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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2권] (33) 통일에의 갈망(6ㆍ25와 9ㆍ28) - 도농에서 서울에 다시 부산에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16 09:46
조회
567

[범용기 제2권] (33) 통일에의 갈망(6ㆍ25와 9ㆍ28) - 도농에서 서울에 다시 부산에로

강원룡과 그 식구도 도농에 피난해 있었는데 처음에 정거장 건녀편 마을에 방을 얻고 살았다. 그러다가 마감판에 우리 동리에 왔다. 방공호 속에서 찬송하고 예배하며 몹시 초조해 했다.

도농이 해방되던 이튿날 나는 서울로 간다. 강원룡은 아직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면서 만류한다.

나는 떠났다. 길가에는 국군헌병의 검문소가 5리에 하나쯤은 있는 것 같았다.

‘목사’라니까 신임하고 보낸다. 신양섭도 같이 간다. 머리를 박박 깎았기 때문에 인민군으로 의심 까다롭게 묻는다. 나는 우리와 고난을 같이하던 우리 집안 식구니 내가 책임진다고 다짐한다. 그는 해방을 위한 숨은 일꾼이었다고 했다. 무사하게 동대문 밖까지 왔다. “서울이 다 탄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구먼!”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걸었다.

동대문에 들어서자 서울은 없다. 오장동에 갔다. 재와 흙과 기왓조각 벽돌부스러기로 된 벌판이었다. 맏딸애 집이 어느 쯤이었던지 짐작이 안 간다. 나와 아내는 여기쯤일 것이라고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맏딸 ‘정자’가 나타나 “우리 다 살아 있어요!” 한다.

얘기는 이러했다.

“병원은 이층집이었는데 동리 사람들과 함께 병원 지하실에 모여 있었다. 불 혀가 지하실 천정을 훑는다. 정자는 만삭이 지난 몸으로 지하실 들창을 부수고 기어올라, 꼬마 딸 혜림을 끄집어 냈단다. 그리고 동쪽 신작로로 뛰다가 길가 패인데 빠진대로 한참 있었다. 남편 신영희 의사는 부상하고 쓰러진 동민들의 응급치료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자기 집이 타는 것을 보고 뛰어와서 불 속으로 마구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식구들을 건지려는 것이었다. 정자가 소리쳤다. ‘우리 다 나왔으니 이리오라’고.”

그래서 모두 살았다는 것이었다.

원래 ‘오장동’이란데는 일제시대의 ‘하나마찌’(花町)이어서 가난한 농촌 조선 아가씨들을 ‘인육장사’하는 일인들이 사다가 ‘우리’속에 가둬놓고 밖에는 휘황찬란한 전등으로 오색구름 같이 꾸민다. 젊은이들의 ‘울적’을 발산시킬 고장이 거의 없었던 때라, 청년들은 공창가, 사창가를 산보삼아 거닌다. ‘화정’ 변두리에는 ‘색주가’도 많다. ‘북청집’이니 ‘함흥집’이니 하는, ‘광복’ 조각에 쓴 가호(家號)가 너펄거린다. 거기서는 주로 막걸리, 소주, 돼지순대 따위르 ㄹ판다.

그 옆에 있는 호화판 공창가를 지나가노라면 아가씨들이 달려나와 억지로 ‘납치’한다. 술상이 들어온다. 안주도 있다. 얼근해지면 자리에 눕는다. ‘화대’(花代)는 꽤 비싸다. 못내면 그 아가씨의 빚이 된다. 아가씨들은 오래 있을수록 빚이 는다. 그래서 계약기간이 연장된다. 어떤 넉넉한 젊은이가 정이 들어 ‘속량’해 내기 전에는 평생 풀릴 길이 없다.

‘오장동’이란 그런 고장이었다.

‘유엔군’의 주력부대 중 하나는 오장동 뒷산 넘어서 한강을 건너 곧장 오장동에 진입한다. 미군의 응원폭격이 거기에 집중됐다. 주로 소이탄이었다. 삽시간에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불어 잿더미가 됐다. 한 채의 집도 없었다. 나는 다시 소돔ㆍ고모라 얘기를 연상했다.

어쨌든, 신의사와 정자는 불타는 아궁이에서 끄집어낸 ‘타다남은 부지깽이’같이 구원되었다. 만삭된 날짜보다 늦게사 정자는 첫 아들을 낳았다. 지금 한양공대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는 ‘민섭’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도중에 낫대서 내가 ‘민섭’이라 이름했다.

아내와 나는 동자동 우리집에 찾아왔다.

다 부서지다가 부엌과 작은 안방과 6조짜리 거실과 옆에 붙은 길쭉하고 좁은 곳간방이 남았다. 8조 다다미방도 몰골은 남아 있었다. 변소모새기 아름들이 살구나무는 허리가 부리진대로 죽지는 않았다. 정원의 덤부사리 나무는 제멋대로 자라서 담장을 넘었다.

나는 그 살구나무 부러진 차지를 베여 도끼로 장작을 팬다. 장작가리가 뒤뜰 담장 밑에서 날마다 자란다. 그것도 취미였다. 신자가 6조 다다미 방에서, 혜원은 옆 곳간방에서 잔다. 나머지 식구들은 작은 안방에 몰아 넣었다.

도농에 피난 갈 때 마루 밑에 감췄던 책들은 한 절반씩 썩다 남았다. 쓸모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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