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34) 동경 3년 – 황폐한 옛집
[범용기] (34) 동경 3년 – 황폐한 옛집
나는 스쿨톤 선교사 일행과 함께 ‘아오지’에서 마감 강연을 하고 이튿날에는 그들과 작별, ‘창꼴집’에 왔다. 부모님, 형님 내외분, 조카 넷, 아내, 다 거기서 산다.
그 동안에 이 평화롭던 농촌은 황폐를 넘어 몰락 도중에 있었다. ‘아오지 탄광’이 티어 수 천명 광부가 득실대고 거기 따라 술집, 여관, 하숙집 등등이 벌판을 메꿨다. 자동차가 두메산골까지 드나든다. ‘창꼴집’도 황폐했다. 뒷산에 울창하던 가둑나무 숲은 탄광갱목으로 도매끔에 넘어가 빤빤하다.
앞 언덕 송림들도 없어졌다. 숲 잃은 야산은 거지같이 초라했다. 우리집 ‘수호목’인 아름들이 가둑나무도 옆 가지를 다 짤리고 거꾸로 세운 ‘몽당비’가 됐다. 아랫동네는 더욱 비참했다. 땅 속 석탄 파낸 자리는 허전하게 빈 동굴이다. 샘물이 모두 그리로 빠져 우물에는 물이 없다. 집들은 가라앉은 토대와 함께 찌그러진다.
농사꾼들도 들떠서 일이 손에 붙지 않는다. 농구를 버리고 탄광에 간다. 알콜을 강짜로 마시고 죽는 사람도 생긴다. 술중독에 작부들 홀림에, 촌사람 혼이 빠져버린다.
그래도 탄광교회란 것이 생겼다기에 같이 예배에 참석해 봤다. 순회전도사 한 분이 한 달에 한 두 번 들린다고 했다. ‘적은 무리’가 여기도 있어 은혜가 싹튼다.
나는 얼마동안 ‘창꼴집’에 있었다. 신아산서 임신됐던 첫난이 ‘큰 딸애’를 처음 봤다. 세 살이다. 서울 금호동서 살던 민섭 엄마다. ‘할아버지’께서 ‘선계’(仙桂)라 이름지으셨는데 후에 내가 정자(正慈)로 고쳤다. 예쁜 애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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