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29) 동경 3년 – 청산학원 건축장에서
[범용기] (29) 동경 3년 – 청산학원 건축장에서
‘여름방학’ - 학생 아닌 내게는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 ‘만우’ 형은 귀국했고 나는 ‘후까미’라는 청산학원 신학생의 소개로 청산학원 교사(校舍) 신축장에서 일하게 됐다. 후까미(梁見政夫)란 일본학생은 서양인 타입의 키 크고 준수한 신학부 일년생이었다. 어깨를 덮은 장발에 도수 깊은 안경 그리고 러시아식 ‘류바슈카’를 입은 자유주의 또는 사회주의자였다. 느닷없이 만났는데 초면에 심기가 통했다. “일본이란 놈은 강도요, 절도다”한다. 어려운 한국을 돕는체하며 절도질했고, 제가 불질러 놓고서 “화재다!” 고함치며 도둑질한다. “나는 한국 학생과 친하고 싶다” 하는 것이었다.
청산학원 교사(校舍)는 진재 때 폐허가 됐다. 총장이 미국서 비락질해다가 지금 중학부 고등학부 건물을 재건하는 중이다.
공사는 ‘시미즈 구미’(淸水組)에서 맡았다. 후까미(梁見政夫) 군은 공사감독에게 말했다. “청산학원 학생 셋이 본교 건축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데 써 주었으면 큰 도움이 되겠소”했다. 감독은 대번에 “좋다!”고 했다. 셋이란 ‘후까미’와 나와 또 한국 고학생 하나였다. 감독은 본교생을 ‘봐 준다’는 의미에서 힘 안드는 자질구레한 일만 시킨다. 땅에 널린 못 줍기, 되는대로 뜯어 팽개친 널빤지며 서까래 정도의 통나무 등속을 어느 한 구석에 모아놓는 일, 그리고 너저분한 대패밥, 휴지 따위를 말끔하게 소제하는 것, 때로는 부어넣은 콩크릿 죽을 대까지로 찧는 것 따위 일이었다. 노동시간 중의 식사는 회사에서 ‘돔부리’를 제공한다. 넉달 동안 그렇게 본교생 특전을 받았다. 숙소로는 기숙사 ‘만우’형 방을 독차지했다.
여름방학 끝날 무렵 내 호주머니는 꽤 불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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