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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48) 미국 3년 – 방학이란 ‘뿔랭크’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9 10:08
조회
968

[범용기] (48) 미국 3년 – 방학이란 ‘뿔랭크’

5월 초에 ‘프린스톤’도 졸업식이 있고 곧 방학이 됐다. 방학은 무자비하다. 식당도, 기숙사도 그 날로 폐문했다. 인정 사정 없는 ‘추방’이다.

프린스톤 재학중인 어느 미국 학생이 나를 롱아일랜드 YMCA 총무에게 소개하여 거기 캐피테리아에서 일하도록 했다. 나는 그리로 갔다. YMCA 총무는 중년부인으로서 친절했다. 일꾼들은 모두 흑인인데 ‘베커리’(빵, 과자, 케익 등 굽는 부문)만 백인이었다. 나는 ‘베이커’에 배속됐다. 일이래야 잔심부름 정도다. 먹기는 거기서 먹지만 숙소는 YMCA 지붕 밑 방먼지 구덩이, 헌 침대 위였다. 그래도 돈은 내야 했다. 한주일 십육불이 총 수입인데 팔자 사나운 축임에 틀림없다. 한달을 지냈다.

어느날, 그때 뉴욕에 와 있던 송창근 형에게서 전보가 왔다. 곧 뉴욕 오라는 것이다. 나는 불문곡직하고 총무에게 고만둔다고 했다. 총무는 상상밖에 일 잘하기에 얼마 승급시키려던 참인데 섭섭하다면서 돈 얼마를 더 붙여 준다. 기차로 뉴욕역에, 그리고 택시로 ‘리버사이트’ 한인회관까지 갔다. 비내리는 밤이었다.

각처에서 모여든 한국학생들로 회관은 초만원, 나는 만우(晩雨, 송창근 형 아호, 이제부터는 ‘만우’로 통일하겠다)의 ‘씽글베드’에 끼어 잤다. 이튿날 만우 형과 함께 한인 경영 직업소개소에 갔다.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이튿날 또 갔다. 마찬가지였다. 왜 저렇게 냉정하나 했더니, 한인학생, 특히 초년생들은 모처럼 부탁된 자리에 보내도 며칠 안에 쫓겨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숙련공부터 소개한다고 했다.

그 무렵,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일본인과 인사만 해도 친일파 의혹을 받는 판이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만우와 나는 일본인 경영 직업소개소에 갔다. 친절했다. ‘키친보이’ 자리가 하나 있다는 것이다. ‘페이’도 먹고 자고 한달에 백불이면 좋은 편이니 가 보라는 것이었다. 롱아일랜드 피서지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자기 주택에서 주부가 친히 고급요리사로 있는 고장이라고 한다.

그 부인은 몹시 ‘크랭키’한 모양이어서 지금까지 여러 번 여러 사람 소개했었지만 며칠 안돼서 싸우고 나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꾹 참고 일만 잘하면 돼잖겠어요? 돈 보고 일하지, 사람 보고 일하나요?” 하며 권한다.

나는 가겠다고 했다. 그럼 자기가 미리 전화 해 둔다고 했다.

그 날로 떠나 늦게사 목적지에 갔다. 간판은 Tarm으로 돼 있었다.

해변가에서 큰 ‘레스토랑’을 경영하다가 실패하고 여기 들어와 재출발하는 거란다.

주부겸 요리사인 주인 마나님은 오십대의 뚱뚱한 스위즈랜드 부인이었다. 평생 ‘쿡’으로 살아온 분이라 요리솜씬 고급이고 또 손님들의 칭찬을 받고 있었다. 그의 남편은 미국화한 일본인으로서 본 성명이 무언지는 몰라도 ‘Tory’로 통했다. 일본말도 제대로였지만 영어는 미국인 그대로다. 대학에 다니다 말았다던 것 같다.

