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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111) 조선신학원 발족 – 뚝섬에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31 16:03
조회
931

[범용기] (111) 조선신학원 발족 – 뚝섬에서

뚝섬에 옮겨살다.

전농정에서 1년 지냈는데 집 ‘모게지’ 물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집값이 조금 올라서 판면 모게지 물고도 다소 여유가 생긴다는 계산이 선다. 그래서 팔고 뚝섬의 좀더 크고 칸수도 많은 집으로 바꾸기로 했다. ‘전철’이 있어서 교통도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부랴부랴 뚝섬으로 이사했다.

뚝섬에서

뚝섬의 겨울은 추웠다. 강바람 산바람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워낙 불길이 들지 않는 데다가 땔나무도 없었다. 방 자체가 ‘알라스카’였다. 전쟁말기라, 살림꼴은 엉망이었다.

콩죽

식량 배급도 있으나마나였다. 기름짜고 남은 콩찌거기(두병)를 만주에서 실어다가 기계로 얇게 잘라 대패밥같이 된 걸 신문지 봉투에 한줌씩 넣어준다. 그리고 통밀과 눌른 보리를 하루 한 사람에게 이홉오작씩 준다. 이것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한참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몰래 콩 한가마 살 수 있었다. 아내는 동대문 시장에서 멧돌을 사다가 그 콩을 갈아서 매끼 콩죽 한 공기씩 보급한다.

막내조카 남용(南鏞)도 같이 있으면서 중동학교에 다녔다. 서울에 유학하는 친척 아이들이 하숙에서 못견디면 우선 뚝섬으로 찾아온다. 어떤 때에는 날마다 식구 열사람 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그 중에는 심한 폐결핵 환자도 있었다. 없는 식량에 콩죽 한그릇씩도 쉽지 않았다. 얼음장같은 방바닥이라 애기자리 펼데가 없다. 그래서 아내는 뒷잔등에 애기를 업고 있다. 젖먹일 때에는 앞으로 돌리면 된다. 젖은 왼종일 빨고 있다. 아내는 그래도 젖이 얼마 나오는 줄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인즉 젖은 말랐다. ‘하용’이 갖다주는 ‘모리나가’ 분유로 겨우 생존한 것이다. 하루는 엄마 잔등에 업힌 애기가 눈을 못뜨고 머리도 가누지 못한다. 울지도 못한다. 나는 옛날 어머니가 ‘창꼴집’에서 미음 쑤시던 것을 생각했다. 아내는 내 말대로 쌀을 씻어 앉히고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그 물을 떠낸다. 젖같이 보인다. 거기에 설탕을 넣어 숟가락으로 애기 입에 떠넣으면 좋아라고 받아 먹는다. 애기는 당장에 기운차렸다. 고마운 일이다.

큰 아이들은 그런대로 견디는 것 같았다. 경용이가 다섯 살이었다. 여름 더운 때, 한강에 멱감으로 데리고 가면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그때 한강은 깨끗했고 좀더 올라가면 수심이 골고루 얕은 데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위험한 일도 없었다. 은용은 배고픈 줄도 모르고 좋아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배고파 하는 걸 차마 볼 수 없었던지 자기는 거의 굶어지내는 것 같았다. 한 숟가락이라도 아이들에게 더 먹여주고 보면 자기 몫은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나는 여기 국그릇 같은 접시를 한 ‘타아스’ 사다가 아내 것까지 꼭 같은 분량을 담아서 내가 직접 배급했다. 그래도 별 수는 없었다.

하루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아내는 누워 있었다.

밭에서 배추뿌리를 뽑아다 끓여먹고 배탈났다는 것이다.

가정교회

일본 군벌 독재정치가 그대로 존속한다면 ‘교회는’ 결국 없어지고 말 것 같았다. 가령 있다셈치더라도 교회란 이름의 정부기관이요 ‘교회’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가정 안에 보존하고자 생각했다. 가장(家長)이 목사고 식구들이 교인이고, 집이 예배당이고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저녁 예배하고 헌금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돌아가며 기도도하고 했다. 그럴려면 가정으로서의 전통도 이에 ‘토착화’ 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족보’도 더듬었다. 그리고 그 유규한 흐름이 지금의 우리 가정교회에 흘러들었다는 신학(?)을 기초로 가훈(家訓)을 만들었다. 그것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치고 조카들에게도 보내고 그때 중국 서주(徐州) 무슨 은행인가 근무하고 있던 재종 동생 재한(在翰)에게도 보냈다. 히틀러도 유대인 가정에 심겨진 유대교를 뿌리뽑을 수는 없었다는 발상에서였다.

뚝섬에서 아이들은 계속 시내로 통학했다. 나도 물론 같은 신세다.

몇 십분에 하나씩 다니는, 큰 마차만큼이나한 기동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뚝섬은 인분냄새로 유명한 채소밭구역이다. 그래서 기동차 안은 파리로 초만원이다. 천정, 벽유리창 할 것 없이 새까맣다. 사람이 돌아서면 떠들썩 난리난다. 낯이고 뒤통수고 마구 덤빈다. 앉을 자리도 없어 나는 서서 간다. 그래도 모서리에 기대서 가벼운 책을 읽는다. 그때만해도 눈에는 자신이 있어서 흔들리면서도 얼마든지 초점을 맞추어갈 수 있었다.

그건 ‘일’이 아니라 ‘소일’(消日)이었다.

그때 신자는 풍문여고에, 혜원은 동덕 소학교에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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