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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2권] (32) 통일에의 갈망(6ㆍ25와 9ㆍ28) - 국련군의 서울 탈환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16 09:22
조회
554

[범용기 제2권] (32) 통일에의 갈망(6ㆍ25와 9ㆍ28) - 국련군의 서울 탈환

1950년 9월 2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 기습상륙으로 인민군 대열은 허리가 끊어졌다. 패잔병이 되어 이북에로 도망친다. 그 도망부대에서 탈락된 인민군은 농군의 삼베옷을 얻어입고 빌어먹으며 북향길을 걷는다.

무기 없는 군인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9월 28일에 국련군은 서울을 탈환했다.

그날 밤, 보름달이 유난스레 밝았다.

나는 도농 언덕 능선에 업드려 서울쪽을 바라본다. 작은 산, 큰 산이 가로 세로 엉켜서 서울은 안 보인다. 그러나 서울 하늘은 보인다. 불빛에 하늘이 탄다(火光衡天)는 표현 그대로였다. 온통 불바다였다. 그 타오르는 불바다에 내리꽂히는 불화살이 벼락을 친다. “우르쿵, 쿵쿵” 먼 우레 같이 둔하고 뭉쳐진 음향이다.

‘저 불 속에서 살아남을 인간이 하나라도 있을까’ 싶었다.

나는 소돔ㆍ고모라의 멸망의 날을 연상하며 아브라함의 하소연을 되새겼다.

거의 무감정 상태가 된다. 멍하게, 남의 일 보듯한다. ‘물건너 화재’ 구경이랄까, 큰딸 정자는 남편인 신영희 의사와 함께 오장동에서 산다. 정자는 만삭된 무거운 몸으로서 어떻게 지내나 싶었다.

도농역과 그 건너편 마을에도 미군폭격이 치열했다. 내가 사는 지금리는 역에서 걸어서 15분쯤 거리다. 지금리 주민들은 조금 치벽한 도농 골짜기 빈집에 옮겼다. 그집 주인은 교회 집사였는데 피난가고 집이 비어 있었다. 농가에는 소먹이 마른풀이 집더미처럼 싸여 있다. 거기 몸을 파묻으면 추운줄 모른다. 나는 마른풀더미 위에 누워 미군폭격기 급강하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동민들은 꾀높은 도농 막츠기 언덕을 넘어 저쪽 골짜기에 일시 피신한다면서 나도 같이 가자고 한다. 춘우 아버님이 인솔자였다. 고개마루에까지 올랐다. 목적지인 동리가 눈아래 보인다. 춘우 아버님이 혼자 가서 정탐하고 온다.

그의 보고는 실망적이었다. “거기에는 진짜 빨갱이 집이 네 호나 있어서 위험천만”이란 것이었다. 우리는 도루 오다가 어느 농가에서 밤을 샜다. 늦은 가을밤, 냉골이라 밤새도록 소금만 구웠다.

들리는 것은 기관총소리 뿐이다.

“제거 인민군 기관총일까, 국군 기관총일까?”

아침 일찍 나는 어린 식구들을 올망졸망 데리고 춘우네 집으로 간다. 총탄이 하늘 공중을 제비처럼 날아간다.

춘우 삼촌과 춘우 두분이서 깊숙하게 파놓은 방공호에 들어가서 밖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방공호는 출입구에도 덮개가 있고 안에는 기둥세우고 판자로 벽을 두르고 멍석도 깔고 두세집 식구가 앉아도 그리 비좁지 않게 되있었다. 밥은 숱불로 익힌다. 연기 나면 당장 표가 나기 때문이다.

춘우 삼촌은 딴 동네인 자기집에 나갔다가 파편에 맞아 엉덩뼈가 부서졌다.

그 다음날에던가 도농도 해방됐다. 그동안 신양섭은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정거장 옆 언덕 능선을 왔다갔다하는 병정이 보인다. 저게 국군일까 인민군일까. 신양섭은 “제가 가 보고 오겠습니다”하고 논두렁을 타고 그리고 간다. 곧 돌아왔다.

“미군이었습니다. 어제밤에 도농인민군은 다 도망하고 국군이 점령했답니다. 밤새도록 나던 기관총 소리는 국군의 기관총이었답니다.”

도농에 진주한 국군은 곧장 도농막치기 고개너머에 있는 마을을 포격하여 그 동네는 전멸됐다고 한다. 우리가 피난 가려던 바로 그 고장이다.

결국 도농도 완전 해방됐다. ‘부역자 처단’이란 새 문제가 등장한다.

나와 내 식구들에게 자기 집 문깐방을 제공하고 신변을 보호해 준 이학우 군은 ‘동책’으로, 이북시찰까지 갔다온 청년이니, ‘부역자’란 딱지가 붙을만도 했다.

그는 안절부절 몸 둘데를 몰라 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그를 보호해야 할 처지였다. 나는 우선 집에 숨어 있으라 했다. 마루 밑에 숨겼다. 며칠 지나 그는 몸부림친다.

“여기서 부역자로 죽을 바에는 차라리 이북 가서 ‘빨갱이’로 살겠다. 나는 간다”하고 옷을 갈아 입고 나선다.

나는 그를 부여잡고 늘어진다.

“이북에까지 갈 수도 없을 것이고 설사 간다셈치더라도 남에 내려갔던 네 큰형 춘우와 지리산에 출전한 네 둘째 형 창우가 돌아온 다음에 의논해 할 것이다. 그때까지 참아라. 그리고 그때까지의 네 신변은 내가 책임진다….”

그래서 겨우 부잡아 놓았다.

나는 동민들의 진술서랄까 증언이랄까를 초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학우는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가난한 집 자식도 아니다. 맏형은 ‘리더스다이제스트’ 한국판 책임자고 둘째형은 지리산토벌대장인 국군헌병 소령이다. 그런 가운데서 부모와 식구들과 가산을 지키려면 물샐틈없는 위장전술이 필요했다.
그는 동네에 위험한 일이 생길성 싶으면 미리 알려 대처하게 했다.
보라, 이백여호 되는 큰 동네에 소나 돼지, 닭 한 마리, 쌀 한말인들 수탈된 일이 있었는가? 모두가 ‘학우’의 지혜로운 작전에서 거둔 열매다. 그는 애국자였고 부역자가 아니었다….
심사당국의 신중한 고려를 바란다.”

그 밑에 동민전체가 서명날인하고 내가 증인으로 서명해서 파출소장에게 직접 제출했다.

파출소장은 “그러면 형들이 올 때까지 사건 처리를 연기한다”고 대답했다.

한 열흘 됐을까, 둘째 형인 헌병소령(?) 창우가 와서 찦차로 ‘학우’를 자기 병영 안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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