엡 1:14) 이것이 성령의 약속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고백이며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완성될 영원한 삶을 위해 이미 보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기 지상에서도 천국의 전초기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해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은 지금 이 땅에서 미약하지만 주님의 약속하신 믿음을 바라는 신앙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영생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한 17:3) 그러므로 영생은 우리가 이 땅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 나라의 생명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나눈 인격적인 교제, 그리고 서로 간의 교제는 점진적으로 더 깊어지고 확장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누군지 알아볼 수 없고 형체도 없는 영들이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인격성을 잃고 끝없는 환생을 되풀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의 부활체는 알아볼 수 있는 몸이었고, 죽음 이전 지상에 계실 때와 일관된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도 현재의 모습과 같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몸일 것입니다.(고전 15:51-54) 많은 사람은 천국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을 것입니다. 경험과 지식에 근거해서 추정해 본다면 천국은 행복한 사람들, 아름다운 경치, 수많은 조류와 피조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 가운데는 우리가 배우고 일하고 온갖 종류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지루함은 없을 것입니다. 지루함은 지옥의 경험이다. 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받게 될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카롤 잘레스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우리가 얻는 것은 초목을 시들게 하는 단순한 광선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란한 빛의 춤, 찬연히 빛나고 감격이 넘치는 모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스승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나고 싶습니다.“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계 22:4) 아멘. 할렐루야!

저는 이제“천국에서 만나보자”(480장) 찬송으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1.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 날 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 2. 너의 등불 밝혀 있나 기다린다 신랑이 천국 문에 이를 때에 그가 반겨 맞으리
3. 기다리던 성도들과 그 문에서 만날 때 참 즐거운 우리 모임 그 얼마나 기쁘랴
(후렴)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 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저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찬송을 여러 번 불렀습니다.


2012년 1월 27일 장공 김재준 목사 25주기 추모예배에서 설교말씀 증언하는 김영수 목사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3호] 2012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