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99) 간도 3년 – 용정서 서울에
[범용기] (99) 간도 3년 – 용정서 서울에
비오는 날 나는 고무장화에 우장까지 하고 혼자 집을 떠나 서울을 향했다. 행정(行程)의 자세한 기록은 한신대 학보에 발표한 바 있기에 여기서는 약한다. 서울서는 서대문 밖 성기슭 언덕바지에 있는 작은 여인숙 ‘서안여관’에 하숙을 정했다.
주인 마나님은 평안도 분이며 혼자난 중년 여성으로서 지성인이었고 여학교에 다니는 딸을 뒷바라지 하고 있었다.
나는 김대현 장로님 둘째 자제인 김영환 씨와 그의 형님인 김영철 장로를 만나 인사했고 천식증 때문에 성북동 송림속 별장에서 요양중인 김대현 장로님도 뵈었다.
내 하숙비와 잡비 그리고 용정에 있는 가족들 생활비 모두 무작정이다.
김영환 씨가 한달에 80원씩 담당했다. 그는 법학사 약학사의 두 칭호를 갖고 있으면서도 취직은 질색이었고 혜화동 ‘로타리’ 자기집 아래층에 제약소와 약방을 차려놓고 거기서 소일하는 것이었다.
그는 몸집도 큰 축이고 신수가 좋고 미상불 잘난 사나이었다. 농담도 잘했다. 그의 호탕한 웃음은 노염 푸는 봄바람이랄까 맺혔던 맺혔던 가슴이 풀어진다.
용정의 아내는 학생 셋인가를 하숙시켜 그걸로 살아간다고 했다. 학생이래야 내가 가르치던 ‘은진’ 제자들이어서 ‘하숙’이라기 보다도 ‘사모님’을 모신다는 데 주 목적이 있었다. 그 학생들이란 안병무, 김기주, 훨씬 아래반인 회령의 최동렵이었다. 남자가 아쉬운 거친 일들을 발벗고 나서서 도왔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집에 보낼 돈으로 낡은 양복 한 벌 사 입었다. 다 떨어진 국방복 만으로는 대인관계에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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