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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21) 서울 3년 – 김영구의 죽음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8 16:22
조회
1104

[범용기] (21) 서울 3년 – 김영구의 죽음

내가 쫓겨난 하숙집에 경흥읍 교회 장학생으로 서울 유학온 김영구(金永九) 군이 한 방에 같이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두 살 아래였지만 믿음과 인품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라 그는 고향으로 가고 나 혼자 있다가 이 봉변을 당한 것이다.

방학이 끝나고 그는 돌아왔다. 그 동안에 내가 당한 일을 알고 그가 갖고 온 학비를 몽땅 털어 주인집에 내고 내 이부자리를 도루 찾았다. 그리고 종로 3가의 하숙으로 같이 옮겼다. 일종의 속량(贖良)이었다.

나는 여비 생기는 대로 일본 간다고 맘먹었다. ‘장도빈 선생이 한달치 20원만 주셨어도 고베쯤까지는 갈 수 있을텐데!’하고 혼자 궁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장선생에게서 돈 나올 가망은 없었다.

새 하숙집에서는 제각기 독상 받는 팔자였으니 배고픈 신세는 면한 셈이었다. 김영구 군이 미열이 나며 시름시름 앓는다. 감기겠지 하며 학교에는 억지로 나간다. 갔다 와서는 와들와들 떨면서 앓는다. 나는 그때, 사람이 아프면 얼마나 아픈지, 또 얼마나 아프면 죽는건지 도무지 철부지였다. ‘감기’라니 감긴가 싶어 패독산 몇첩 지어다 먹인 정도다. 그는 점점 더 앓는다. 한의도 다음에는 오지 않는다. 진맥도 화제도 거부한다. ‘의전’병원 무료진단실에 갔다. ‘모르못도’처럼 학생들 실습용으로 실컷 시달리다가 ‘의전’교수겸 내과과장인 일본인 의사의 강평시간까지 견디어냈다. “장질부사인데 너무 늦었다!”, “전염병이나 하숙집에 도루 보낼 수가 없고 돈이 없으면 순화병원에 보내겠다”고 선고한다.

그 당시 순화병원은 ‘사망대기소’란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딱 잡아 뗐다. “이 병원 안 전염병실에 입원시켜 달라, 입원료는 문제없다”고 장담했다. 그래서 전염병동 제8호에 들어갔다. 고향 유학생 친구들에게서 있는대로 거둬 입원료는 너끈히 물었다. 무시로 심부름 할 중년 일본부인도 고용했다. 나는 식사 때 하숙에 들릴 뿐, 낮과 밤을 병상 옆에서 지냈다. 내 딴에는 성경 읽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위로하노라고 밤낮 아흐랫동안 그리했다. 아루에 두 세 번 의사가 다녀간다. 주사하고 약 주고서는 별 말이 없다. 양력 세말이 왔다. 모두 설 쇤다고 의사가 안온다. 병은 갑작스레 더 한다. ‘긴급’이라고 떼를 썼더니 저녁쯤해서 의사 한 사람 들렸다. 그는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부른다. “극상했자 사흘 넘기기 어려울테니 본집에 전보하여 가족이 오게 하는게 좋겠소!”, “장이 여러군데 구멍이 나서 복막염도 심하고……”, “어쩌면 오늘 밤에라도……”했다.

나는 나와 같이 있는 오촌조카에게 말하고 고향친구들과 그가 다니던 학교당국과 그의 같은 반 학우들에게 급보를 전했다. 밤 늦게 고향친구들이 십여명 모였다. ‘영구’는 혼수상태에서 담이 오르고, 숨을 몰아 쉬며 최후의 순간을 싸우고 있었다. 그와 우리와의 사이는 이미 단절되었다. 나는 둘러 선 친구들에게 “우리 최후의 기도를 올립시다!”했다. 믿는 친구, 안 믿는 친구, 모두 숙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구가 눈을 뜨고 정신차려 또박또박 말을 하는 것이었다.

“왜들 이렇게 모였소?”

“기도 드리려는 참이오!”

“아직 기도할 시간이 덜 됐는데……어쨌든, 그럼 기도합시다”하고서 그는 기도를 시작한다. 나는 지금도 그 기도를 잊을 수 없다.

“주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무살 될 때까지 주님이 길러 주셨는데 아무 한 일도 없이 주님 앞에 가기가 죄송합니다. 제가 떠난 후에도 주님, 경흥 본 교회를 축복하시고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모든 친구들 인도하옵소서. 제가 다니던 학교 선생님들 학생들 축복하시고 여기 둘러선 사랑하는 친구들 위로 하옵소서. 저를 치료해 주시던 의사님, 간호원, 심부름 들어주던 일본부인 모두 주님께서 친히 복 내려 주옵소서……”했다. 그리고서 “저는 이제 갑니다. 주님 용서하고 불러 줍소서”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구원은 주님 공로로 받는 것이고 일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오. 주님만 믿고 딴 생각 마시오”, “남긴 일들은 내가 대신 최선을 다해 볼테니 상심 말으오”하기도 했다. 그런 말이 얼마나 무서운 책임일 것을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하두 딱해서 얼껼에 나온 말일 뿐이다. 그는 헛소리처럼, “이렇게 자꾸 올라가면 어떻게요! 예! 반가와요”하며 웃음이 활짝 피는 것이었다. 그것이 혼수상태에서 하는 소리였음은 물론이다. 어쨌든 그 동안 약 오분 – 그리고 마감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자정 바로 넘어서였다. 나는 이것을 아름다운 내세의 진입(進入)이라고 느꼈다.

승동교회 김영구(金永耈) 목사님이 시체실 앞뜰에서 간단한 영결예배를 보아주셨다. “나는 부활이요 진리요 생명이니……”하는 구절을 본문으로 하여 영원한 생명을 말씀해 주셨다.

전염병은 ‘매장불허’란다. ‘홍제동’에서 한가닭 연기로 갔다. 이튿날 나는 작은 함에 든 유골을 안고 왔다. 얼마 안 되는 뼈 조각이 재에 섞여 있었다. 두려움도 위신도 품긴데 없는 한 줌 재, 놋화로의 나무 탄 재 이상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었다.

뒤늦게 온 그의 형님이 그 한 줌 재를 안고 돌아갔다. 경흥읍 교회에서의 장례식은 성대했단다. 무덤도 덩그러니 크다고 한다. 오랜 후일에 나는 무덤 앞에 낙엽송 두 그루를 심었다. 듣는대로는 아름들이 거목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스무살 되는 설날에 돌아갔다.

김영구 군의 최후는 나를 타계적인 신앙에로 휩쓸었다. 세상이란 이렇게 허무하다. 죽음 앞에 무엇이 남느냐? 한줌 재 아니면 흙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믿느냐? 그것은 죽음의 저쪽에 약속된, 영원한 천상세계를 얻기 위함이다. ‘그 약속만 확실하다면 그것으로 만사는 해결이다’하는 심경이었다. 종로 네거리 가고 오는 인간들이 ‘산송장’의 꿈틀거림처럼 보였다.

위에서 잠깐 비췄지만 그때 내 오촌조카 희용(熙鎔, 백부님 손자)도 나와 같은 하숙에 있었기에 이 일을 같이 당했다. 그러나 화장터에서 같이 돌아온 그는 하숙집 문에 들어서자 울었다. “불쌍한 영구 스무살 꽃시절에 떨어져 타 버렸다니!”하고 넉두리까지 섞어가며 목놓아 운다. “하늘 영광에 참여했는데……”하는 내 말은 그에게 전혀 Real하지 않은 모양이어서 대꾸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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