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북구 인수봉로 159
02-2125-0162
changgong@hs.ac.kr

장공의 글

[범용기] (14) 웅기서 서울로 – 외톨이 풋내기도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8 11:53
조회
1098

[범용기] (14) 웅기서 서울로 – 외톨이 풋내기도

결혼하자마자 나는 회령군청에서 웅기금융조합으로 전직했다. 그 때 웅기에는 은행이 없었기에 금융조합에서 은행업무도 얼마 맡아 상인들 편리를 봐주곤 했다. 그것이 3ㆍ1운동 다음 해였지만 웅기에는 교회가 너무 약했고 경찰이 너무 극성이었기 때문에 운동자체에서는 탈락되어 있었다. 그러나 웅기는 만주나 시베리아에 망명하는 애국지사들이 통과하는 관문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배로 웅기까지 와서 장사꾼으로 변장하고 두만강을 건너는 것이다. 그때 김기련이라는 30대 청년이 웅기서 무역상 겸 잡화상을 경영하고 있었다. 상점 이름은 ‘대성상회’였다고 기억된다. 콩, 팥, 흰콩 등속은 수출품이었는데 김기련은 일본인 수출업자의 ‘하청’을 받아 주로 두만강 건너의 산품을 실어다 바치는 것이었다. 콩 사들인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은 쉽사리 두만강을 넘나들 수 있었다. 독립투사들도 대성상회에 들려 ‘콩장사’로 강을 건넌다. 나는 대성상회에서 그런 분들을 만나 이야기도 듣고 몰래 갖고온 상해 독립신문 같은 걸 읽기도 했다. 피가 피를 부른다는 말대로 내게도 가냘픈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진짜 ‘애숭이’어서 사회적으로는 있으나마나였다.

내가 금융기관에 있다는 것 때문에 저절로 장사치들, 사회청년들과 어울리게 됐다. 세속사회의 ‘교제’란 술과 계집을 필수품으로 한다. 친구를 만나면 의례 색주가나 요정에 끌고 간다. 술에 강하고 계집 다루기에 능숙하면 ‘인물’로서의 점수가 오른다. ‘인물은 주색 밖에서 구한다’고 한다. 주색은 인물평에 관계 없다는 뜻이다. ‘화류’가 그대로 ‘풍류’였다. 이건 물론 ‘풍류’의 타락이다.

어쨌든, 나도 그런데로 끌려다녔다. 아내도 없고 외톨이 하숙인이기에 가정적으로 문제삼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적극적이 아니었다. 마냥 수줍었다. 여자들은 그게 좋다고 아양을 떤다. 그러나 ‘매춘’에는 매력이 없었다.

그럭저럭 삼년이 됐는데, 지나가는 애국지사들 모습은 갈수록 돋보이게 되고 일인들 밑에서 심부름이나 하는 자기 모습은 초라하기만 했다. 견디다 못해 김기련은 식구를 귀낙동 본집에 보내고 자기는 상점을 팔고 시베리아로 뛰었다. 나도 물론 들떴다. 김기련은 해삼위서 독립군에 가담했다고 공산혁명 때 희생됐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아무도 확증은 못 얻고 있다.

또 하나 웅기서의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북만주 ‘할빈’에서 아편장사로 첫 밑천을 만들어 호텔도 경영하고 하는 ‘부자’ 청풍 김모가 내게 초청편지를 보내왔다. 내가 일본말을 잘한다니 사업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따분한 촌 항구에서 이름난 대도시로 간다는 호기심에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속으로는 가기로 작정하고 아버님께 상의하는 편지를 올렸다. 그때 아버님은 적지 늪 근처 홍의동에서 서당훈장을 하고 계셨다. 편지회답이 없기에 가서 뵜다.

“그런 일은 너희 어머니, 형, 집안식구들과 잘 상의한 다음에 결정해야 한다” 하시면서 나를 데리고 창꼴집으로 떠나시는 것이었다. 적지 늪을 지나 강가 유명한 버드나무 숲속을 걸으셨다. 적지늪 뒤에는 꽤 높은 봉우리가 홀로 바다의 섬처럼 서 있다. 그 저쪽이 두만강이다. 전에는 두만강이 불으면 그 봉우리 안으로 들이 흘러 우리 땅이 그만큼 줄어들었단다. 그런데 어느 유명한 성주가 그 봉우리 뒤와 옆으로 30리 모래밭에 버드나무 수백만 그루를 심어 밀림을 이루자 강은 봉우리 저쪽으로만 흘러 그만큼 국경선이 저쪽으로 물러갔다는 것이다. 지금 그 밀림은 무시무시할만큼 무성해 있다. 이리 떼의 서식처이기도 하단다. 아버님은 그 숲을 지나시면서 즉흥시(詩) 한 절 읊으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할빈이란데는 험한 고장이다. 더군다나 아편장사 소굴에 너 같은 풋내기가 어쩌자고 들어가려는 거냐? 그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마는 불의한 돈은 뜬 구름 같은거야. 아예 갈 생각말고 웅기 있으면서 펴이는대로 앞 길을 찾아봐라!”

