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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2권] (17)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희비 쌍곡선을 팠다.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09 08:48
조회
806

[범용기 제2권] (17)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희비 쌍곡선을 팠다.

해방은 희ㆍ비의 쌍곡선을 우리 민족 전체의 심상에 그려넣었다.

단군, 기자, 위만 등의 ‘조선’은 당분간 제쳐놓고, 신라통일시대부터 치더라도 ‘통일조선’의 역사가 1300여년이 된다.

‘3국시대’라 해도 같은 부여족이 지방을 나눠 ‘나라’를 호칭한 것 뿐이었고 엄격한 의미에서 현대식 독립국가들이라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말하자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하달까. 5호16국이 분립되 있었으나 ‘제후’(諸侯)의 명분을 탈피하지 못한 것이라든지, 일본의 성주(大名 - 다이묘오)들이 자기 지방에서 분봉왕 같이 지냈으나 ‘막부’의 산하에 있었고 막부는 황실의 그늘 아래서 통일일본의 권좌를 지켜온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겠다.

그러다가 ‘신라’가 통일조선을 세웠고 ‘고려’와 ‘이조’가 이를 이어 받았다. 이제는 온전히 ‘인테그레잇’ 되어서 어느 누구도 ‘한반도 단일민족국가’라는 ‘나라격’(Nationship)에 ‘위이감’을 품는 사람이 없다.

사회, 문화, 교육, 종교, 생활양식, 일용품, 관습, 습성 등등에서도 이국적인 아무 인상도 남기지 않는다.

이것이 한두해 얘기가 아니라, 1300여년을 그렇게 지냈다. 그런데 이제와서 무슨 새 단어나 발굴한 것처럼 ‘통일한국’ 또는 ‘통일조선’을 ‘신발명 전매특허품’인양 가두판매점을 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쑥스러워진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방송된 때, 우리는 열광했다.

‘해방’이 됐다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과 이천만 우리 민족 전체가 같은 조건 아래서 꼭 같이 해방된 것으로 알았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니만큼 그 밖에 다른 무엇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그건 ‘지상명령’이고 숨어 흐르던 민족생명의 분출(噴出)이고, 천륜(天倫)과 인륜(人倫)의 당연지사(當然之事)라고 생각한다.

시내는 환호의 인간해일(海溢)이 인간격랑(激浪)으로 뒤집혀 ‘만세’의 산울림이 인간들 귀에 폭풍을 몰아넣는다. 일인들은 토굴속의 두더쥐가 되어 떨고 있었다. 우리의 환희 속에, 갈라진 고국이란, 상상의 변두리 어느 한구석에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로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38선이, 미국과 소련이란 두 ‘강대국’에 의하여 그어졌다. 그리고 동족이 서로 미워하고 총부리를 맞대고 투계(鬪鷄)처럼 눈총을 겨누게 했다.

다시 통일되야 한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아무렇게나 통일되어서는 안되겠고, 아무렇게나 통일될 수도 없다. 세계적인 ‘역사의 태풍’ 속에서 찢어졌으니 ‘통일’도 세계적인 태풍을 겪어야 실현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 정치에 소질없는 범용자(凡庸子)로서는 그 역사의 태풍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알든 모르든, 좋든 궂든, 같이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한 얘기를 적는 것이다.

해방직후 이북의 기독교지도자들이 몇만명 단위로 남하했다. “이남에는 자유가 있다”하는 것이 남하한 이유였다.

목사들은 각지에 흩어진 이북피난교인들을 핵멤버로 교회를 시작한다. 모두 선교사들 주체로 한 평양신학교 출신이었고, 따라서 신학적으로 전투적 근본주의자(Ultra-Fundamentalist)들이었다. 예외가 아주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선교사 숭배자, 또는 추종자가 거의 전부였다. 거기에는 비신학적인 세속적 지방감정, 권력욕, 생활방편 등등의 요소도 섞여 있다. 그들은 그들 중심의 세력권을 형성했고 박형룡의 남하를 계기로 남산신궁터에 ‘평양신학교’ 모형을 이식했다.

그리고 조선신학교에 도전한다.

노골적인 교권쟁탈전이 벌어진다. 해방직후에 돌아온 미국선교사들을 자기들 편에 넣는다.
조선신학교 교수진에서 한경직을 분리시켜 자기들 편에 서게 한다.
평양신학교 동문인 이남 목사들을 흡수한다.
조선신학교에서 김재준을 몰아내고 그 신학교를 점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남의 장로교총회에 정회원으로 가입되야 한다. 그리고 총회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해야 한다 등등.

일제 시대에는 황ㆍ평양도가 3분지 2의 교인을 갖고 있엇고, 따라서 총회총대수도 그런 비례였기 때문에 교권은 언제나 그들 손에 쥐여 있었다. 지금은 그들이 위임맡아 목회하던 이북교회를버리고 이남이 피난했다. 그러나 전에 이북에서 갖고 있던 총회원수는 이남총회에서 그대로 인정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면 정회원석의 절대다수를 점거할 수가 있다.

조선신학교 측에서도 그런 음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총회총대 명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남 노회들 안에도 노회원의 성분이 두 종류로 갈라 등록했다. 학생이 3백여명으로 불었다.

나는 구약개론과 조직신학을 강의했다. 모세5경도 역사비판적으로 해석했고, 창세기도 문서설을 그대로 소개했다. 학생들도 열심히 필기한다. 나는 학생들의 청강하는 태도에 감심했다.

그런데 총회날짜가 가까워오자, 학생들은 자기들이 신임하는 피난목사에게 그 강의 ‘노트’를 제시하며 이것이 소위 ‘신신학’이란 것이 아니냐고 문의한다. ‘성경문자무오설’을 비판없이 받아들인 목사들은 “큰일 났다”고 설레었다 한다.

이 학생들의 연서로 한신학우회 소집을, 그 당시 회장인 문익환에게 제청했다. 학우회가 모였다. 그들은 김재준 교수 배척결의문을 통과시키려 했다. 그러나 여지없이 부결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대구 총회에 직접 호소하기로 하고 ‘노트’를 인용하면서 고소문을 작성하여 총회원들에게 배부할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이에 당황한 송창근 학장은 그래서 지급 전보로 나를 불러 올린 것이었다.

나는 대수롭잖게 느껴졌다. ‘신학’도 ‘학’인데 비판없이 성립되는 ‘학’이 어디 있느냐? 하고 일소에 붙였다.

총회에는 신학교장이 ex-officio로 출석해야 한다. 교회를 위한 교직자 양성의 책임을 맡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총회에 학교의 상황과 사업을 보고해야 한다. 그래서 학장은 대구에 갔다.

학생들은 학장을 빼놓고 직접 총회원에게 접촉했다.

총회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총회로서의 김재준 심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일종의 종교재판소, 다시 말해서 ‘인큐지션’이다.

그런 경우에 교장인 ‘만우’로부터 한마디 항의도 없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 신학교 학생이니만큼 심사하든 처벌하든 내가 책임지고 재량껏 할 것이고 총회에서 직접 개입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해야 할 것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동자동에 그대로 있었다. 각 지방에서 나를 옹호하고 총회 처사에 항의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총회로서의 내게 대한 심사도 지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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