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제2권] (5) 해방직전 “일제”의 발악상 – 조선신학원 문 닫고
[범용기 제2권] (5) 해방직전 “일제”의 발악상 – 조선신학원 문 닫고
조선신학원으로서는 이사장과 학장이 혁신교단으로 갔고, ‘조선신학원’이란 간판은 감리교신학교와 함께 혁신교단 신학교로 개칭된 셈이다. 조선신학원은 없어진 것이다. 나는 설립자에게 사직서를 내고 뚝섬 내 집에 농성하고 있었다. 사직 이유는 이렇게 밝혔다.
“나는 조선신학원 설립자와 이사장의 초빙으로 교수직에 있었는데 이제 조선신학원이 없어졌으니 내 직책도 없어졌기에 사임서를 보낸다.”
이런 소문이 평양신학교에 전해졌다. 그때 평양신학교장은 채필근이었고 교무는 청산학원 후배인 김덕준이었다. 하루는 김덕준이 뚝섬 내 집에 찾아왔다. 나를 ‘평신’ 교수로 초빙한다는 공문서와 생활비라면서 금일봉을 내놓는다. 봉급도 조선신학원의 배나 되는 액수였다.
나는 정색하고 말았다.
“나는 신학을 상품으로 매매하는 신학장사치가 아니요, 내 일용할 양식은 하느님이 주실 것이니 그런 걱정은 말고 이 돈 봉투들은 도루 갖고 가시오!”
그는 무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창이자 성격이 개방적이어서 기분좋게 얘기하다 갔다.
어느날 밤에 졸업반 학생들이 찾아 왔다.
“우리는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위해 왔고 선생님도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오신 것 아닙니까. 교회 정치꾼들이 ‘조선신학원’이란 간판을 갖고가든 말든 그게 무슨 큰일입니까? 나와서 가르쳐만 주십시오”한다. 서정태가 주동자인 것 같다.
“학원의 법적 책임자는 설립자니까 설립자에게 말해 보시오”하고 돌려보냈다.
이사장의 만나자는 통지가 왔다. 설립자는 김영철 장로고 이사장은 함태영 목사님이었다.
나는 혜화동 김영철 장로 댁에 갔다.
‘조선신학원’을 재건하자는 것이었다.
혁신교단에 간 전필순, 윤인구는 조선신학원 이사회록을 갖고 갔기에 그들은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했다.
이사회에서는 결원된 이사를 보선했다. 일본인 ‘무라기시’(村岸淸彦) 목사와 경성제대 법학부의 원로 교수자 일본기독교 정통교회 현직 장로인 ‘하나무라’(花村美樹)를 이사로 보선했다. 당국관계를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사회에서는 나를 학원장으로 선정하고 학원 장소는 정동 ‘무라기시’ 목사의 교회당을 쓰기로 했다.
나는 승낙했다. 그리고 전필순과 윤인구에 대한 통고문을 초안했다.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조선신학원을 다시 시작한다. 당신들에 대한 우리의 문은 열려 있다. 돌아와 같이 일하자. 그러나 이달 ○○날까지 아무 회신이 없을 경우에는 우리와 당신들과의 관계는 단절된 것으로 알겠다…….”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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