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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22호] 추모예배 설교 - 믿음의 사표 / 김경재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1 10:15
조회
1192

[제22호] 추모예배 설교

믿음의 사표

김경재 목사
(본회 이사장)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장 2절 a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늘 암기하고 사랑하는 성구입니다. 영어성경에는 “looking to Jesus the Pioneer and Perfecter”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글성경도 맞고 좋은 번역이지만, “믿음의 주”라고 하면 우리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헬라어성경에는 “아르케고스 테스 피스테오스(ἀρχηγός τῆς πίστεως)”라고 되어있습니다. ‘아르케’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라고 할 때의 ‘태초’라는 뜻입니다. ‘맨처음’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아르케코스’를 직역하면 믿음의 주라고 하기보다는 믿음의 창시자, 믿음의 선구자, 믿음의 선도자로서 앞장서서 걸어가신 이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11장을 보통 믿음장이라고 하는데, 11장에서는 고난과 시련과 박해 속에 있던 많은 초대교회 신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12장에서 마침내 예수를 바라보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우리 믿음을 처음 일으키신 이요, 일으키셨을 뿐만 아니라 선구자로서 몸소 앞서 걸어가신 이”라고 설명합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라는 말도 “텔레이오테스(τελειωτής)”라는 말인데, ‘목적지’라는 뜻입니다. 텔로스(telos)라는 영어가 거기서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북교회를 떠나서 성묘를 하러 산소로 왔는데, 이 산소가 우리의 텔로스인 셈이지요. 그러니까 텔레이오테스는 ‘완성자’, ‘온전케 하시는 자’라는 뜻도 있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는 목적지로 이끌어가시는 이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자”는 성구를 본래 성서원문에 가깝게 의역한다면 “우리의 믿음을 일으키실 뿐만 아니라 앞장서서 선도해 가셨고 우리를 목표에로 이끌어 가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는 뜻이 됩니다.

예수는 우리 그리스도 신앙에 있어서 원형(archetype)이시죠. 원형은 너무나 온전하시고 멀리 계셔서 어린 아이들이 성장할 때 예수 신앙을 강조해도 잘 모릅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믿음을 가지게 될까요?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믿음대로 사는 행동을 보면서 믿음을 배우고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중요하고 스승이 중요합니다. 오늘 제가 ‘믿음의 사표’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도산 안창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훌륭한 인격과 삶을 바라보고, 평양에서 놋그릇 장수를 하던 이승훈이라는 사람이 전재산을 바쳐서 오산학교를 세웠고, 나라의 독립과 민족정신을 일으키는 많은 인재를 길렀지요. 그러므로 남강 이승훈 선생의 사표는 도산 안창호 선생입니다. 또 오산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던 함석헌이라는 사람은 평생 여러 인물들과 사상가를 공부했지만 믿음의 사표로서는 자나깨나 늘 마음에 그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남강 이승훈 선생이었습니다. 강원룡 목사는 여러 분들과 인연이 있지만, 그분의 전기를 보면 몽양 여운형 선생이 사표로 그려지고 있어요. 장준하 선생 또한 여러 훌륭한 분들과 교류했지만 그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끌고 간 사표는 백범 김구 선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렇게 사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취직이 잘 안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들에게 사표가 없어서입니다. 구체적인 인격체로서 살아있는 푯대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뿐 아니라 6·25나 해방정국 때도 어렵고 힘들었지만, 사표가 있어 그 모든 역경을 이기고 뚜렷하게 자기 인생을 걸어갔던 선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의 사표로서 장공 선생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교사, 교수, 인사가 아니라 ‘아르케고스 헬레이코스 텔레이오테스’로서 믿음이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앞서서 걸어가시고 선도하시고 목표까지 우리를 이끌고 가신 장공 선생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행복입니다. 기장과 한신 대학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그런 면에서는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그런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장공 선생님은 한국 역사와 문화와 민족을 그리스도의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로 올바르게 변혁하는 누룩, 효모, 이스트를 만드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그것을 밀가루 속에 넣어서 부풀고 맛있는 빵이 되게 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장공선생님이 타개하신지 18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우리 기장마저도 장공선생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한국교회는 더욱 그렇고 한국 사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장공선생님을 더 많이 알고 본받는 것입니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역사와 교회와 신앙을 새롭게 그리스도의 원형의 모습으로 변형케 할 수 있는 누룩, 효모, 이스트를 장공 선생님이 준비해 주셨으니까 그것을 가지고 각각 지교회, 한국기독교 교단, 역사 속에 집어넣어서 변혁시키는 일에 우리가 매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추모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참 자세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2호] 2015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