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북구 인수봉로 159
02-2125-0162
changgong@hs.ac.kr

장공의 글

[범용기] (44) 미국 3년 – 태평양 열나흘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8 18:44
조회
697

[범용기] (44) 미국 3년 – 태평양 열나흘

태평양 건널 여비가 됐으니 다음은 또 그 때 볼 셈치고 곧 떠나 동경서 Y의 최승민 총무를 만나고 ‘요꼬하마’에서 미국 ‘딸라기선회사’ 『프레지던트 맥킨레』호를 탔다. ‘요꼬하마’ 부두에는 최승만 한 분이 나오셨다. 약대가 울리고 배가 움직인다. 가는 손, 보내는 손에 쥐었던 인역의 오색 ‘테프’가 끊어지고 낯들도 아물아물 보이지 않는다. 아까 하직한 ‘언덕’은 바다 저편에 숨는다. ‘인생’ 일막극이다. 죽어 떠나는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과의 영결같기도 했다. 푸른 바다 - 대양의 물같이 동그란 바다 – 열흘 동안 그 밖에 볼 것 없는 단조의 원색, 제비 떼같이 날다가 떨어지는 ‘비어’(飛魚)의 집단 그러나 대양의 한점 『육지』(배)에서도 인간 비극은 끈덕지다. 집단 징집(?) 돼 가는 필립핀 노동자들에게 전염성 뇌염이 퍼졌다. 하루에도 몇 사람씩 『미지의 세계로』 ‘이민’ 간다. 배 고동이 울리고 ‘엔진’이 멈춰지고 서장과 신부가 갑판 뒷꽁무니에 나섰다. 인부가 거적대기로 덮은 시체를 가져온다. 신부의 간단한 주문, 그리고 시체는 바다에 던져진다. 배 고동이 울리고 배는 간다. 그 시간이 길어야 3분(?) 무던히 짧은 장례식이다. 아마도 이 ‘수장’(水葬)은 순식간에 ‘어복장’(魚腹葬)으로 될 것이다.

열흘 만에 ‘하와이’에 닿았다. 태평양은 진짜 ‘태평’의 바다였다. 열흘이 하루같이 조용만 했다. 한국 사람은 나 하나뿐, 선실 책임자는 한 사람을 위해 ‘코레앤’ 캐빈을 따로 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면 어쩌라는 거냐고 물었더니 필리피노실, 차이니스실, 째패니스실 셋 중에 하나 골라 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서 다시, 참고로 말한다면서, 필리피노는 떠들고 차이니스는 마짱노름 때문에 잘 수가 없으니 아마도 재패니스실이 나을 것 같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일본인은 약 50명 있었다. 선창 밑바닥에 짐처럼 실려 있다. 모두 일시 귀국했다가 재입국하는 노동자였다. 내가 프린스톤 가는 학생이라니까 모두 놀라는 모양, “에라이데스나!”(훌륭하십니다), “이분은 장차 푸로페서 될 분이시다!”하기도 한다. 말이 통하니 심심찮았다. 모두 전에 직장에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직장 주인에게 영어로 부탁편지를 써 달라는 것이었다. ‘프로페서’ 별명까지 얻어 놓고서 그만한 편지도 못 쓴달 수 없고 그래서 엉터리 영어편지를 부탁대로 다 써주었다. 그들은 ‘하와이’에서 모두 일시 상륙이 허락됐다. 그러나 나는 상륙 못한다는 것이다. Y총무라고 들은 민○○ 씨에게 미리 연락했었는데 딴 분이 배에 찾아왔다. 한국 학생을 찾기에 만났다. 왜 연락을 안했느냐?고 나무람 쪼다. 민○○ 씨에게 연락했다니까 갑자기 불쾌한 안색, “그런 사람에게 연락했으니 될게 뭐냐?”는 것이었다. 나는 ‘하하 무슨 파벌 실갱이구나!’ 생각하여 더 말하지 않았다. 그도 선장을 찾아 나의 일시 상륙을 교섭했지만 잘 안된다고 했다. 얼마 이야기하다 내려갔다. 상항에는 백일규 씨에게 연락했다.

일시 상륙했던 일본 노동자들이 사간맞춰 다시 배에 올랐다. 혼자 내려서 미안하다면서 바나나, 망고, 파인에플 등등을 제각기 사들고 와서 나를 위로한다.

하와이를 떠나 나흘 만에 상항에 닿았다. 백일규 선생이 배에 올라 기다리고 계셨다. 프린스톤까지 갈 여비를 갖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50불 정도 남았습니다”고 했다. “무모한 일을 했군!”하시고서 “그 돈을 내게 주고 이민관이 묻거든 ‘얼백’에게 내줬다고만 하시오” 한다. 그리했다. 나는 상륙하는 줄 알았었는데 똑딱선에 태워 ‘천사도’라는 고도에 실어간다.

전체 966
번호제목작성자작성일추천조회
공지사항
[귀국이후] (1) 머리말 - 범용기 속편
장공 | 2019.02.14 | 추천 0 | 조회 8721
장공2019.02.1408721
공지사항
[범용기 제6권] (1601) 첫머리에
장공 | 2018.10.29 | 추천 0 | 조회 9215
장공2018.10.2909215
공지사항
[범용기 제5권] (1)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설날과 그 언저리
장공 | 2018.10.01 | 추천 0 | 조회 8803
장공2018.10.0108803
공지사항
[범용기 제4권] (1) 序章 - 글을 쓴다는 것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9414
장공2018.04.1609414
공지사항
[범용기 제3권] (1) 머리말
장공 | 2017.10.10 | 추천 0 | 조회 9834
장공2017.10.1009834
공지사항
[범용기 제2권] (1) 머리말
장공 | 2017.08.02 | 추천 0 | 조회 9733
장공2017.08.0209733
공지사항
[범용기 제1권] (1) 첫머리
changgong | 2017.06.26 | 추천 0 | 조회 11039
changgong2017.06.26011039
49
[범용기] (49) 미국 3년 – 웨스턴의 초년
장공 | 2017.07.21 | 추천 0 | 조회 609
장공2017.07.210609
48
[범용기] (48) 미국 3년 – 방학이란 ‘뿔랭크’
장공 | 2017.07.19 | 추천 0 | 조회 967
장공2017.07.190967
47
[범용기] (47) 미국 3년 – 프린스톤 초년
장공 | 2017.07.19 | 추천 0 | 조회 876
장공2017.07.190876
46
[범용기] (46) 미국 3년 – 상륙과 대륙횡단
장공 | 2017.07.18 | 추천 0 | 조회 745
장공2017.07.180745
45
[범용기] (45) 미국 3년 – 천사도
장공 | 2017.07.18 | 추천 0 | 조회 676
장공2017.07.180676
44
[범용기] (44) 미국 3년 – 태평양 열나흘
장공 | 2017.07.18 | 추천 0 | 조회 697
장공2017.07.180697
43
[범용기] (43) 미국 3년 – 여비는?
장공 | 2017.07.18 | 추천 0 | 조회 700
장공2017.07.180700
42
[범용기] (42) 미국 3년 – 미국행 여권 나오고
장공 | 2017.07.18 | 추천 0 | 조회 651
장공2017.07.180651
41
[범용기] (41) 동경 3년 – 김영구 목사 가시다
장공 | 2017.07.17 | 추천 0 | 조회 806
장공2017.07.170806
40
[범용기] (40) 동경 3년 – 한국 학생들
장공 | 2017.07.17 | 추천 0 | 조회 693
장공2017.07.170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