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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2권] (20) ‘한신’ 재단 조성과 만우의 외유 – 거제도 진씨 형제들과 조선신학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10 09:37
조회
995

[범용기 제2권] (20) ‘한신’ 재단 조성과 만우의 외유 – 거제도 진씨 형제들과 조선신학

송창근 원장의 제일차 관심사는 조선신학원을 대학령에 의한 정규대학으로 인가 맡는 일이었다.

미군정 문교부장은 오천석이었다. 우리는 신청서류를 군정청 문교부에 냈다. 곧 인가한다면서 인가는 안준다.

얼마후에 ‘재단법인’이 되야 인가할 수 있다고 했다. 송창근은 일제시대에 부산에서 오랫동안 ‘성빈학사’라는 사회봉사기관을 갖고 있었기에 부산근처에 친구가 많았다. 그는 거제도에서 어업으로 ‘부자’라는 칭호를 가진 진정률 씨 형제들과도 친한 처지였다. 진씨 형제들은 조림(造林)에 극성이었다. 옥포 뒷산은 그들의 소유 임야였다. 그렇게 도벌이 심한 환경 속에서도 깔축없이 나무를 길러 이제는 하늘을 덮는 스구목(杉) 숲으로 만들었다. 도벌하다 잡힌 사람은 진씨 집에 끌려간다.

“그 나무 한그루 한그루는 내가 내아들 같이 사랑하는 것이요, 그 나무를 자르려거든 차라리 내 다리를 자르시오!” 한다.

송창근은 그들 형제를 방문하고 그 임야와 산림을 신학교 기본재산으로 제공하고 재단이사장 직위를 받아들이라고 권했다. 그대로 돼서 기부행위 서유를 구비해 갖고 왔다.

군정이 끝나려는 마감고비에사 오천석 문교부장으로부터 인가서가 나왔다.

대학령에 의한 정규대학으로서 학사, 석사, 박사 등 학위도 수여할 수 있으나, 이름은 ‘조선신학교’로 부르라는 ‘조건부’였다.

그래서 ‘조선신학원’, ‘조선신학교’로 되었다. 이사회가 모여서 송창근의 ‘교장’ 직을 인준했다. 동시에 재단 이사회도 구성되어 진정률 씨가 이사장으로 됐다. 다시 말해서 재단이사회와 운영이사회라는 Bouble Board식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교장실이 꾸며지고 나는 교무실 모새기에 자리 잡았다.

그 무렵에 ‘친일 민족반역자 심사위원회’란 것이 구성되어 김상돈이 책임자로 임명되 있었다. 좌익운동자들도 물론 심사대상이다. 송창근은 그 심사 대상자로 걸려든 것이 아니지만 신경이 과민하게 됐다.

골치 아프다고 ‘노우싱’이란 진정제를 계속 먹고 있었다. 차차 더해가는 것 같았다. 발작적인 증세가 잦게 나타난다.

우리는 그가 한참 쉬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밥존스 대학에서 초청장이 왓다. 그 당시 황성수가 외무부외사과 책임자였기에 일주일도 못되어 여권이 나왔다. 곧 도미했다.

‘밥존스’에서 각과 전문의의 종합진단을 받았다. 심한 고혈압이란 것이었단다.

신학교 학장이래서 학교에서는 특별 우대했다.

피쯔벅의 웨스턴신학교 졸업식에 송창근도 초청되었다. 그도 그 학교 졸업생이기 때문이다. Re-Union연회석에서 Speech부탁이 있었다. 그는 조선 신학의 창설기 고충을 호소했다. 특히 도서관 장서 기부를 청했다. 동창들 중에는 큰 교회 목회자도 많았기에 그 자리에서 각교회 초청 프로그램이 작성되고 기금모집 장서기증 등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 결정되었다. 그는 흥분해서 그날 밤으로 내게 긴 편지를 띄웠다.

그런데 송창근은 그날밤 밥존스 숙소에서 졸도하여 밤중에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옆방 학생이 들어왔을 때 그는 의식을 잃고 마루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응급실에서 의사들이 초조하게 돌아간다. 의식은 회복됐지만, 전신불수가 됐다. 6개월 정양하여 반신불수 정도로 회복됐다. 다음으로는 지팽이 집고 어정어정 걸을 수 있게 됐다. 이제는 귀국정양하래서 6ㆍ25 석달전엔가 배로 귀국했다. 해변가에서 자란 덕분에 배에는 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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