“내기는 만성이란다!”하셨다. 나는 내가 큰 그릇이라고 생각해 본 일은 없지만 아버님 말씀에 깊이가 있다고 느끼어 할빈행은 단념했다.

훨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가 여덟살 때였었던 것 같다. 북간도 명동학교에 공부하러 간다는 20대 젊은이가 우리 집에 와서 한 달 이상 머문 일이 있다. 그는 아버님 몰래 나를 명동으로 데려가려 했다. 그걸 눈치 챈 아버님은 어느날 나를 서재방으로 부르셨다.

“서울 너희 백부님이 내년에는 너를 데려다 공부시킨다고 하셨다. 서울 가야 제대로 공부될 것 아니냐? 딴 생각말고 기다려라!”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있고 그 사람 혼자 떠났다. 그 후에는 감감소식이다. 백부님도 그런 약속을 하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후에 나는 역시 아버님 말씀대로 서울에 갔다.

전체 966
번호제목작성자작성일추천조회
공지사항
[귀국이후] (1) 머리말 - 범용기 속편
장공 | 2019.02.14 | 추천 0 | 조회 8718
장공2019.02.1408718
공지사항
[범용기 제6권] (1601) 첫머리에
장공 | 2018.10.29 | 추천 0 | 조회 9213
장공2018.10.2909213
공지사항
[범용기 제5권] (1)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설날과 그 언저리
장공 | 2018.10.01 | 추천 0 | 조회 8800
장공2018.10.0108800
공지사항
[범용기 제4권] (1) 序章 - 글을 쓴다는 것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9414
장공2018.04.1609414
공지사항
[범용기 제3권] (1) 머리말
장공 | 2017.10.10 | 추천 0 | 조회 9831
장공2017.10.1009831
공지사항
[범용기 제2권] (1) 머리말
장공 | 2017.08.02 | 추천 0 | 조회 9730
장공2017.08.0209730
공지사항
[범용기 제1권] (1) 첫머리
changgong | 2017.06.26 | 추천 0 | 조회 11038
changgong2017.06.26011038
19
[범용기] (19) 서울 3년 – 장도빈 선생과의 인연
장공 | 2017.07.08 | 추천 0 | 조회 945
장공2017.07.080945
18
[범용기] (18) 서울 3년 – 인쇄된 첫 글
장공 | 2017.07.08 | 추천 0 | 조회 932
장공2017.07.080932
17
[범용기] (17) 서울 3년 – 중앙 YMCA
장공 | 2017.07.08 | 추천 0 | 조회 1110
장공2017.07.0801110
16
[범용기] (16) 서울 3년 – 1920년대의 서울풍경
장공 | 2017.07.08 | 추천 0 | 조회 1152
장공2017.07.0801152
15
[범용기] (15) 웅기서 서울로 – 웅기서 서울로
장공 | 2017.07.08 | 추천 0 | 조회 1136
장공2017.07.0801136
14
[범용기] (14) 웅기서 서울로 – 외톨이 풋내기도
장공 | 2017.07.08 | 추천 0 | 조회 1098
장공2017.07.0801098
13
[범용기] (13) 회령에서 3년 – 장가가던 이야기
changgong | 2017.06.30 | 추천 0 | 조회 1315
changgong2017.06.3001315
12
[범용기] (12) 회령에서 3년 – 회령군청(16~18세)
changgong | 2017.06.30 | 추천 0 | 조회 1131
changgong2017.06.3001131
11
[범용기] (12) 회령에서 3년 – 회령 간이농업학교(13~16세)
changgong | 2017.06.30 | 추천 0 | 조회 1238
changgong2017.06.3001238
10
[범용기] (11) 경원 함양동 3년 – 고건원 보통학교
changgong | 2017.06.30 | 추천 0 | 조회 1151
changgong2017.06.300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