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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2권] (30) 통일에의 갈망(6ㆍ25와 9ㆍ28) - 만우의 인격과 에피소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14 11:07
조회
612

[범용기 제2권] (30) 통일에의 갈망(6ㆍ25와 9ㆍ28) - 만우의 인격과 에피소드

‘만우’는 함경북도 웅기항에서 서북쪽 언덕 너머의 ‘웅상’이란 마을에서 났다.

뒤에는 송진산맥이 드높게 태평양과 나란히 하늘가를 가로질러 달렸다.

앞면은 아득한 수평선으로 그어진 태평양이 활짝 열렸다.

바닷가에는 대암반도까지 백사장이 완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해수욕장은 일본인들이 침흘리며 욕심내던 고장이다.

남만철도회사에서 만주를 삼키고 일본해를 ‘호수’로 만든다고 장담할 때, 그들은 ‘웅상’을 전 만주국의 피서지로 설계했었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북관의 선진’이었다.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망명하는 애국지사들이 ‘굽도리 배’로 웅기항에 상륙하여 ‘웅상’을 거쳐 ‘서수라’까지 걸어, 거기서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 또는 만주로 가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기독교와 개화운동이 거의 동의어 같이 되어 있었고, 민족주의와 교회공동체와도 일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유랑하는 애국지사들이 뿌린 복음의 씨가 일찌감치 ‘웅상’에도 뿌리를 내렸다. 따라서 ‘만우’도 소년시대부터 기독교신자로 자랐던 것이다.

‘만우’는 꿈이 많았다. 그는 열세살 때 집을 나와 ‘간도’에 달아났다.

간도에서는 성재 이동휘 선생에게 사사(師事)했다. 귀여운 13세 소년이 큰 뜻을 품고 간도에 모험했다는 것이 기특하대서 ‘성재’ 선생은 ‘만우’를 어린 ‘제자’로 항상 곁에 두어 듣고 보고 증언하게 했다.

하루는 성재 선생을 따라, 강가 섬에 갔다. 성재 선생은 저쪽 큰 섬에 앉고 ‘만우’는 그 옆에 작은 바위 위에 있었다. 성재 선생은 섬에서 우레같이 우렁찬 소리로 통곡했다. 주먹같은 눈물이 펑펑 솟구친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어찌하려는고!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종으로 팔려도 제 욕심만 부리는구나!”

그는 사자가 고함치듯, 쩌렁쩌렁 산울림을 떨게 하며 한참 통곡했다 한다.

이것은 그가 북간도에서 경영하던, 독립군 장교양성소인, 군관학교가 경영난으로 폐문하게 된때에 그 학교 경영비 조달을 위한 최후수단으로서의 ‘고육책’이었다 한다.

“‘성재’가 마적에게 납치됐다. 보상금 ○○○원을 ○○날까지 ○○에 가져오라…. 그러지 않으면 ‘성재’는 죽는다….”

이 소문을 항간에 돌아가게 하고서 돈 들어오기를 숨어 기다리는 것이었다 한다. 그 일을 위한 ‘사동’으로 소년 ‘만우’를 데리고 간것이라 했다.

그의 이런 고육책도 소용이 없었다. 간도와 그 근방 만주에는 2백만 교포가 망명 또는 이주해 있었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쳤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성재’는 시베리아로 떠난다. ‘만우’는 자기도 따라간다고 졸랐다. 그러나 ‘성재’는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본국에 돌아가서 신학공부하고 목사가 되라!”

그래서 ‘만우’는 집에 돌아왔다. 소년이지만, 농사 일에 참여해야 한다. 김매고, 소 먹이고, 콩씨 뿌리고… 그는 고단했다. 몸보다도 맘이 가만있지 않는다. 그럭저럭 몇해 지났다.

그는 도망쳐서 서울에 왔다. 피어선 성경학교에 입학했다. 한달에 16원씩 도와주는 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달, 돈이 안 온다. 알아봤다. 벌써 보냈다는 것이었다. ‘만우’는 어느 놈이 가로챘구나 싶어서 몰래 조사했다. 같은 반 학생 하나가 봉투속 소액수표를 훔쳐 쓴 것이었다.

‘만우’는 학우회모임에서 벽에 걸린 지도축으로 그놈을 두들겨 팼다. 지도축이 부서지고 동강났다.

선생이 들어와서 지도축이 동강난 이유를 묻는다. ‘만우’는 설명했다. 그 학생은 ‘도둑놈’으로 퇴학됐다.

