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105) 조선신학원 발족 – 아버님 별세
[범용기] (105) 조선신학원 발족 – 아버님 별세
전보가 이틀이나 늦었고 기차에서 내가 정신없이 종착역을 지내쳐 웅기까지 갔다가 북행차를 되잡아 탔기 때문에 만 하루를 쓸데없이 차 안에서 보냈다. 그래서 ‘창꼴집’에서는 나를 기다리다 못해 예정대로 그날 아침에 장례식을 마치고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먼 친척들은 모두 흩어졌던 것이다.
나는 뒷동산 아버님 묘소 앞에 엎드려 사죄(謝罪)했다.
아버님도 용서해 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Smith란 사람이 쓴 life hereafter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아버님이 다음 세상에서 더 자유롭게, 더 넓게, 더 많이 ‘생명’을 깨달으시고 거기서 더 바른 ‘제2의’ 선택을 하셨으리라고 느꼈다.
아버님은 1864년(甲子) (음) 2월 24일에 나셔서 1940년(庚辰) (음) 2월 12일에 별세하셨다. 향년 77세시다.
그는 한말 급변하는 정황속에서 ‘위정척사’(衛正斥邪) 편에 서 계셨지만 차츰 ‘개화’(開化)의 영향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개화운동의 전선에서 일하시던 백부(柱炳 씨)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후일에는 단발까지 하셨다. 시흥(詩興)이 샘같이 솟아 하찮은 범용사(凡庸事)도 시의 후광(後光)으로 빛나게 하셨다.
그는 거대한 체구에 머리가 유난히 둥글고 크셨다. 기억력이 비상하셨고 최후까지 감퇴되지 않으셨다. 치아는 온전하셔서 한 대의 낙치(絡齒)도 없으셨다.
나는 어머님 떠나신 후로는 명절이나 세시(歲時) 또는 휴가 동안에 반드시 근친(覲親)했다.
아버님은 ‘혜원’을 귀여워 하시면서도 내게 일러주셨다. “자식 사랑에도 절도(節度)가 있어야 한다. ‘편애’는 삼가는 것이 좋으니라, 다른 아이들이 원망하기 쉽다. 혜원이만 갖구 그리셨지 우리야 무슨… 이렇게 되면 화목에 금이 가기 쉬우니라…” 하셨다.
우리 형님은 미상불 효자였다. 불철주야 아버님을 간호하셨다. 한약도 지어오곤 했지만 아버님은 절대로 잡수지지 않으셨다고 형님은 원망스레 말한다. 아버님은 그의 마감날을 예감하셨고 그 날을 기다리고 계셨다 한다. 그래서 약도 의사도 거부하셨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위정척사’의 각도에서 모든 것을 보셨기 때문에 ‘무부무군’(無父無君)의 ‘금수’(禽獸)라는 양이(洋夷)의 종교에 ‘미혹된’ 둘째 아들에게는 임종(臨終)마저 기대하지 않으신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님이 저 세상에 가셔서는 모든 것을 알아 주시리라 믿으며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허망한 기대라고 생각지 않는다. 묘 앞에서라도 실컷 울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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