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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16) 서울 3년 – 1920년대의 서울풍경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8 12:56
조회
1149

[범용기] (16) 서울 3년 – 1920년대의 서울풍경

예정대로 서울에 닿았다. 여름철이라 사람들은 모두 풀먹여 빳빳하게 대림질한 하얀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다닌다. 고이적삼까지도 구김새 없는 모시로 입었다. 말쑥하게 땟벗이 한 문화족속임에는 틀림 없었지만 어딘지 매끄럽고 약해 보였다. 여인들은 아직도 장옷 속에서 눈만 깜박이는 모습이어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길이 없었다. 집들은 모두 납작하게 땅에 붙은 기와집인데 굴뚝은 없고 길바닥 벽밑 구멍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와 보드러운 안개같이 퍼진다. 식전에 남산 잠두에 올라가 보며는 온 장안이 연기에 잠겨 호수로 변모한다. 그래도 장작이 아니면 솔잎 연기여서 대기는 향긋하다. 이층집이라곤 한일은행, 식산은행 등 몇이 있을 뿐이다.

나는 첫날밤에 여관에서 자고, 이튿날 다방골 백부님 댁을 찾아갔다.

“제가 왔습니다”하고 넙신 절을 했다.

“언제왔니?”

“어제 왔습니다.”

“어디서 잤니?”

“여관에서요.”

“이놈! 오는 길로 이리 와야지, 여관이 다 뭐니!”하시며 백부님은 꾸중하셨다.

그리고서는 곧 미소를 띄우시며 “여기 사랑방에 거처해라!”하신다.

서울와서 맨 처음 듣기 어색한건 손님마다 대문간에서 “이리 오너라!”하는 호통소리였다. 집집마다 자기 몸종이나 둔 것 같이 오만하다.

또 하나는 쌀 사러 가면서 쌀 팔러 간다는 말씨였다. 가난한 양반의 얕은 허세를 연상시킨다. 자식 공부시키는 북청 물지게꾼이 훨씬 떳떳해 보였다.

그때 서울은 네 대문 안에 국한된 인구 15만의 소도시였다. 왕십리는 미나리 밭이었고 동대문 밖은 주로 초가집 시골동네였고 혜화동은 앵두밭이고 신당동은 논밭이었다. 창의문 밖은 능금밭이고, 수구문 밖은 무덤 위에 무덤인 공동묘지였다. 남대문 밖에는 작은 늪이 고이고 서울역까지에 초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이 유난스레 서양식이었고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이 유일한 우리 모임터였다. 그리고 용산 일대는 일본 군대 주둔지어서 철저한 ‘외촌’이다.

남대문 옆에서 성밖에 서민들이 각쟁이로 긁어 모은 커다란 솔잎덩어리를 황소 잔등에 걸쳐 싣고 왼종일 사갈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는 생선장수, 두부장수, 콩나물장수 등등 지게꾼 행상이 독특한 창(唱)이 골목마다 메아리친다. 밤에는 ‘고학생 갈돕회’ 학생들의 ‘찐빵’ 사라는 소리가 구슬펐다.

남산잠두는 아직 ‘신궁’으로 더럽혀지지 않았기에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그 때의 서울은 상수도 시설도, 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에 용감할 정도로 위생이 무시돼 있었다. 이질, 폐결핵, 장질부사 등속이 제 세상이라 뽐내는 판이었다.

공부한다고 서울에 왔는데 안할 수도 없고, 하자니 나이 스물 넘어 중학 첫 학년부터 시작하기도 멋쩍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한 학기에는 한 학년씩 떼는 속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로서는 중동학교가 제일급으로 손꼽힌다고 했다. 나는 그 학교 고등과에 등록했다. 최규동 선생의 대수강의, 안일영 선생의 기하 강의는 하두 유명해서 최댓수, 안기하로 통했고, 그 강의를 듣고서도 모르겠다는 학생은 삼등이나 등외인간일 거라고들 했다. 의전이나 ‘법전’ 응시생은 거의가 여기서 마무리 작업을 받는데 입학률이 월등하게 좋다는 것이었다. 나도 성적이 나쁜 축은 아니었으니까 제대로 밀고 나갔더라면 의전쯤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안될 말이다. 하숙비, 학비, 실험비 등등 톡톡한 밑천이 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내 성미에 맞지 않는 분야인 것 같았다.

