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82) 간도 3년 – 간도로
[범용기] (82) 간도 3년 – 간도로
그때 아내는 만삭이었다.
하기 휴가도 끝날 무렵 하루는 숭전 교장으로 혼자 남아 있는 ‘마우리’ 선교사가 몸소 내 집에 찾아왔다. ‘마우리’ 박사는 한국 선교사 중에서 단 한 사람 웨스턴 출신 내 동창이었다. 그래서 좀 다른 데가 있었다. 선교사들이 다 귀국했는데도 혼자 끝까지 남아 있었다. ‘숭전’이 그대로 있는 동안 자기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취직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다.
왠 영문이냐구 따졌더니 북간도 용정 은진중학교 교장에게서 교목 겸 성경교사 한 사람 추천해 달라는 편지가 왔다는 것이었다. 너를 추천해도 좋으냐 한다. “좋다”고 대답했더니 그럼 당장 떠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비는 자담이란다. 산정째 교회에서 작별 정표라고 얼마 보내왔다. 부산 있는 ‘만우’ 형에게 통지하고 약속한 날짜에 서울서 만나기로 했다. 경흥 ‘창꼴집’까지 갈 차표는 샀다. 서울서 여관에 들 돈은 없다. 그래서 남대문교회 김영주 목사에게 하루밤 유숙을 청해 두었다. 그는 고향 친구로서 스가 스쿨톤 선교사 서기로 있을 때 순회강연도 같이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목사는 정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여관갈 돈도 없고해서 덮어놓고 정거장 뒤 ‘합동’에 있는 그의 사택으로 갔다. 식모가 나와 코딱지만한 행랑방을 보이면서 여기서 여섯식구 자라는 것이었다. 호떡 몇 개 사다가 아이들을 먹이고 끼어 앉아 밤을 새웠다. 김목사는 그때 부흥회에 들떠 안채에서 통성기도로 철야하는 중이라 했다. “은혜 위에 은혜를, 은혜 위에 은혜를” 이것이 밤새도록 반복하는 단 한마디 ‘쎄리프’였다.
김목사는 종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부인도 나오지 않는다. ‘부흥도상인사절’(復興途上人事絶)이랄까. 아무튼 철저한 신령파가 된 것 같았다. 우리가 온 것을 ‘마귀 유혹’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밤 깊어서 식모가 밥을 한 상 차려내왔다. 우리는 이튿날 새벽같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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