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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15) 웅기서 서울로 – 웅기서 서울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8 12:17
조회
1136

[범용기] (15) 웅기서 서울로 – 웅기서 서울로

때는 3ㆍ1운동 다음해 – 나는 그때 웅기 금융조합에 서기로 있었다. 나이는 스무살.

웅기서 한 오리 떨어진 해변에 웅상이란 동네가 있다. 일찍부터 기독교촌이었다. 거기 출신인 송창근 씨가 서울 남대문교회 전도사로 있다가 3ㆍ1운동 다음해에 독립의 노래를 작사하여 퍼뜨렸다는 것 때문에 ‘박’이라는 청년과 ‘정’이라는 소년과 함께 잡혀서 육개월 징역을 치루고 고향에 근친하려 왔다. 교회에서는 사흘동안 특별 강연회를 연다고 광고가 나붙었다. 나는 교회 집회에는 냉담했다. 그런데 어느날 내 하숙방에 그이가 일부러 찾아왔다. 말끔하게 세련된 서울식 미남자였다. 그는 나보다 두 살 위였지만 나 같은 풋내기를 먼저 찾아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 이튿날 길에서 그를 만났는데 무척 반기면서 “지금 3ㆍ1운동 이후 우리 민족은 되살아났습니다. 이제부터 새 시대가 옵니다. 김선생 같은 청년을 요구합니다. 웅기 구석에서 금융조합 서기나 하면 무엇합니까? 서울 올라와 공부하십시요! 서울에는 유명하신 백부님이 계시잖습니까? 하루 속히 단행하십시오……”했다. 그 언어가 정답고 진실했다. 나는 대답을 못했지만 속으로는 들떴다.

그때 나는 꽤 많은 돈을 갖고 있었다. 남만철도 어느 일본인 간부가 비밀서류인 나진(羅津) 개발 설계도를 입수한 것을 계기로 벼락부자 꿈이 부풀었던 것 같다. 그는 소문없이 나진 땅을 사둘 작전이었다. 그 임무를 함북도청 서기 김희영에게 부탁했다. 김희영은 웅기에 있는 나에게 부탁했다. ‘나진’은 웅기서 남쪽 이십리, 언덕 너머에 있다. 그러니까 이 일은 내가 맡는게 편리하다는 결론이었다. 나진은 항구 됨됨이 웅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은 항구 구실을 못한다. 질퍽한 벌판이 넓고, 밋밋한 완경사 언덕도 광막하지만 곡식이 안되니 땅값은 갯값이다. 한평에 이십전이면 얼마든지 산다. 나는 나진가서 약빠른 거간군을 내세워 대번에 사십만평인가 사서 이동등기까지 해 보냈다. 덕분에 거간료가 톡톡하게 생겼다. 그 중 얼마를 거간군에게 할양하고 김희영에게도 후하게 사례하고 나머지는 내 이름으로 저금했다.

때가 때니만큼 독립투사들이 웅기에 몰려 콩무역 하청인으로 되어 두만강을 넘어 만주와 시베리아로 망명한다. 나도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이 컸다. 이만큼 돈이 생겼으니 서울에 공부하러 간다! 이렇게 맘먹고 가슴이 부푼다. 당장 금융조합에 사직서를 내고 아내에게도 알리잖고 부랴부랴 배를 탔다. 그때 아내는 웅기서 팔십리 떨어진 창꼴 집에서 시집살이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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