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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73) 평양 3년 – 평양의 삼장로 인상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25 17:02
조회
633

[범용기] (73) 평양 3년 – 평양의 삼장로 인상

조선민족의 장로 적어도 서도(西道)의 원로라고 할 수 있는 세 분 조만식, 김동원, 오윤선은 자못 인상적이었다.

조만식 선생은 입술에 맞추어 윗수염을 가위질하고 턱수염을 아래턱에 맞추어 반타원형으로 다듬었다. 이목구비가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균형잡힌 미남이었다. 연령은 오십대에서 육십.

그는 말총모자, 무릎을 가릴락말락하게 짧은 토목 두루마기, 명주나 토목바지 저고리에 고무신 그래서 그는 한국의 ‘깐디’로 알려졌다.

아무리 일제 강점기라 해도 한인사회가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니만큼 한인 단체나 모임에서는 언제나 그가 영도자, 대변자로 추대된다. 즉석연설에 간결 웅건(雄健)하다고 할까 선동적이지 아니하면서도 감명깊고 인상적이었다. 일인들도 함부로 손대지 못해서 경원(敬遠)으로 일관하는 것 같았다.

그는 ‘영웅’되기에는 너무 조촐했다. 그러나 모든 ‘영웅적’인 일이 그의 참여를 필요로 했다. 그의 인격적 ‘후광’(後光)이 그들의 ‘은신처’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그가 원리원칙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어지러움이 비교적 쉽게 풀린다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사(志士)였다. 그의 바른 뜻과 굳은 절개가 그의 모습을 돋우워준다.

하루는 그의 동연배 친구들이 그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청류벽 근처 어느 식당에 초대했다. 그들은 병풍을 두르고 ‘선생’을 상좌에 앉혔다.

그리고 한 분이 제안했단다. “‘고당’(古堂, 그의 아호)은 뜻(志)이 비단(羅)같은 분이니 오늘 우리 ‘지라’(志羅)라는 새 아호를 드리기로 합시다” 했다. 모두 박수로 찬성한다. 조선생도 흐뭇해졌다. 오윤선, 김동원이였지, 어쨌든 두분 유명한 장로님이 좌석에 배석했다.

오윤선 장로였던가가 빙그레 웃으며 ‘성’은 뺄 수도 고칠 수도 없으니 ‘성’까지 붙여 부릅시다 했다. “좋소” 그래서 ‘지라’에 ‘조’를 씨워 모두가 ‘제창’했다. 조선생은 “에이 못된 것들!”하고서 자기 옆에 배석한 두 분 장로님을 가리키며 내가 그렇다면 이 두분은 무언고? 해서 모두 이길뻔 하다가 졌다고 혀를 찼다는 일화도 있다. 이것은 내가 평양을 떠난 몇해 후에 들은 이야기이다.

김동원 장로는 진짜 정치인이요 권력과 정치의 불가분적 관계를 체득한 분이다. 경제적으로도 그는 부유층에 속했다. 문학 예술 종교 등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의 이복동생인 작가 김동인(金東仁)도 어느 정도 멸시 또는 소외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고 들었다.

‘동인’은 동원 장로 저택 가까이 작은 한옥에 살고 있었다.

‘동인’을 낳아 기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호상소는 동원 장로 저택이요 상자는 물론 동원, 동인이다. 그런데 동인은 상복 입고 자기집 좁은 마루에 혼자 걸터 앉아 있었다.

만우와 나는 두 집에 다 문상갔다.

동인의 말

“윗집은 잔치집이고 여기는 상가요.”

오윤선 장로는 세분 원로 중에서 최연장자로 ‘큰집’ 구실을 조히 하고 있었다. 안도산 선생도 출감하자 그 댁에 유했었고 음으로 양으로 지사들의 물주 노릇을 맡아했다. ‘은율’엔가 큰 밤숲도 갖고 있어서 가을 밤 익을 때면 교회 관계, 학교 관계, 사회문화 관계 인사 수십 명과 그의 가족들을 그리로 초청하여 거대한 ‘밤주이’ 원유회도 해마다 어김없이 열렸다. 밤밭 속 가을의 향연은 ‘큰집’다운 행사였다. 그리고 거기 있는 그의 별장에서 진짜 잔치가 푸짐하게 차려진다. 돌아올 때에는 은율밤 자루가 어깨에 무겁다. 모두 오장로님의 선물이다. 삼원로의 밀회처소도 언제나 오장로님 저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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