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11) 경원 함양동 3년 – 고건원 보통학교
[범용기] (11) 경원 함양동 3년 – 고건원 보통학교
열두살 때 초가을이었다. 외사촌 형님 채규홍씨가 우리집에 들러서 고건권에 공립 보통학교가 생기고 향동학교에는 폐교령이 내렸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보통학교에 다녀서 거기를 졸업하는게 유리하다고 했다. 다짜고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나는 보통학교 과정은 배우고도 남는데 뭣 때문에 또 그런데 가느냐고 우겼다. 그러나 세상이란 그런게 아니라면서 기어코 데리고 떠났다. 나는 또 외갓집에 갔다. 여전히 온 식구가 대환영이다. 삼학년에 편입시켜 준다고 했다. 그래서 2년을 다녔다. 외조카 관석군이 길동무, 같은 반, 같은 책상에서 꼭 같이 2년을 동무했다.
향동에서 고건원까지 이십리 먼 거리다. 더군다나 가운데 유명한 오룡천이 굴러 흐르고 삼학골 강추위가 태풍처럼 밀어닥치는 겨울 벌판을 매일 해뜨기 전, 해진 다음 걸어야 한다. 오룡천에는 그렇다 할 다리도 없다. 소낙비가 한번 와도 급류가 징검다리를 밀어 버린다. 겨울에는 얼어붙으니 문제가 없다. 그러나 늦은 가을, 첫 겨울 살얼음이 낄락말락 할 때에는 맨발로 얼음섞인 찬 물을 밟고 건너야 한다. 관석군은 나보다 두 살 아래였으니 열 두 살과 열 살짜리 소년으로서는 가혹한 훈련이 아닐 수 없었다. 관석군은 정면으로 때리는 삼학골 강풍을 옆으로 비키노라고 늘상 몸을 비틀고 걸어서 한참은 몸 자체가 아예 비틀어진 자세가 됐었다.
어쨌든, 보통학교도 마치게 되었다. 졸업 때 나는 또 성적이 정상(Top)이라고 여러 가지 상도 타고 답사도 하고 상금 2원짜리 ‘도지사 상’이란 것도 탔다. 교장 선생은 ‘간마사노ㆍ조오’(寬政之亞)라는 풍부한 아랫수염을 자랑하는 점잖은 분이었다. 한국 선생 두 분 중 최명세(崔明世)(?)란 분은 정규사범 출신이었다. 우리 담임은 최두진씨였는데 몸집이 크고 잘생긴 분이었다. 어느 날 방과 후에 그는 우리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너희들은 왜(倭)족이 아니라, 조선민족인걸 잊지 말아야 한다.” “범의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정신들 똑바로 가지고 제 혼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다른 아이들은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깊이 마음에 새겼다.
보통학교 졸업식 때에는 형님이 올라와 참예하고 곧 나를 데리고 집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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