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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37) 동경 3년 – 독서회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7 15:27
조회
669

[범용기] (37) 동경 3년 – 독서회

나의 청산학원 재학시대는 세계제일차대전 직후여서 민주평화의 분위기가 홍수처럼 넘치는 시절이었다.

‘군부는 부잣집 개’라고 공석에서 창피를 퍼 붓는다. ‘오자끼 유끼오’ 대의원은 ‘히비야 공원’에서 연설하면서 군부는 천황폐하 도포 자락 속에 둥지 튼 쥐새끼들 이라고 욕설했다. 나도 청중의 하나로 직접 들었다.

학원은 거의 절대자유여서 그야말로 ‘백화쟁발’이었다. 기독교 학생들의 노방전도대, 캠퍼스내 전도대가 거리와 교정을 부산하게 하는가 하면 좌익 학생들의 사회주의 선전도 요란했다. ‘메이데이’에는 수십만 명 노동자들이 적기(赤旗)를 휘날리며 시내를 행진한다. 그들은 “비겁한 자, 가려거든 가거라 우리는 적기를 지킨다”는 적기가를 외치면서 동경천지를 온통 빨갛게 칠할 기세였다.

청산학원 영문과 고등사범과 신학과 등의 학생들 중에도 ‘좌경’이 아니면 ‘바보’라는 그룹이 있었다. 그때 ‘독서회’란 이름의 학생 모임이 있었다. 그들은 유명한 대학교수를 한 번에 한 분씩 초청하여 사회주의 강연을 듣고 학생 자신들의 독서 보고도 했다. 토의도 활발했다. 수는 십여 명 밖에 안 됐지만 제딴에는 머리 좋은 학생으로 자부하는 그룹이었다.

하루는 그 그룹 학생 중 몇 사람이 나를 자기들 모임에 동반했다. 나는 멋도 모르고 같이 갔다. ‘가와가미’(川上肇), ‘후꾸다’(福田) 등의 저서를 꼬치꼬치 검토하고 있었다. 그날에는 동경제국대학 교수란 분이 강의했다. 나는 그 후에도 이 모임에 계속 출석했다. 강연자는 일고 교수, 와세다 교수 등이 매번 교체된다.

얼마 지나서 그들은 나에게 입회를 권한다. 나는 내 입장이 ‘크리스천’이란 것을 고칠 생각은 없고 사회관심은 있지만 예수의 제자로서의 신앙적, 신학적 의무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순수한 마르크스 레닌에서부터 시작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니만큼 금후에도 방청을 하고 싶지만 멤버로서의 Personal Commitment는 약속하기 어렵다고 해뒀다. 그들은 더 말이 없었고 나는 그 다음부터 나가지 않았다.

신학생 중에서도 교실에서 터놓고 공산주의를 선전하며 종교 무용론, 아편론을 강의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대체로 들은체만체였고 문제삼지 않았다. 나와 특별히 가까이 굴던 ‘이노우에’(井上)도 좌측이었다.

그럭저럭 1학기가 지나고 가을이 다시 왔을 때, 그 학생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학기말에 학교 당국에서 모두 제적해 버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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