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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2권] (44) 부산 피난 3년 – 한국신학대학으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17 10:01
조회
641

[범용기 제2권] (44) 부산 피난 3년 – 한국신학대학으로

미군정 때에 이미 대학령에 의한 인가를 받았고 학사, 석사 칭호도 수여할 수 있었지만 이름만은 ‘조선신학교’로 불렀다.

다른 신학교들과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승만 박사의 피난정부도 부산에 있다.

백낙준 박사가 문교부장관이고 박창해씨가 비서실장이었기에 접촉하기가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학교 명칭 변경서를 냈다. 며칠도 안 가서 허락됐다. 이제부터는 ‘한국신학대학’이라 부른다.

학칙에 따라서 학장을 선출해야 한다. 선출된 학장도 문교부 인허를 맡아야 한다. 문교부에서는 나에게 ‘학장서리’를 부탁한다. 지금까지의 직위가 ‘교장’이었으니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그 당시 함태영 목사님은 심계원장 재직 중이었다. ‘심계원장’은 일체다른 공직을 맡지 못하는 것이 ‘법’으로 규정되있었다. 그것이 민주주의 나라들의 통용 원칙이다.

그러나 함태영 옹은 자기가 이미 ‘한국신학대학 학장’으로 취임한 것같이 생각되었는지 백낙준 박사에게 취임인사까지 했다고 들었다. 백낙준 문교장관은 난처해졌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지혜를 짜낸 것이 ‘명예학장’ 체제였다. 그것은 내게만 알린 비밀이었고 함태영 옹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함태영 옹은 내게 말했다. “속히 날짜를 정해서 학장 취임식을 성대하게 거행하도록 하시오.”

“그리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명사’란 이들이 모두 부산에 몰려와 있기 때문에 초청장을 수백장 발송했다.

문교부에만은 알리지 않았다.

정대위 목사가 8군에서 얻어온 나무궤짝들은 못을 뽑아 널조각으로 변형시켰다. 베여버린 통나무 토막들도 ‘미군’에서 얻어왔다. 그것으로 마루바닥 ‘푸레임’을 짰다. 그 위에 널빤지 붙일 못은 원래 궤짝에 박혔던 것으로 넉넉했다. 학생, 직원, 교수 총동원으로 하루 사이에 미끈한 마루가 깔렸다. 강단도 널찍하게 짰다.

학장 취임식은 미상불 ‘성대’했다.

이사회로서는 ‘함’ 옹이 심계원장을 사퇴하기 전에는 ‘학장’ 실무를 맡을 수 없을테니 노인의 ‘명예’를 구태여 긁어내리는 것보다는 노인의 소원대로 해 드리고 하회를 기다려보자는데 합의했단다.

‘북진통일’을 염원하는 이승만 박사는 ‘휴전’에 반대였다. 그러나 미국이 하는 일이니 이박사의 권한 밖에 일이었다.

1951년 6월부터 포로교환 협정이 토의되고 있었다.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있다. 담당군목은 한신졸업생 강신정 목사였다. 그때 나는 거제도에 자주 드나들었다. 강신정 군목의 증언을 들었다.

“미군은 인민군 포로의 사상적 성분을 묻지 않았다. 통틀어 적군포로로 인정하고 수용소에 넣는다. 민주포로와 공산포로를 한 반에 같이 수용한다. 공산포로는 악착같이 원수 노릇을 계속한다. 민주포로가 변소에 앉았을 때 돌멩이로 머리를까서 죽인다. 시체는 변소통에 밀어넣는다. 자는 동안에 목을 눌러 죽인다. ‘민주인민군’은 그렇게 잔인하지 못한다. 몇천 명의 공산포로가 공동작전으로 그짓을 하니 민주포로는 다 죽고 말 것 같았다. 미군 책임자는 ‘너희 동족끼리 그러는걸 우리가 상관할 것 무어냐?’ 한다. ‘다 같은 인민군이 아니었더냐?’ 한다.
‘살려면 집단탈출’을 해야 한다. 그래서 돌격대를 편성했다. 새벽녘에 문을 박차고 ‘와아’ 고함치며 밀고 나간다. 미군 감시원의 총에 몇 사람 희생됐으니 대체로는 성공적이었다….”

이것이 이 박사의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할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박사는 포로교환협정을 무시하고 ‘반공포로’ 2만 7천명을 자의로 석방해 버렸다.

나는 USIS 도서실에서 그 후의 각국 여론들을 주워 읽었다. 영국에서는 “그 Old Devil이 누구를 믿고 그런 방자한 짓을 했느냐”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미국 여론은 일정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역사상 드물게 보는 big guts다”, “장개석은 그에게 어린애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8군 장성들도 이박사 앞에서는 쩔쩔맨다.” 등등으로 치켜올리는 기사도 실려 있었다.

미군 군목이 자주 우리 신학교에 찾아온다. 하루는 누구던가가 그에게 “원자탄 한두개면 알아 볼텐데 그건 뒀다 뭘하려는 거요!”하고 대들었다.

미군목은 대답했다.

“참으로 용감하십니다. 지금 성능의 원자탄 한 개면 한반도는 없어집니다. 남이고 북이고, 인민군이고 국군이고 없습니다. 온전한 무인광야(無人曠野)가 됩니다. 그래도 원자탄을 써 달라니 참으로 ‘용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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