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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19) 서울 3년 – 장도빈 선생과의 인연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8 14:59
조회
945

[범용기] (19) 서울 3년 – 장도빈 선생과의 인연

3ㆍ1 독립운동에서의 ‘피’의 댓가로 우선 ‘제등총독’의 ‘문화정치’가 선언되었다. 그것이 사탕발림의 회유정책이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사회’에서는 ‘민족주의’가 어였하게 외쳐지고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한국말 일간신문이 발간되고 ‘개벽’ 잡지가 나오고 공개강연, 학생토론회 같은 것도 비교적 자유롭게 열리게 되었다.

그때 백부님은 할빈에서 서울에 돌아와 한성도서 주식회사를 경영하시면서 각종 도서 출판과 아울러 <서울>, <학생계> 두 월간지도 내셨다. <서울>은 장도빈 선생이 주간으로 계셨다. 장도빈 선생은 한말 지사로서 ‘국사’ 전공이시고 한말의 언론인으로 저명하신 분이었으나 현실과 꿈이 맞지 않았으며 맞게할만큼 사무적인 분도 아니었다.

<서울>이 재정난과 당국의 간섭으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장선생은 <조선지광>(조선의 빛)이라는 단독잡지를 창간하였다. 그는 나더러 심부름을 하라 하셨다. 한 달에 20원씩 주라 하신다. 그때 하숙비가 16원이었으니 밥은 굶잖을 것 같아서 그러기로 했다.

<조선지광>은 꽤 부피있는 월간 잡지로써 글솜씨가 아무리 좋아도 혼자서 다 메꾸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장선생은 여기저기 ‘글 부탁’을 하신다. 장선생의 청탁 편지와 함께 내가 뛰기 마련이다. 덕분에 ‘허헌’씨 댁에도 몇 번 갔었다. 몇자 안되는 원고였지만 약속기일이 되는 일은 없었다. 장선생 댁에 몇 번 찾아가 봤지만 추위가 한창인데 방 안에 불기는 체온 이하라, 바깥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장선생님은 재만 소복한 놋화로에 콩알만한 불씨를 심어놓고 언 손을 비비고 계셨다. 간혹 바늘 같은 윗수염에 손이 가기도 했다. 원고지도 없어서 소학교에 다니는 따님의 도화지 뒷등에 연필로 쓰다가 신문지 귀등에 적기도 하셨다. 그야말로 서발 장대를 마구 휘둘러도 거칠데 없는 선비집이었다. 그러니 내게 약속한 이십원 월급이 나올 까닭은 없겠고 따라서 매달 십륙원씩의 하숙집 밥값도 밀릴대로 밀린다.

내복도 외투도 없는 단벌 학생복에 눈길 눈보라와 맞서 도보로 아현고개를 넘고, 애기능 언덕을 오르내려 ‘연희전문’에 간다. 백낙준 박사와 약속한 원고를 가지러 가는 것이다. 그때 백박사는 미국서 갖돌아온 이글이글 타는 청춘이었다. 연전 문과에서 강의하시는 모양인데 원고기일 같은 걱은 기억된다.

원고수집, 편집, 인쇄에 넘기는 것, 교정(마감교정은 장선생님이 손수 보셨지만), 서점배본, 월말 ‘수금’ 등등 모두 나 혼자서의 독무대였다.

결국 ‘페이지’ 수를 줄이면서 3호까진가 내다 말았다. 한 달에 20원씩 주신다던 것도 그럭저럭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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