‘만우’는 정답고 세련된 미남자였다. 그러니만큼 따르는 처녀들도 많았다. 일본유학 초기에는 ‘만우’를 사모하는 일본처녀도 한두사람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만우’는 일본말을 배운 일도 없고 영어를 배운 것도 아니었다. 일본말을 못하면서도 일본유학에서 좌절된 일이 없었고, 영어를 모르면서도 미국유학에서 최고학위까지 획득했다. 그리고 간데마다 존경을 받았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벽’이라도 ‘문’이라 믿고 밀어닥치면 ‘문’이 된다.”

‘만우’의 미국유학에서 첫 신학교는 ‘싼안셀모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샌프란시스코신학교’였다.

영어는 듣지도 보지도 읽지도 못하니 크레딧이 나올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인격적으로는 교수들도 같은 교수인양 존대했고 학생들은 ‘선배’로 경의를 표했다.

학비가 대중없이 부족해서 하기방학에는 노동이라도 해야 했다. ‘레더스’ 솎아내는 농장일을 얻었다.

멕시코 인부들 틈에 끼어 그들과 같이 일한다. 한 사람이 한 이랑씩 맡는다. 멕시코 인부들은 숙련공일뿐 아니라, 체력이 몇갑절 세다. 뒤에는 말탄 감독이 뒤떨어지는 자를 길다란 채찍으로 후려갈긴다. ‘이랑’이 어찌나 긴지, 끝이 안 보인다. 이랑 끝까지 단번에 가야 한다. ‘만우’는 죽어라고 애써도 노상뒤떨어진다. 솎아내는 기술이 없으니 시간도 많이 든다. 감독의 가죽채찍이 등을 후려갈긴다.

밤 잠자리가 더 큰 문제다.

밭 모새기에 큼직한 바라크가 있다. 거기는 멕시코 인부들 합숙소다. 조금 떨어져서 한 두 사람 잘만한 작은 ‘바라크’가 있다. 그것이 ‘만우’의 숙소다.

‘만우’는 고단해서 일찍 잔다. 멕시코 인부들은 술먹고 떠들다가 ‘만우’ 숙소에 침입하여 ‘남색’을 강요한다. ‘만우’는 도망친다.

어느 포도원 속에 들어갔다. 포도원 주인은 일본인이었다. 언어가 통하니 친교도 통한다. 주인은 과수원에서 포도따는 일, 사과나 배에 종이봉지 입히는 일 등등을 하라 한다. 감독이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니 자유로 기분내키는 대로 쉬며 일하라고도 한다.

‘만우’에게는 그 주인이 ‘천사’같이 고마웠다. 주인은 ‘만우’에게 ‘종부’로 갈 여비를 마련해 준다. 그래서 프린스톤 신학교에 다니게 됐다.

오랜 후일에 ‘만우’는 ‘한신’ 학장이 됐다. ‘장공’의 신학을 ‘이단’으로 규정지으려는 미국선교사들과 이북피난목사들의 공동전선이 형성되는 중이었다.

총회장 ‘이자익’은 이쪽에 가서도 “그래, 그래!” 저쪽에 가서도 “그래, 그래!” 도무지 대중을 잡을 수 없는 인물이란 평을 받고 있었다.

그는 걸핏하면 ‘한신’에 찾아온다.

한신 입장에 동조한다는 자기의 의사표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싫어했다. 때로는 미워했다. 그러나 ‘만우’는 그를 모셔들어 푸짐하게 식사대접하고 선물도 주고 친절과 공손으로 그의 기분을 돋운다.

나는 불평했다. “어쨌다고 그 영감을 그렇게 치켜올리는거요! 한신의 위신도 생각해야 하잖겠오?”

그럴 때 만우의 대답은 언제나 같은 것이었다.

“미운 놈 떡 한 개 더 줘도 손해보다 이익이 많을거요!”

해방직후 적산접수에 미쳐 돌아가던때 얘기다. 우리가 합법적으로 접수한 천리교재단 목록에는 용산 근처에 있는 광대한 집회실과 기숙사를 겸한 대하(大廈)도 들어 있었다. 그 집을 상명여고교장(女子) 남궁 처장에게 말하여 이중으로 계약했다. 그래서 “계쟁중의 적산”에 들었다. 그러나 실상으로는 이미 상명여고에 넘겨준 것이었다. ‘만우’는 여자의복을 한 벌 갖고가서 양복 위에 치마 저고리를 입고 남궁처장 앞에 나타났다.

“당신은 치마 저고리 앞에서는 법도 의리도 없이 ‘예, 예’하는 것 같으니 나도 치마 저고리를 입었소!”

‘만우’에게는 영웅주의(Heroism)가 남아 있었다. Hero가 되려면 전술과 전략이 필요하다. 싸움에서는 이겨야 한다. 그는 때를 못 만난 Hero였다. 그는 ‘情’과 ‘恨’이 넘치는 Hero였다. 이것은 내 망평일 수도 있겠기에 독자의 동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게는 둘도 없는 친구요, 동지요, 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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