마나님은 나에게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다. 얼마 있다고 했다. YMCA에서의 경력을 두고 한 말이다. 마나님은 아주 누그러진 표정으로 “경험이 없어도 좋다. 누군 첨부터 경험이 있어서 하는 건가? 염려말고 일해라!”한다. 후에 안 이야기지만, 그 마나님은 자기 신경질 때문에 조수가 붙어 있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단다. 조수 없으면 괴로운 건 자기라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오는 ‘키친뽀이’는 어떤 ‘멍텅구리’더라도 잘 구슬러둬야겠다고 맘먹었던 무렵이었다. 못난이에게도 이런 행운이 있어서 살게 되는 거라 생각했다.

내 할 일은 일찍 일어나 키친 마루닦는 것과 아침식사 준비와 요리사 심부름, 접시닦이와 치우기 등등이다.

외딴 고급음식점이라서 뉴욕 월스추릿 부자들, 유명한 배우들, 때로는 신혼부부들이 치우 드나드는 고장이기에 키친마루도 백색향나무 그대로를 썼다. 칠하면 야(野)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기름이 안 떨어질 수는 없고, 떨어지는 대로 그 기름은 배여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일찍 일어나 그 마루가 기름자국 하나 없이 말끔한 백색향목 그대로 되게 닦아야 했다. 마나님은 저녁녘에 그 방법을 손수 배워줬다. 처음에 물로 닦고, 다음에 비누물로 솔질하고 그걸 훔치고 냉수를 끼어 얹어 씻어내고, 물을 훔치고 마른 걸레로 물기 없을 때까지 닦는 것이었다.

할 것 같아서 알았다 했지만 이튿날 아침 그대로 하려니 되지 않는다. 마나님이 늦잠자고 내려 왔을 때, 부엌 바닥은 물천지였다.

그래도 마나님은 ‘크랭키’하지 않았다. “네가 정말 경험이 없구나”하고 자기 손으로 너끈히 다 해버렸다. 2-3일 후에는 나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손님이 한꺼번에 수십명 닥치면 부엌은 전쟁터다. 가령 한패거리가 네 사람이 제각기 딴 음식 주문하는 경우면 더욱 격전(激戰)이다. ‘웨이터’는 빨리 되기를 바란다. ‘써부’가 늦으면 ‘팁’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에 불타는 가스 네ㆍ다섯을 한꺼번에 열어놓고 그 앞에서 종일 쫓기며 미디움, 웰떤, 레야에 함께 신경을 곤두세우노라면 아무리 느렁탱이라도 ‘크랭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프라이팬’을 내 던지고 내게 분풀이다. 나는 잠시 후에 그걸 도루 집어다 준다. 하긴 요리에 드는 갖가지 재료를 미리 알고 그것들이 냉장고 어느 문, 어느 구석에 있다는 것도 알아 가져오라는 대로 ‘척척’ 한다면 얼마나 수월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나는 재료 이름도 귀에 익지 않고 어디 있는지도 몰라 하나 찾는데 냉장고 문을 두세번 열었다 닫았다 했으니 꼴 사나왔을 것은 사실이다. 하여튼 주문대로 다 만들어 내고 손님이 요리사를 칭찬했다는 ‘웨이터’의 전언도 듣고 하면, 속이 다 풀려 정상이 된다. 그 때에는 내게도 ‘쏘리’했다고 사과한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헌법에 금주조항이 들어 있었다. 어디서나 술 기척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집에서는 음성적으로 술도 팔고 있었다. 술 조리하는 Bar에는 수십종의 유명한 술들이 각국에서 밀수되 놓여 있다. 경찰서장, 판검사 배심원, 국회의원 할 것 없이 모두 떼거리로 와서 술을 마신다. 말단 순사들은 부엌에 들어와 한잔 얻어먹고 간다. 금주열심당으로서 사설 경찰권을 갖고 있는 ‘Dry Agency’가 때로는 이런 데를 급습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습격계획을 순사들이 미리 정탐해 알린다. 그리고 술 현품이 옮겨 놓은 걸 알면서도 옆집을 수색할 권한이 없다. 그래서 사실상 ‘금주법’은 금주도 못하면서 국민의 준법정신만 흐리게 하는 역효과를 냈다. 술 밀수작업은 깡패부대를 강화했고 술 수출로 캐나다만 돈벌게 됐다. 공해에 뜬 유람선에서는 또 별천지 광경이, 전개된다.

