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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27) 동경 3년 – 동경에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4 17:35
조회
785

[범용기] (27) 동경 3년 – 동경에로

폭풍우와 홍수가 열흘남아 전국을 휩쓴다. 나는 웅기여관 컴컴한 골방에서 혼자 묵었다. 길이 이렇게 막힌다는게 뭔가 불길한 징조 같기도 했다. 안할 일을 하래서 하나님이 막은 건가도 생각됐다.

‘늙으신 부모님, 몸 약한 형님, 거기에 아내까지 갖다 맡기고, 인사도 안 여쭙고 바다 건너 뺑소니친다는게 인자의 도리냐?’ ‘예근’ 군은 넉넉한 학비에, 제대로 공부하니 문제 될 것도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무일푼의 못난 인간이 동경바닥에서 어쩌자는 거냐? 걸식할 뱃장도 없는데 공부는 어떻게 한다는 건가?

집에는 그래도 만평 가까운 농토에 십만평 가까운 산림(山林)이 있다. 제대로 설계하여 농촌개발을 합리화한다면 이상촌도 만들 수 있다. 내 앞에는 농촌 사업 프로그램이 영화필름같이 영사된다. 양계, 양돈, 농한기의 부업 당장 부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노라면 기독교 가정도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분수에 넘치는 엉뚱한 모험은 그만둬라! 그래서 내 갈 길이 이렇게 막히는 게 아닌가?’ 나는 날마다 이런 미해결의 ‘싸이클’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했다. 이건 ‘광야의 시험’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꿈도 생시도 아닌 일종의 Vision 상태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큰 호랑이가 내 뒤에서 앞발을 내 어깨에 걸고 나를 뒤로 잡아 당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다’, ‘네 떠나는 건 하나님 뜻이다!’ 그 순간 호랑이는 어디론가 물러가고 나는 ‘비전’에서 깨어났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버님 함자가 범호자, 빛날병(虎炳) 씨니까 ‘범’은 아버님이었다고 해몽해 봤다. 막내 아들을 뺏기고 싶지 않은 아버님의 집념이 이 ‘비전’에서 인상화(印象化) 했던 것이 아닐까? 아버님 관계에서의 내 심층 심리가 이런 ‘싸인’으로 부각됐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장마비 개듯 맑았다. 더 우물쭈물 할 것도 없었다. 하나님이 보시는대로 간다는 신념이 생겼다.

밤이 지나자, 비도 개고, 물결도 가라앉고, 작은 굽도리 배도 들어왔다. 그 때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 해서 일본 가는데는 증명서니 뭐니는 없었다. 하관(下寬)에서 곧장 기차를 탔다. 동경역에 내릴 때 내 주머니에는 오원 오십전 밖에 없었다.

달리 갈데가 있을리 없다. 나는 ‘시부야’행 전차를 타고 ‘아오야마’(靑山) 육정목에서 내려 청산학원 신학부 기숙사에 갔다. 그때 졸업반에 있던 송창근 형 방문을 두들겼다. 송형은 깜짝 놀란다. 아무 예고도 없이 빈손 들고 뛰어들었으니 놀랄만도 했다. 거지 같은 양복에 넥타이 맬 줄도 몰라, 노끈 매듯 졸라매고, 손가방 하나도 없고, 이부자리도 없고, 돈이라곤 오원 오십전 송형이 당황했을 것은 짐작이 간다.

“오면 언제 온다고 기별이라도 하잖고.”

그리고서는 곧 그의 재치있는 맑은 표정이 된다. “어쨌든 잘 왔소! 뭐 되겠지, 기숙사 규칙은 아니지만 당분간 이 방에 같이 있고, 이부자리는 금년 봄에 졸업하고 귀국한 분이 두고 간게 있으니 그걸 쓰고, 식사는 내 손님으로 기숙사 식당에서 먹고 그러면서 얼마 지내 봅시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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