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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2권] (4) 해방직전 “일제”의 발악상 – 혁신교단과 전필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02 11:02
조회
3575

[범용기 제2권] (4) 해방직전 “일제”의 발악상 – 혁신교단과 전필순

그 무렵에 일본에서는 일본 기독교 각교파가 ‘일본 기독교단’으로 통합되었다.

총독부 당국에서는 조선의 각 기독교파를 통합하여 ‘조선 기독교단’으로 단일화하고 다음에는 일본 기독교단과 연합하여 ‘내선일체’를 실현하려는 방침이었다.

이 당국의 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나선 분들이 전필순 일파였다. 그들은 우선 신학교부터 통합하려 한 것이었다.

그 당시 감리교 총회 총무는 이동욱이었는데 그는 전필순의 심복이었고 그 밖에도 감리교에 동조자가 많았기에 그는 감리교에 깊이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다. ‘혁신교단’이란 이름의 운동이다. 이것은 조선 기독교 각 교파의 체질을 황도정신으로 개선하고 ‘혁신교단’이란 단일기구 안에서 호국종교의 사명을 다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발기총회에서 전필순은 창설통리로 추대되었다. 그는 감리교를 혁신교단에로 흡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장로교만 가입시킨다면 ‘통일천하’의 ‘진시왕’이 된다고 믿었다. 총독부가 밀어주기로 됐으니 순풍에 돛단 셈이다.

그는 감리교 신학교에 본부를 두고 ‘용상’으로 꾸민 금색찬란한 보좌에 군림했다. 그러나 장로교 총회에서는 비웃다시피 백안시했다. 남도에서의 ‘평양’이라는 대구교회 원로들이 거들어 주지 않는다. 궁지에 빠진 전필순은 자기가 서울노회장이고 조선신학원 이사장이고 윤인구가 이사회 서기라는 전직 등등을 고려하여 서울노회를 소집했다. 서울노회만이라도 혁신교단에 가입시키려고 강요했다. 임석한 형사의 눈이 무서워서 모두 유구무언이었다. 그러나 김영주 만은 결사 반대였다 한다.

응답 없는 회의에서 표결할 도리는 없었다. 점심시간이라 휴회했다. 오후에 속회할 때에는 전필순 지지자만이 모였다. 김영주는 또 거기에 끼어 앉았다. 또 반대했다. 그러나 표결에서 김영주는 외톨이었다. 서울노회를 글고 혁신교단에 들어가 ‘통리’가 된 셈이다.

김영주는 장로총회에 서울노회 재조직을 청원했다. 총회는 청원대로 실시했다.

재조직된 서울노회는 김영주를 노회장으로 선출했다. 김영주는 혁신교단으로 넘어간 목사들을 제명하고 그 위임을 해소시켰다. 전필순의 연동교회에서만은 노회에서 탈퇴하고 전필순을 지켰다.

결국 전필순은 감리교 전체와 장로교의 서울노회 목사 몇 사람을 지지세력으로 혁신교단 통리가 된 것이다.

장로교회는 교인수의 3분의 2가 황평양도에 있다. 그러므로 총회 때마다 서도에서 지배권을 갖는다. 경기 이남은 언제나 말발 안 서는 ‘마이노리티’다.

바른 제안도 압살 당하기 일쑤다. 이제까지 서울지방에는 종교교육부 총무인 정인과가 있어 서북교권의 ‘대사’ 노릇을 했다. 교권주의자인 전필순은 즐겁지 않았다. 일제의 교회탄압이 시작됐다. 서북교계에는 일종의 치명상이었다. 선교사 세력도 갔다. 경기 이남에 교권이 장악될 절호의 기회는 왔다.

교권도 권력이니만큼 권력의 본산인 총독부를 껴야 한다. 그러려면 당국의 방침인 조선 기독교의 일본화, 황도혁신교단 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감리교의 전부와 경기 이남의 장로교를 합하면 이북의 장로교보다 수로도 우세하다. 그 교단의 통리가 되면 조선교회 전체의 교권이 장악된다. 함경도는 경원(敬遠)했다. 교세도 시원치 않았지만 그 사람됨됨이 의지적이어서 ‘후석불이’(厚石不移)의 감이 있다. 그는 맨처음 나에게 “함경도가 무섭다”고 했다.

그러나 통틀어 말한다면 그런 얕은 재간의 패도(覇道)는 오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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