하기방학이 됐다. 백부님이 잠시 귀향하신대서 나도 따라 나섰다. 부모 형제 한 집에 살았고 아내도 거기 있으니 ‘우리집’이자 ‘내집’이기도 했다.

가을학기 시작될 무렵에 백부님은 나를 데리고 다시 서울길을 떠났다. 내 어머니는 막내아들 보내기가 역겨워 십리나 따라 오시다가 큰 개울가에서 멈추셨다.

웅기항에 나오자 서울에는 호열자(Chorela)가 한창이라고 신문마다 떠들썩한다. 일제시대라 별난 기사거리도 없는 터에 이런거라도 떠벌려 보자는 기자 근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러고 보면 서울은 온통 콜레라 ‘풀’(Pool)인 것 같이 느끼어진다. 백부님도 무작정 나를 데리고 떠나기가 안되어서 아버님께 편지로 문의한 모양이었다. 아버님은 회신이 ‘걸작’이다. ‘人間萬事 塞翁之馬 安如非福安如非福 이리이까’하는 것이었다. 뜻을 풀이하면 아래와 같다.

“옛날 중국의 북쪽 국경 부락에 한 늙은이가 명마(名馬)를 기르고 잇었다. 하루는 그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떨어져 다리를 상했다. 늙은이는 절름발이 아들을 볼 때마다 ‘불행하다! 화로다!’하며 슬퍼했다. 그런데 그 무렵에 전쟁이 터져서 성한 사람은 모두 징병에 뽑혀 전쟁에서 죽은 사람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그 늙은이 아들은 병신이란 이유로 뽑혀가지 않았다. 늙은이는 잃을뻔한 아들을 집에 두고 날마다 ‘즐겁다! 복이로다!’ 했다. 그러니 어느게 ‘화’고, 어느게 ‘복’이라고 속단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은근하게 만류하는 말씀이다. 백부님은 나를 데리고 도루 큰집에 오셨다.

초가을이 지나고 아침저녁 서리발이 잡힐 때 서울의 ‘호열자’도 동결됐다. 이제는 간다고 다시 떠났다. 나는 서울에 내려 학교에 가봤다. 그 동안에 거의 한 학년과정이 나를 앞질렀다. 수학은 미분, 적분대로 뛰었고 물리, 화학도 방정식이 까다로워 소 귀에 경읽기 였다. 나는 탈락자랄까 낙오자랄까 무어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 무렵, 서울 시내 장로교회 연합사경회가 승동예배당에서 열렸는데 강사는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었다. 그는 원래 장돌뱅이 깡패두목이었는데 목사가 돼서 주로 부흥집회를 맡는다고 했다.

서울에는 첫 ‘데뷰’다. 언어가 서민적이고 표현도 ‘속인’(俗人) 그대로였다. 거기에 또 병고치는데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샀다. 예배당 안은 부인들로 찼고 남자들은 바깥 뜨락과 담장 위에까지 앉았다. 설교는 예배당 이층 바깥 현관에서 했다. 사람이 하두 많기에 나도 웬일가 싶어 가 봤다. 말씨가 구수해서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마감날이이었다. 그는 창세기 1장 1절을 갖고 설교했다. “닭이 달걀에서 나오고 달걀이 닭에서 나오고” 이렇게 암만 따져도 해결은 없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 이것은 사람의 이론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포다. “그럼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는가? 누가 만들어서 있는 하나님이라면 그건 만물 중의 하나요, 창조주 하나님은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믿음으로 아는 것이고 사람의 이치 따짐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자! 여러분! 믿으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당신 하나님으로 당신 생명 속에 말씀하실 것이오!’ 그때부터 여러분은 ‘새 사람’으로 ‘새 세계’, ‘새 빛 속에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것이오!” 등등 나는 ‘옳다! 나도 믿겠다!’ 하고 결단했다. 그 순간, 정말 이상했다. 가슴이 뜨겁고 성령의 기쁨이 거룩한 정열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성경말씀이 꿀송이 같고 기도에 욕심쟁이가 됐다. 교실에서 탈락한 자연인이 교회에서 위로부터 난 영의 사람이 됐다.

‘새옹지마’는 하늘의 복을 내게 심는 길닦이가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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