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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6호] 성묘예배 설교 -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 정원섭 목사

작성자
changgong
작성일
2017-07-05 11:08
조회
1098

[제6호] 성묘예배 설교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

정원섭 목사
(남원 충절교회)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여기의 큰 의미는 '더'에 있습니다.

인간적인 연약함 때문에 허물도 많았던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연속해서 반복하신 이 질문은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내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짧지만 확고한 명령으로 결론지어 집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예! 대답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평생 살아왔다고 스스로 자위하고 있습니다. 장공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특별한 은혜를 입은 제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여기 먼 곳(남한강 공원 묘원)까지 와주신 여러분은 특별히 장공 선생님을 못 잊는, 남 다른 사연들을 간직한 분들이기에 이 사람들보다 더(more than these) 장공 선생님을 사랑하는 분들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유가족을 비롯해서 장.사.모.(장공을 사랑하는 모임) 즉, 한신대 관계자와 주님이 쓰시려고 남겨놓은 칠천 명(왕상19:18), 그리고 사단법인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여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에, 그 때 장공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말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말씀은 기독교 윤리학을 강의하시던 선생님께서 "효"란 그분의 제사를 거창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삶", 그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래서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우리가 부족해서 가끔 잊어버리기도 했고, 가끔 내려놓기도 했던 십자가! 오늘의 주제 "효"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음미하려고 합니다. 허물 많은 베드로에게 하신 것 같이, 장공 선생님께서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시며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는 무슨 일을 해서 장공 선생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선 지은 지 오래되어 빗물이 새는 수유리 장공관(본관)을 다시 짓는 일과, 장공 기념사업회의 활성화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가 한신인(韓神人)으로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잠시도 내려놓을 수 없는 "내 몫에 태인 십자가"라고 생각합니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저 수정 같은 길에서 면류관 벗어서
주 예수 앞에 바치며 늘 찬송하겠네"

찬송가 365장 2절을 읽어드렸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시던 이 부르심은 오늘 여기 계신 장공 선생님께서 유자녀들은 물론, 특별히 우리 한신인 모두를 부르시는 장공 선생님의 현실적인 부르심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엄숙한 부르심을 듣고 대답해야 하는 자리에 와서 서 있습니다. 작금(昨今) 기장 총회 본부 주변에서 야기(惹起)되고 있는 참으로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사회법정 고소 ․ 고발 사건은 피고발인측은 물론, 고발인측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 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되었느냐? 하는 원초적(原初的)인 문제, 적법절차위배(適法節次違背)는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결론을 서둘러 말한다면,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나를 그분의 틀에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서 주님의 틀에, 나를 죽이고 나를 거기에 맞추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 계신 여러분이 장공 선생님을 엄청나게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사랑한다면 나를 장공 선생님의 틀에 맞춰야 합니다. 장공 선생님을 내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장공 선생님의 틀에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도 이 문제도 장공식(式)으로, 장공 선생님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하셨을까? 이렇게 결론지어져야 한다고 저는 애타게 부르짖습니다.

우리 모두는 앞서 가신 장공 선생님을 천국에서 다시 뵈올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 날에 부끄러움 없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음으로 나는 장공 선생님께서 사회참여 ․ 정치참여를 시작하신 시점이 5.16 군사정변 이후, 즉 한신 학장직에서 강제퇴임 당하신 것이 계기가 된 것처럼 잘못 알고 있는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합니다. 사실은 그 이전부터라고 하는 것을 예증(例證)하려 합니다. 1959년 9월, 그때까지 한국신학대학 부학장으로 시무 하시던 장공 선생님께서 제6대 학장으로 취임하시는 취임식 날이었습니다. 이날 초대된 많은 인사들 중에는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과 전성천 박사님(당시 자유당독재정부 공보실장)이었습니다. 그분이 돋보였습니다. 그때의 공보실장은 지금의 개념으로 문화관광부 장관과 같습니다. 그런데 돌발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장공 선생님께서 당시 자유당독재정부의 빈객(賓客)으로 참석한 전성천 공보실장(목사)을 향해서 "경향신문을 폐간시킨 것은 분명한 언론탄압이요, 권력남용"이라고 그 많은 대중 앞에서, 그것도 직접 면전에서 공격하시는 말씀을 서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물론 친지(親知)간의 농(弄)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나의 느낌과, 당시 청중들의 반응은 그것을 단순한 농(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청중은 웃지도 환호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두 찬물을 끼얹은 듯 숙연했을 뿐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일간신문까지 폐간시키고 무소불의(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던 고압적인 정부를 그렇게 공격하면 조봉암 씨 처럼 절대 무사할 수 없으리라는 겁먹은 기우에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장공 선생님은 타고난 유가(儒家)의 선비적 기질 때문에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시는 강직한 정의의 화신(化身)이었습니다.

나는 이 설교의 마지막을 장공 선생님께서 그 시대 만천하에 직접 공포(公布)하신 말씀을 감히 인용(引用)하고 마치려 합니다.

“우리 인생은 광막한 우주 속에 살고 있다. 우주가 너무 넓고 크기 때문에 그 크기에 현혹해서 육척단신의 인간은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만도 못하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 또 인간들끼리도 어떤 한 인간이 生殺與奪의 권리를 가지면, 자기 이외의 인간들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기 때문에 인간을 가축이나 재산 같이 생각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우주 안에 있으면서도 그 광막한 우주를 초월하여, 그것을 밖에서 관조하고, 인지하고, 계산하고, 의미를 캐고 하는데서 인간의 존엄은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끼리 어떤 권력자가 여타 인간을 무시한다 할지라도, 무시당하는 인간이 그것을 알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그 무시하는 권력자를 심판하고 있다는 데에 인간의 두려움이 있다.…”

이것은 1972년 장공 선생님께서 인터내셔날 앰네스티 국제 사면위원회 한국 위원회를 창립하시면서 말씀하신 창립사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차츰 잊혀져 가는 듯 싶기에, 그 시대, 정치는 물론 사회 교계 안에서까지, 오직 굴종만이 안전이라고 치부하던 총체적 암흑의 시대를 향해서 본래 목소리는 작으시지만 어떤 예언자보다도 크게 외치신, 그 시대를 향한 선전포고와도 같았던 이 문서 한 장을 뒤에 첨부함으로서 장공 선생님의 진면모를 보여드리려 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 창립사 속에 선생님의 영원한 휘호(揮毫), 그 휘호의 의미 自由 正義 秩序 此三者 恒存, 其中 第一 自由也하심과, 生命 平和까지, 그리고 殉敎者的 勇氣와 그분의 위대함의 전부가 함축되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2007년 1월 25일 장공 김재준 목사 20주기 성묘예배 설교문)

(2007년 1월 25일 장공 김재준 목사 20주기 성묘예배 후 함께 찍은 사진)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6호] 2007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