내 생각에도 금주법은 어떤 형식으로든 개선되야 하겠다고 봤다.

나는 통닭에서 고기만 갉아내는 기술을 배워 얼마 후에는 제법 숙련공이 됐다. 접시 ‘씻기’는 기술이랄 것도 없지만 접시 ‘닦이’는 보통 솜씨가 아니게 됐다.

한 철 지나 해수욕 손님도 뜸해지고 부엌일도 한산해졌다. 주인은 두 ‘에이카’나 되는 잔디밭을 맡았지만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원래 정원이 아니라 쑥밭이었다. 그는 짧은 낫으로 키들이 풀 숲을 한줌씩 자른다. 더운 날 하루종일 정강이 걸음했자 열평도 못 짜른다. 한 주일 낑낑댄 다음에는 자른 풀이 그 만큼 자라 도루묵이다. 어느 하루는 손님이 없어, 부엌이 완전 휴업이었다. 그는 내게 풀깎이 도움을 청했다. 한달에 이십불 더 준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 직업소개소에서 백불 약속으로 왔었는데 그건 주인 몰래 마나님이 그렇게 한 모양이었다.

‘부임’(?)한 날 저녁, 주인 녀석이 내게 월급은 얼마 받겠느냐 묻기에 ‘백불 약속 안했냐?’ 했더니 ‘키친보이에게 백불 주는 데가 어디 있느냐?’고 덜렁댄다. 그리고서 팔십불 주마 한다. 나는 가만 있었다. 주인이 나간 다음에 ‘마나님’이 내게 와서 귓속말로 ‘내가 주인 몰래 이십불 더 줄테니 가지 말아요!’했다.

그런 사연으로 나는 첨부터 백불씩 받아왔는데 그는 팔십불씩만 받는 줄 아는 모양이다.

나는 농갓집에서 자라 낫쓰는 법에 익숙했고, 서서 짜르는 미국식 긴 낫 쓸줄도 알고 있었기에 뻣뻣이 선대로 긴 낫을 휘둘으면 순식간에 수십평이 반반해진다. 이틀 만에 다 해치웠다. 주인은 감탄했다.

다음에는 ‘론모어’로 민다. 미끈한 잔디밭이 됐다. 군데군데 꽃밭도 만들고 길가 철조망 밑에는 넝쿨장미를 심어 가꿨다. 옆집과의 사이에 있는 ‘헷지’도 가지런히 짤라 줬다. 앞뜰 구석진데 밭을 만들어 ‘파아실렛’, ‘파’, ‘고추’, ‘상추’ 등 속을 심어 어느 정도 요리 물자에 보태기도 했다.

이제는 마나님이 아니라 주인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됐다.

떠나려 할 때, 마나님은 ‘네가 내 아들로 입적할 생각 없니?’하고 생퉁 같은 문의를 한다. 나는 ‘내 아버지, 내 어머니 계신데 그 무슨 그 따위 소리냐’ 싶어 속으로 불쾌하게 반발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하고 딱 잡아뗐다. 그이들은 후손없는 부부여서 외롭기도 했지만 재산상속자도 갖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떠나는 날 마나님은 ‘썬데이 쭈레싱’이라면서 의복도 사다 준다. 여비도 줬다. 주인은 자기 차로 멀리 뉴져지까지 태워다 주고 ‘내년에 또 오라’면서 정답게 작별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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