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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95) 간도 3년 – 수학여행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27 19:22
조회
711

[범용기] (95) 간도 3년 – 수학여행

은진학교 제2년 나는 졸업반을 인솔하고 만주일대 수학여행을 떠났다. 전택렬 씨가 사진사로 동반했다.

‘길림-무순-공주령-부여-시녕-할빈-목단강-동경성-용정’ 이런 코스로 다녔다. 이제 몇 가지 점경(點景)과 인상만을 추려보기로 한다.

‘길림’은 아름다운 도시 한국의 평양이나 부여를 연상케 한다. ‘남산’은 모란봉이고, ‘송화강’은 대동강이고 집들도 고유문화의 혼을 지니고 있다. 기족(旗族) 마을이 있다고 들었으나 가 보지 못했다. 가 보았자 모두 한족화해서 별거 없다고들 한다.

‘무순’은 일본이 파먹은 만주땅의 상흔(傷痕), 노천굴(露天掘)은 지심(地心)을 파먹은 서족(鼠族)의 짐네지움, 화학무기 공장들은 땅 속의 두더지 소굴, 미국 주택가를 흉내낸 일본인 사원들 마을, ‘페이브’한 보도와 큰 길, 그러나 무심한 길손에게도 ‘모조품’으로 드러난다.

‘공주령’은 일본 세력에서 생긴 ‘버섯’

‘부여’는 고구려 유민(遺民)이 뻐티고 살아 오늘에 이르렀다는 ‘족보’의 낭만 토성(土城) 아닌 석축성(石築城)이 우리 조상의 유물이라 손으로 만지고 뺨으로 쓸어보고 바빠도 고려족 마을에 들러보자 했으나 들렀자 중국인과 다른 것 없다는 이야기.

‘신경’은 만주국 수도 불쌍한 강희(康熙)의 ‘궁궐’이란 이름의 감옥, 남만 철도회사가 정부요 그 밖의 것들은 군벌의 꼭두각시요, 가면(假面) 장춘(長春)의 옛 구역과 신경의 새 구역, 자동차 아니면 걸어야 하는 포장 현대 도로 걷다가 지쳐 자동차 타자고 조르는 학생들. “나는 걷는다” 하고 앞서 걷는다. 시무룩한 피곤한 얼굴들의 맥없는 부대.

‘할빈’ 서양내음 품기는 러시아 거리.

영국인 경영의 현대식 백화점, 다다미 백장 깔린 일본 선전실. 도물시장(盜物市場)이라는 ‘쇼톨’거리, 거기서 자질구레한 선물들을 샀다.

무엇보다도 할빈에서는 송화강이 인상적이다. 바다같이 넓다. 거기서 잡은 고기가 강가에 놓여 있다. 연어나 대구보다 훨씬 더 큰 얼룩진 놈이다. 나는 보트를 세내 갖고 강 복판쯤에 있는 섬까지 갔다왔다. 한강에서 단 하루 보트 저어본 솜씨를 송화강에서 과시한 셈이다.

‘목단강’ 할빈에서 목단강까지 넓은 영역을 줄달음쳤다. 봉천에서 신경 할빈까지도 끝없는 곡식바다다. 이 기름진 벌판을 내놓고 삼천리 반도 산꼴로 기어든 우리 조상들이 원망스러웠다.

만경 곡식바다 하늘가에 물결치니 물려주신 선영기업 훌륭도 하옵건만
어찌다 다 팔아먹고 반도산골 기어든고

발해 왕국은 큰 나라였다. 온종일 기차로 달리는데 간데마다 발해의 통치센터였던 서울(京)들이 이름을 남기고 있다.

목단강에는 내 신아산 시절의 친구인 김낙현이 동양여관이란 거대한 여관을 경영하고 있어서 거기서 유숙했다. 그의 초대로 학생 수십명이 잘 먹고 잘 자고 돈 안내고 호강했다.

나는 그와 함께 배타고 호수에 피서했다. 학생들은 자유해방이다. 김낙현은 사오십만평의 농토도 갖고 있었다. 가축들도 많았다. 이틀 있고 떠났다.

‘동경성’은 가장 인상적이다. 마침 서울서 이주한 역사가 한분이 우리를 자원 안내했다. 남대문이 남아 있다. 온전히 우리 양식의 문루다. 맷돌 다드밋돌, 신라양식의 우물, 우리 무늬의 기와 쪼각들 모두 동족의 정서를 품고 있다. 일본인들이 밤이면 트럭을 대고 무언가 무수히 실어갔다고 거기 사람들이 일러준다. 팔월 한가윗날 밤에 ‘거란’(契丹) 백성들이 월병 속에 궐기 통문(蹶起通文)을 넣어 비밀연락의 발각을 면하고 일제봉기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발해’가 손들었단다.

우리는 유명한 산상호(山上湖)인 ‘경박호’ 구경을 가려했으나 비적출몰의 위험지대라고 일본 헌병대가 못가게 한다.

직접 용정에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꿈 같기만 하다. 더군다나 이제는 우리에게 ‘금단의 나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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