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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85) 간도 3년 – 얼마남은 중국인 체취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26 10:58
조회
525

[범용기] (85) 간도 3년 – 얼마남은 중국인 체취

‘용정’은 온전히 한국인 도시어서 만주랄 수도 중국이랄 수도 없다. 콩기름 짜는 중국공장이 한두 군데 있고 중국인 끼리의 물산주 비슷한 집이 몇채 시중에 있을 뿐이다. 물론 중국음식점은 어디나 있는 방식대로 있다. 돼지 치고, 채소 가꾸고, 음식만드는 기술은 한국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드문드문 중국인 호농(豪農)의 저택이 무슨 고적(古蹟)같이 지나간 역사의 자취를 속삭인다.

합방 이래 일본 정부는 일본인을 한국에 이식시키기 위해 동양 척식회사를 시켜 토지를 겸병(兼倂)하고 빈농의 소작권을 박탈했다. 당장 갈데없는 그들은 바가지 몇 개 차고 어린 것들을 업고 지고 두만강을 건넌다. 건너서도 무작정이다. 그때의 만주는 중국의 ‘동삼성’이어서 우리에게는 온전히 외국이다. 우리 유랑민은 중국인 대지주 집을 찾아간다. 품팔이 농군이든 소작인이든 시키는대로 하고 보자는 것이다. 우선 곡식 몇말이라도 꾸어야 한다. 꾸어먹은 곡식은 추수 때 곱으로 갚으란다. 당장 굶은 식구 앞에서 선택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한국 빈농의 ‘지팡살이’에는 출구가 없다. 뼈빠지게 일해도 느는 건 빚 뿐이다. 빚 못갚아 아내를 떼우기도 했단다.

지금도 드문드문 남아있는 중국 농가란 그때의 세도 지주 그루터기다. 그러나 일제하의 만주국에서는 머리칼 짤린 ‘삼손’이랄까 그들은 ‘만주벌판’이란 초록색 바다에 고도(孤島) 같이 외로운 성채로 남아 있다.

이민족의 포위망 속에 갇혀 자체 안에서 자족하며 생존하는 ‘남은 백성’이 되었다.

일본 세력 이전에는 한국인이 그 토호(土豪)들 집앞을 지나려면 ‘호개’라는 이름의 견군(犬群)에게 숱한 욕을 보아야 했다. ‘호개’란 종류의 개는 송아지만큼 큰 어떤 놈은 큰곰같은 맹견들이다. 말하자면 그 ‘성채’의 파수꾼이다. 소리없이 지나가는 손님에게 대여섯 마리씩 앞ㆍ뒤ㆍ옆으로 덤벼든다. 어떤 놈은 손님 어깨 위로 뛰어넘는다. 의복 찢기고 종아리 물리고 해도 주인이란 작자는 구경꺼리라고 히죽거린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미리 돌맹이를 수십개 전대에 넣어 가지고 가다가 개들이 덤벼들 때 한두개씩 잽싸게 던진다. 그러면 그걸 물려고 쫓아간 동안에 멀찌감치 가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통치가 시작되자 사람에게 위험한 개는 가차없이 쏘아죽인다고 경고해서 그 영악하던 ‘호개’들도 벙어리 바보가 되었다고 한다. 속담같은 실화다.

그러나 이 ‘농장’이란 배갑(背甲) 속에 농성하는 ‘거북’(龜)족속의 맘속에서도 ‘대국인’(大國人) 의식을 씻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일인들이 까불고 조선인들이 그 손발노릇 한다해도 ‘어디보자’, ‘마만디’로 대하는 것이다. 제도와 이념이 변하고 심지어는 통치권까지 바뀐다 하더라도 중국인의 ‘대국인’ 의식은 그대로 있어 ‘대국’으로 존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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