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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41) 동경 3년 – 김영구 목사 가시다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7 17:39
조회
806

[범용기] (41) 동경 3년 – 김영구 목사 가시다

김영구 목사님도 선교사들의 추천으로 ‘센프란시스코 신학교’에 가시도록 돼 있었지만 건강진단 관계로 여권발급이 여의치 않았다. 십이지장충 구제(驅除)가 힘들어 세 번이나 구충약을 자시고 설사를 하고 하셨는데도 검사에 다시 걸리곤 하셨다.

어느 수요일 밤, 나는 숭동 예배당에 갔다. 김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다. 본문은 요한복음 14:1~3이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배하러 간다….” 그는 해석설교를 하시면서 “나는 가족이나 자녀나 여러분에게 아무 유산도 남기지 못합니다. 예수만 믿으시면 그이가 여러분의 유산이고, 내 유산입니다. 나는 내 자녀에게도 이 그리스도 신앙 밖에 남길 것이 없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뭔가 유언 같은 설교라고 느꼈다. 문간에서 이일이 인사하며 내 손도 잡고 반겨 주셨다. 얼굴이 몹시 창백해 보였다. 그는 원래 빈혈이었는데 십이지장충 때문에 더 쇠약해 진 것이다.

나는 피어선 기숙사로 가고 그는 사택으로 드셨다.

이튿날 아침 식당에 앉자마자 ‘김영구 목사님 세상 떠나셨다’는 부음이 왔다. 나는 정신없이 달려 갔다. 어젯밤 사택 객실에서 혼자 주무셨는데 아침 늦게도 소식이 없어 사모님이 문을 여셨는데 그는 주무시는 그대로 가셨더라는 것이다. 빈혈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영구 목사님은 경기 출신으로 젊었을 때에는 탁지부 주사로 계시다가 한말 애국지사들, 특히 이동휘 선생의 영향으로 북만주에 가셨다. 이동휘 선생이 시베리아로 넘어가실 때 김영구 씨도 같이 가려고 따라섰었지만 이동휘 선생은 허락하지 않았단다.

“너는 신학 공부하고 목사가 되라.”

그래서 그는 귀국의 길을 걸었다. 남만주로 나와 남만 철도로 서울에 간다. 그는 먼 후일에 이런 말을 내게 했다. “기차 안에서 내 일생의 환상을 봤는데 그대로 돼 가고 있다.”

“그 환상을 저희들에게도 공개하실 수 없을까요?”하고 나는 어린애가 옛말 조르듯이 살짝 졸랐다.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야!”하고 그는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는 그후 일본의 신호신학교를 졸업하시고 고창고보에서 교편을 잡으시다가 서울 숭동교회 초청으로 서울 목회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의 설교는 젊은 학생에게 참신하고 건실한 신앙을 자라게 해 줬다. 그러나 목회는 몹시 괴로우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신비경험을 진주같이 간직한 지성인이었다. 생활은 청빈하여 세상 떠난 날, 사모님은 무일푼의 절량(絶糧)을 숨기고 계셨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특별한 기대를 걸고 계셨다.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실 때에는 반드시 내게 추고(推稿)를 부탁하셨다.

그 때 큰 따님이 십육세 정도가 아니었던가 싶다. 언제가 그는 “자네 내 사위될 생각 없나?”하고 느닷없이 물으셨다. “저는 벌써 결혼 했는걸요!”하자 그는 “허허 어른이신데 실례했군!”하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셨다. 나는 그를 평생 존경하는 선배로 모신다.

그의 큰 아드님이 그 때 다섯 살쯤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니 그후 사모님 고생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큰 따님의 남편 되시는 분이 무던해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정성껏 돌봤고 과수원도 마련하고 했단다. 큰 아드님도 효성이 지극하다. 그는 대성중고등학교 경리과에서 일하노라면서 이십여년 후에 느닷없이 내 집에까지 찾아와서 자기를 소개했다.

내가 김영구 목사님의 부음을 듣고서 그 때 『진생』이던가 하는 월간지에 ‘고 김영구 목사님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글을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큰 아드님은 어디서 그 묵은 잡지를 찾았는지 그걸 ‘가보’처럼 간직하고 있노라 했다.

큰 아드님은 아버님 묘소를 연희공동묘지에서 자기집 과수원 가운데 모시고 비석도 세우고 살아계신 아버님 모시듯 하노라고 한다. 나도 한 번 성묘하러 간다면서 끝내 못 간대로 해외에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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