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61) 돌아와 보니 – 평화공존(?)
[범용기] (61) 돌아와 보니 – 평화공존(?)
아버님은 한번 이런 제안을 하셨다.
“이제부터는 ‘교’(敎-宗敎)에 대해서는 서로 말하지 않기로 하자. 부자유친(父子有親)만으로도 ‘친’할 수는 있을께 아니냐?”
말하자면 자연인 관계에서 ‘평화’를 유지하자는 말씀인 것 같았다.
요샛말로 ‘평화공존’(平和共存)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거듭나기’(重生) 이전 상태로 돌아간 ‘평화’를 약속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늙은 아버님의 고충을 생각해서라도 ‘끝까지 싸워봅시다’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더 좋은 것이 제일 좋은 것의 원수’라는 말을 기억하고 혼자 탄식했다. 사실 아버님께도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만한 좋은 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것이 올 때 완전치 못한 것이 가야 한다는 발전적인 ‘비극’이 발전 없는 비극으로 남는 ‘비극’이 슬프다는 말이다.
“어디 그렇게 힘써 보겠습니다”하고 나는 타협했다.
유교 윤리를 샤머니즘의 형태로 종교화한 상제(喪祭) 행사에도 나는 사실 담담하게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위(神位)나 묘실(廟室)에 ‘절’하는 행동만은 차마 할 수 없었다.
큰집에서는 5대조까지 봉제사(奉祭祀)해야 했다. 그래서 걸핏하면 제일(祭日)이다. 그 밖에 윗 어른들의 생신, 환갑 등등 ‘군일’이 너무 많았다. ‘군일’이란 ‘쓸데없는 일’이란 뜻일 것이다. 이런 ‘군일’이 하두 잦아서 아낙네들에게는 이 ‘군일’이 ‘큰일’이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예수교의 관혼상제 간소화, 제사 폐기 등등은 고요한 혁명이었고 ‘해방’이었다.
그러나 이런 ‘점잖은’ 유교제전과 예의를 미개민족의 ‘우상숭배’로만 보고 도매금으로 ‘까베지’화 했다는 초대 선교사들의 처사도 칭찬할 것은 못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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