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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25호] 장공 탄생 114주년 기념 예배 설교 / 최부옥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1 16:40
조회
587

[제25호] 장공(長空)탄생 제114주년 기념예배 설교

종이냐, 자유인이냐
-요8:31-40

최부옥 목사
(기장 총회장)

주의 성찬에 대한 기억과 대치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우리는 이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작업이 공식화된 시점에서 장공(長空)선생 탄신 제114주년을 기념하고자 모였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 우리는 그 동안의 기억을 지우려는 세력들과 그 기억을 살리고 지켜내려는 싸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싸움이 제21세기에 들어서 시작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싸움의 구도도 확실하고 선명합니다. 의와 불의의 싸움이요, 민주주의와 독재의 싸움이며, 양심세력과 거짓세력의 싸움입니다. 나는 저들이 여러모로 심각한 자충수(自充手)를 두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참 놀랍고도 묘(妙)한 느낌이 있습니다. 우리 기장이 지난 제100회 총회에서, 기억과 선포를 강조하는 주의 성찬(聖餐)을 주제로 삼고 나오면서, 성찬의 깊은 뜻을 세상 안에서 구현하자며 세상에 선포(宣布)하자, 마치 ‘그렇게는 절대 안 되겠다’는 듯, 현 정권이 우리와 정반대되는 입장인 국사(역사)의 국정화 정책을 내세우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치(相馳)된 흐름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연이라고 보십니까, 하나님의 깊은 섭리라고 보십니까?

기장의 아브라함, 長空

결과적으로 우리 기장은 또 다시 민족 역사의 흐름의 갈림길에서 이 나라의 어둠의 세력들과 대척점(對蹠點)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실로, 역사와 사건의 중심에 우리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납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역사의 중심점의 자리에 서게 된 데에는 우리에게는 아브라함과 같은 확실한 믿음의 조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장의 조상, 아브라함은 누구입니까? 그는 오늘 우리가 그의 탄신(誕辰) 제114년을 기념하고 있는 장본인인 장공 김재준 목사님입니다!

아브라함은 우상 종교의 문화 속에서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의 조상과 삶의 터전을 떠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 하늘 새 땅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와 순례자(巡禮者)의 길을 여신 분이었습니다. 세상 문화나 물질문명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세상과 인류를 구원한다는 믿음을 우리 가슴에 안겨주신 분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그는, 세상의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온 세계는 그의 후손들로 가득합니다. 유대교, 이슬람,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가 모두 그의 후손들인데, 그들이 지금 온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후손들은 지금 자신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은 분명하지만, 현실은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으로 맞서면서 세계 평화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참 모순(矛盾)도 큰 모순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답게 살고 있는가?

지난 주간 저는 <한국 그리스도 신앙과 직제협의회>가 주관하는 일치(一致)를 위한 순례(巡禮) 길에 참여하면서, 거룩한 땅 예루살렘과 로마의 바티칸을 방문하고 그곳의 지도자들과 만나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에 대한 그들의 역할에 대하여 경청했습니다.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저들 대부분은 평화와 일치를 원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자기 방어적(防禦的)이었을 뿐, 공동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자기 헌신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데에는 전혀 능동적(能動的)인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당신의 몸을 내어주셔서 십자가를 통한 평화와 일치의 길을 열어주신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자손답게 행하는 일입니다(39).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면서도, 그 마음과 믿음에서는 전혀 다른 죄악의 행보(行步)를 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죄의 종(從)들이었습니다. 누가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냐는 점은 지금도 영원한 관심사입니다. 아니, 오늘 여기 참석한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기장의 아브라함’으로 장공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 바람에 우리 기장은 한국교회와 역사 안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지내 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들으신 진리와 말씀에 신실하게 응답하셨고, 소명 수행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거짓을 꾸짖으시는 데에는 언제나 어른이셨고, 정의와 진리에는 참으로 깨어 있는 파수꾼이요 자유인이셨습니다. 그런 그의 발자취는 세상의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욱 선명(鮮明)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그의 후예인 우리가 과연 그의 후손답게 성장하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이번 제100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서 제가 본 장공의 후예들의 모습은 가능성(可能性)과 우려(憂慮)를 함께 보여 주었다고 봅니다. 장공의 후예(後裔)라는 프라이드는 강하고 깊지만, 그 정신과 사상을 살아내려는 의지는 많이 퇴락(頹落)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교회현장 목회가, 장공 사상과 정신을 가지고도 충분히 교회가 되고 목회도 잘 될 수 있다는 확신과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이 분명치 못해서가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장공 선생에 대한 배움이 미약하고, 또 충분히 그의 가르침이 전달되지 못한 연고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 장공기념사업회는 현장 교회와 목회자들을 어떻게 품고 함께 장공정신의 교회화와 목회화를 이룰 것인지를 고민하며 기도해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예수님도 제자들이 당신과 따로 도는 모습을 정말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죽으시기 전(前)은 물론, 부활하신 후에까지도 제자들을 친히 찾아가셔서 더욱 깨우치고 가르치셨던 모습을 열심히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는 앞서 간 선생을 기념하라고만 세워진 존재가 아니잖습니까!

예수에 철저한 삶, 자유인의 삶

예수의 삶을 놓친 제자들의 미래는 한갓 종(從)의 삶일 뿐이었습니다. 오직 예수에 철저한 무장된 삶만이 그를 자유하게하고 구원해 줍니다. 우리 기장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 평화, 생명’이라는 장공정신이 우리 기장인의 삶의 지표가 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광야생활에 믿음의 시련을 겪었던 이스라엘처럼, 지금의 장공 후예들 역시 그 시련기에 깊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그런 우리 후배들을 잘 일깨워 주십시오. 그리고 이 장공을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를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일깨워 줄 중심이 되게 하는 것임을 일깨워주십시오.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래도 한국 역사와 교회의 미래가 바로 우리들, 장공의 후예들의 어깨에 걸려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축원합니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5호] 2015년 1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